정직하고 착하면 성공 '못'한다?

고대생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며

등록 2001.11.12 12:18수정 2001.11.1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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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생 신문 사이트인 www.unews.co.kr에서 매우 충격적인 기사를 보았다. 고대신문사가 창간 54주년을 맞아 고대생 259명과 7개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관한 기사였다. 그 설문조사의 한가지 항목인 '정직하고 착하면 성공한다'라는 조항에 '아니오'라고 답한 고려대생이 80.2%라는 얘기였다.

이 기사를 읽고 나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설문조사 결과를 달리 표현하자면 '정직하고 착하면 실패한다'라는 의견에 절대 다수의 대학생들이 동의를 한 셈이다. 또 한번 달리 표현하자면 '부정직하고 악해야 성공할 수 있다'라는 의견에 열 명 중 여덟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동조를 한 셈이다.


물론 그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에 대한 대학생들의 '진단'일 뿐이다. 그런 사회 구조에 맞추어 자신도 '정직하고 착하게 사는 쪽을 버리고, 부정직하고 악하게 사는 쪽으로 가담하겠다'는 뜻까지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개연성이나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설문조사 결과가 시사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나는 우리 사회를 그렇게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절대 다수 대학생들의 심정을 생각하며 연민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과연 우리 사회에 대한 대학생들의 그런 진단이 옳지 않다고, 실제와 많이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대학생들로 하여금 그런 진단을 하게 한 우리 사회의 병리 현상을 누가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대학생 신문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기사를 보게 된 것은 어느 분의 메일 때문이었다. 직장 생활이 20년을 헤아린다는, 사십대 중반인 그분은 '대학생들의 그런 진단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자신의 직장까지 포함하여)의 속성과 실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서 몹시 가슴 아팠노라'고 했다. 그러며 그는 내게 그것에 관한 글을 하나 써 달라고 간절한 어조로 부탁했다.

나는 대학생들로 하여금 그런 진단을 하게 만든 우리 사회의 구성원―기성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창 청운의 꿈을 안고 살아야 할 순박한 대학생들에게 그토록 암담한 현실을 체감하도록 만든 기성 세대로서 죄스러운 책임감을 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기성 세대는 그 동안 우리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로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폭넓은 시야를 가지지 못해 왔다. 그러니 자연히 민족의 정기를 세우는 일에도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가끔 정부나 언론, 종교, 시민단체 등에서 실시한 무슨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시민정신 함양 운동들은 대개 국부적이거나 개인의 양심 쪽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었다.

개인의 양심들이 결집하여 사회 정의를 형성하고, 그 사회 양심이 민족의 정기, 국가 양심을 수립하게 되는 경우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우선은 국가 양심이 바로서야 사회 정의와 개개인의 양심도 그 실체 수립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우리는 국가 양심에 대한 인식조차 뚜렷하게 갖지 못했다. 민족의 정기를 세우는 일이 우리 사회와 개개인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것의 단초를 해방 후의 친일파 척결 실패에서 찾는다. 친일파 단죄 실패에 대해서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것으로 인식하는 견해들을 옳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혼돈된 가치관 속에서 사회 정의는 물론이고 개개인의 양심도 올바로 세우기가 힘든 상황을 살게 된 것이다.

민족의 정기가 유실된 상황에서 더욱 분분해지는 가치관의 혼돈 현상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에도 극심한 양상을 보인다. 그리하여 한 시절의 대작가인 이문열로 하여금 "나도 일제 시대에 태어났으면 친일을 했을 것"이라는 망발을 하게 만들고,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송복 씨로 하여금 "어느 정도 비리가 있는 신문이 정부를 더 잘 비판할 수 있다"라는 해괴하고도 포복절도할 말을 하게 만든다. 작가와 대학교수도 그 정도이니, 민족 정기에 대한 가치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푸대접을 받아왔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지식과 정보가 교류하며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발달한 지금에도 포괄적 가치 인식의 세계는 아직도 요원하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미래와 역사를 생각하는 포괄적인 가치 기준으로 사물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때 그때의 감정과 얄팍한 이기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기를 즐겨한다. 지역감정이며 색깔론 따위들이 다 그것의 부산물이다.


우리 사회는 왜 대학생들로 하여금 그런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진단을 하게 하는가. 나는 다시 한번 우리의 대학생들에 대해 기성 세대로서 '죄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의 정기와 포괄적 가치 기준을 수립하는 일에 좀더 철저하지 못했음을 자인하며 사죄하고 싶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대학생들에게도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고 싶다. 우리 사회에 대해 그런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진단을 하면서 얼마나 '고뇌'를 했는지 우선 묻고 싶다. 그런 사회 현상과 관련하여 자신에 대한 성찰을 얼마나 깊이 했는지를! 고뇌하지 않는 지성은 지성이 아니다. 절대 다수가 우리 사회에 대해 그렇게 진단했으면 그 진단과 관련하여 깊이 고뇌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진단에 따라, 정직하고 착하면 성공하지 못하는 사회의 병리 현상에 자신도 편승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그렇게 진단은 했을지라도, 이런 때일수록 젊은 지성인답게 올곧은 품성과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행여 일부 언론들이 조장하는 정치에 대한 혐오증과 냉소주의에 빠져 선거에 불참하는 행위들을 했다면, 우선은 그것부터 반성을 해야 한다. 인구의 다수를 점하는 젊은이들이 대거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행위는 선거의 왜곡된 결과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정치를 더욱 저질의 수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최대한 조화시키며, 사회 정의와 민족의 정기를 늘 생각하며, 우리의 참된 미래와 역사를 끊임없이 소망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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