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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성모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으시고 지난 10월 8일 퇴원하신 내 어머니께서 퇴원 후 거의 한 달 만인 어제(6일, 화요일) 처음으로 성당엘 가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평일미사를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저녁에 지냅니다. 수요일은 아침에 지내고, 목요일에는 오전 10시 30분에 레지오 단원들을 위한 미사를 지내지요.
퇴원하신 어머니가 가장 가고 싶어하신 곳이 성당이고, 어서 하고 싶은 일이 미사 참례였습니다. 그러나 몸속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 그냥 집안에서만 지내셔야 했지요. 대장의 일부를 잘라냈기 때문에 수분 흡수를 담당하는 대장의 기능이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를 않아서 (설사가 그치지 않는 상황이어서) 마음놓고 외출을 할 수 없기 까닭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주치의이신 대전성모병원의 교수님은 '설사 문제'에 대해서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면서…. 정 안되면 약을 써야 하지만, 자연적으로 해결이 될 수 있으니, 약을 쓰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면서….
그러나 퇴원 후 한 달이 다 되도록 설사가 가라앉지를 않으니 어머니는 조급증이 생기는 모양이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성당에도 못 가고 방귀신이 될지 모르겠다는 말도 하시곤 해서, 어머니만을 남겨두고 가족 모두 성당에 갈 때는 내 마음이 적이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낮에 화장실을 세 번 정도 가신 어머니가 저녁에는 괜찮을 것 같다며 의욕을 보이셔서, 불안한 가운데서도 어머니를 모시고 성당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어머니의 몸 상황이 호전이 된 것인지 미사 시간 동안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내 어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평일미사 참례를 한 번도 거르시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젊으셨을 적 바쁘게 생활하실 때도 미사 참례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셨던 분이지요. 어머니는 특히 미사에 온 가족이 참례하는 것을 무척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시며 하느님의 큰 은혜로 생각하셨지요.
평일미사 때는 우리 성당의 맨 앞자리 하나는 우리 가족의 지성석이나 마찬가지랍니다. 맨 앞자리에는 아무도 쉽게 앉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가능한 일이지요. 나는 앞자리를 기피하는 우리 천주교 신자들의 속성(?)을 많이 의식하면서 일부러 맨 앞자리에 앉아버릇했는데, 어느덧 아내와 아이들도 버릇이 된 듯싶습니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우리 가족이 맨 앞자리에 앉곤 하는 것은 다른 신자들에게 쉽게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기도 하니, 그것 역시 작은 사랑의 실천이라는 말을 하곤 했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 가족이 매번 맨 앞자리에 스스로 앉아버릇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적극성과 진취적 기상을 심어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곤 하지요. 아이들에게 그런 좋은 성격을 심어주면서 형제 자매들에게 작은 사랑의 실천도 하는 셈이니, 평일미사 때마다 우리 가족이 맨 앞자리에 앉곤 하는 것은 그런 대로 의미가 있지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한자리에 오붓하게 앉아 미사를 지내던 시절도 어느덧 '지나간 한 때'였습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사 복사를 하게 되면서 일종의 변형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내 혼자 자리를 지키는 날도 많게 되었습니다. 아들녀석도 복사를 하게 된 데다가, 딸아이는 중학생이 된 지난해부터 평일미사 오르간 반주를 전담하게 되어서 매번 '가족석'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게다가 나도 전례봉사로 말미암아 이석을 하는 날이 많으니, 아내 혼자만 달랑 남아 우리 가족석을 지키는 형국이 빈번해진 거지요.
어제도 그런 형국이었습니다. 전례봉사 당번인 나는 주송을 하고, 딸아이는 오르간 반주를 하고, 아들녀석은 복사를 했으니…. 전례봉사를 하면서 맨 앞자리에 홀로 앉아 있는 아내를 보자니 문득 측은한(?) 느낌이 들더군요. 내가 앉는 자리 바로 뒤, 둘째 줄 한 자리는 내 어머니의 지정석이나 다름없는데, 요즘 들어 계속 비어 있던 그 자리가 다행히 어제는 비어 있지 않게 되었는데도 왠지 아내의 모습이 쓸쓸하게 보이더군요.
우리 가족이 어디 멀리로 뿔뿔이 흩어진 것도 아니고, 모두 성당 안 제대 주위에 가까이 있는데도, 맨 앞자리에 홀로 앉아 있는 아내의 모습에서 홀연 쓸쓸함을 느끼는 내 심사는 도대체 무엇이람!
그것이 얄망궂게 느껴지면서도 나는 우리 가족이 한자리에 나란히 앉아 미사를 지내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유치원 시절부터 신자들로부터 '천상의 소리'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청아한 미성(美聲)으로 성인 성가를 곧잘 부르곤 했던 아들녀석이 벌써 5학년, 변성기에 접어든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내 이상한 그리움은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지게 될지….
한동안 비어 있었던 어머니 자리가 오늘은 비어 있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게 한동안 비어 있었음도 따지고 보면 세월 탓일 터…. 지금도 시시각각 흐르고 있는 세월은 내게 또 어떤 형태의 그리움을 가져다줄까? 우리에게는 어쩔 수 없이 슬픔도 희망이고 체념도 희망이고 죽음도 희망이지만, 그것들은 또 얼마나 크고 많은 그리움들을 나와 내 가족들에게 안겨 줄 것인지….
전례봉사를 하면서도 나는 또 한차례 물기 많은 내 심성을 자극하는 상념들 때문에 영성체 후 묵상 시간에는 한결 고즈넉한 목소리로 경문을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사가 끝나자 여러 할머니들이 내 어머니에게로 와서 손을 잡고, 얼싸안기도 하고, 얼굴을 대고 비비기도 하면서 반가움을 나누었습니다. 그런 할머니들을 보자니 지난 2일(위령의 날) 우리 교회의 공동묘지에서 미사 후에 한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해마다 같이 와서 미사를 지냈던 우리 안나 형님이 계시지 않으니께 왜 이렇게 허전허구 쓸쓸헌지 물러. 형님이 얼릉 나스셔야 헐 틴디…."
하소연 같은 그 말을 듣자니, 분명히 내 어머니가 돌아가신 게 아닌데도, 나는 왠지 와락 솟구치는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어머니와 친구 할머니들이 성당에서 반갑게 만나는 시간이 다시, 좀더 오래 지속되고, 저 할머니의 가슴에 체념을 함께 하는 허전함과 쓸쓸함이 안겨지는 시간도 좀더 오래 지연이 되어야 할 텐데….
혼자 가만히 마음에 되새겼던 그날의 그 기원을 다시금 떠올리며 나는 성당 안에서부터 반가움을 나누는 내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모습을 오래 지켜보았습니다. 서로 얼싸안고 얼굴을 비비기도 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마치 소녀들 같았습니다.
나는 할머니들을 따라 성당을 나오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저 소녀들 같은 할머니들의 정겨운 시절이 좀더 오래 지속되도록 허락해 주시옵고, 저 모든 할머니들을 돌보아 주소서."
조락(凋落)의 계절 11월―입동 무렵의 스산한 저녁 기운을 새삼스럽게 체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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