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언론의 자유'를 아느냐?

동아일보 광고탄압에 대한 기억 ⑤

등록 2001.12.14 13:19수정 2001.12.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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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는 태안천주교회 청년회원들을 상대로 모금을 해서 청년회 이름으로 격려 광고를 한번 더하고, 동아일보 지국에 신문 구독료를 12월분까지 선납을 하는 등 내 나름껏 동아일보를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지요.


그리고 당시 발행 부수가 70만부였던 동아일보가 발행 부수를 100만부 이상으로 끌어올리면 신문 구독료만으로도 최소한의 운영이 가능하다는 말을 하면서 '독자 배가 운동'을 벌이는 것에 적극 호응하여 우선 성당의 청년회원들과 신자들에게 동아일보를 구독하도록 부지런히 권유를 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유신 정권의 동아일보 광고탄압이 점점 더 길어지면서 내 불안감도 점차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아일보가 정부와의 그 싸움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정말 걱정이 되었습니다. 동아일보 스스로 허무하게 항복을 해버리지는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가운데서도, 정부의 최종 목적이 바로 그것인 만큼, 그것은 이미 기정 사실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향해 한발한발 다가가는 것만 같은 느낌은, 나로 하여금 지레 안타까움과 절망감을 갖게 하는 것이었지요.

이미 세계적으로 너무도 부끄러운 사건이 되어버린 그 야비하고도 치졸한 작태를 정부가 스스로 철회하는 것이 나로서는 가장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박정희 정권은 그럴 의사가 추호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왕 버린 몸, 온몸에 똥투갑을 해도 좋다는 식이었습니다. 야수 같은 야만성으로 완전 무장을 한 그들에게는 이제 어느 한구석에도 이성(理性)의 그림자는 자리할 수가 없게 된 상황이었지요.

유신정권의 동아일보 광고탄압이 어언 7개월 째로 접어든 어느 날, 마침내 그날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날은 동아일보 항복의 날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사에 있어서 한 시절의 금자탑이었던 동아일보 기자들의 언론자유 수호 의지가 무참하게 유린된 날이었지요.


동아일보 경영진은 이미 항복 의사를 밝히고 있는 상황이었지요. 뒷구멍으로는 진작부터 유신정권에 읍소를 하면서 정부와 은밀히 발맞추기 조율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그 사실을 눈치챈 기자들은 더욱 일치 단결하고 동아일보를 사수할 의지를 재차 천명하면서 퇴근도 하지 않고 연일 신문사를 지키는 상황이었고….


기자들이 밤샘 농성을 하면서 신문을 만들어내던 어느 날, 동아일보사 사장 이동욱은 정부 당국에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1백수십 명의 기자들이 공권력에 의해 한밤중에 강제로 신문사 밖으로 끌려나오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 일은 곧바로 134명 기자들의 '해직'으로 이어지고 말았지요.

보도 통제 속에서도 동아일보의 그런 참상을 나는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언론 자유의 조종(弔鐘)을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슬프고도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가 없어 태안 거리를 쏘다니며 막걸리에 만취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1974년 7월 동아일보는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광고탄압 굴복과 정부의 언론탄압에 끝까지 맞서며 언론자유 수호 의지를 곧추세웠던 134명 기자들의 해직은, 우리나라 언론자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신문사 안에 앉아서 월급 받으며 기사를 쓰는 기자들만이 기자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진짜 기자인 것도 아닙니다.

비록 신문사 밖으로 쫓겨나긴 했지만 기자 정신을 잃지 않은 사람들―신문사 밖에서 계속적으로 투쟁을 한 그들에 의해서 언론자유의 지평이 더욱 확대되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언론인들이 많습니다. 그 자랑스러운 언론인들이 1974년 유신정권에 의해 해직의 고초를 겪게 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저지른 언론사 통폐합에 의해 대량 해직된 기자들 중에 더 많이 포진해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아이러니이기도 할 것입니다.

해직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정으로 언론자유를 위해 싸웠던 기자들, 독재 권력에 의해 기자직을 박탈당한 채 오랜 세월 고초를 겪어야 했던 기자들, 그 선배 기자들의 불굴의 기자정신을 오늘의 기자들은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오늘의 '조·중·동' 기자들은 선배 기자들이 목숨 걸고 수호하려고 했던 언론자유와 오늘 자신들이 탁한 소리로 외치는 언론자유가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가를 깊이 성찰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선배들의 그 의지와 외침에는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언론사에 앞으로도 길이 길이 빛날 참다운 의지요 외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들이 외치는 그 언론자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당신들은 추호도 부끄러움이 없습니까? 당신들은 당신들의 그런 '탁음'이 과연 떳떳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박종웅 같은 정치인의 지난 여름의 괴상한 단식 때문에 당신들이 말하는 언론자유는 더욱 코미디 수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내 생각이 틀렸습니까?

나는 우리나라 대신문사의 기자들이 억지와 민망함과 공허함이며 치졸함 따위를 분별하지 못할 정도로 의식이며 지적 수준이 천박하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데, 내 생각이 틀렸습니까?

당신들은 의식 세계의 조악함과 지적 수준의 천박함을 빨리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후안무치의 난삽한 경지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으로부터 당신들은 진정한 기자 정신을 회복할 수 있으며, 진정한 언론자유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갈 수 있습니다.

당신들의 뜨거운 각성을 촉구합니다.


덧붙임―

③번으로 구분한 글과 연결되는 사항입니다.

역시 '흙빛문학' 제15집 (1991년 하반기호) '창립회원 특집'에 썼던 글의 관련 부분을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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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세월이 흘러 78년 가을 어느 날, 소설가 C선생 집에서 74년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작가인 송기원(宋基元) 씨와 함께 어울린 술자리에서 송 형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75년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서는 특이한 현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이 합심 끝에 작품 하나를 당선작으로 결정해 놓고 집으로들 돌아갔는데, 그 작품이 편집국장 데스크에서 밀려났다는 것. 그래서 당선작을 다시 결정해야 하는 문제로 담당 기자 정규웅 씨가 걱정과 고심을 하고 있을 때 당시 중앙일보에 연재소설을 쓰고 있던 모 씨가 원고를 가지고 신문사에 갔다가 정 기자로부터 사정을 듣고 알아본 즉, 당선권에 든 4편 중에 자기 처제의 작품도 들어 있어서 그 작품을 밀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 기자가 각 심사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얻은 다음 심사평을 썼다는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나는 74년 12월 20일경 어느 날 꾸었던 그 꿈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처럼 나에게 신기한 꿈을 꾸게 했던 소설 「저항아」를 등단 후에도 계속 간직하고 있다가 '흙빛문학' 회장으로서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고 있던 조치원 '백수문학'의 김제영(金濟英) 여사에게 아낌없이 내주었다. 특이하고도 어려운 사정에 놓여 있는 김제영 회장의 '백수문학'을 도와 드리기 위해 보낸 것인데, 「백주, 그 우울」로 제목을 바꾼 그 작품은 87년 '백수문학' 21집의 앞머리에 '초대 작품'으로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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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원 형은 애초 당선 작품으로 결정되었던 그 작품이 누구 작품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그것은 모른다고 했지요.

그러므로 그 비운의 작품은 내 작품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송기원 형으로부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예의 그 '꿈'이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으로 이 글을 마치며,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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