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궁핍한 지역서 실현된 거부의 꿈

타이위안(太原)과 '중국문화답사기'

등록 2001.12.17 14:47수정 2001.12.18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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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게 산시성(山西省의) 기억은 좀 비극적이다. 한 번은 여름날 산시성을 다녀오는 길에 노숙하다가 의자에서 가방이 떨어져 타이위안에서 산 맛좋은 죽엽청주(竹葉淸酒)와 카메라가 범벅이 됐다.

카메라도 카메라지만 술까지 날렸으니. 거기에 얼마 전에는 그 고장난 카메라를 비롯해 다른 비디오카메라까지 세트로 날려버렸다. 그 때문에 다시 한번 그곳을 다녀오면서도 그 땅에는 그다지 원망이 들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여름에 만나도 조금 황량하고, 옥수수 대가 가장 많이 보이는 조금 척박한 땅. 겨울에 가면 네이멍구의 초원이나 사막 못지 않게 수목이 모두 옷을 벗고, 갈색 대지와 한 모양이 되어버리는 곳이 산시성(山西省)이다.

산시는 아래에 술로 유명한 린펀(臨汾)과 황허 최고의 절경인 후코우(壺口)폭포를 갖고 있고, 북쪽에는 윈깡석굴(雲岡石窟)로 유명한 따통(大同)과 우타이산(五臺山) 등이 있는 도시다. 그리고 산시성의 성도는 그 중앙에 위치한 타이위안(太原)이다. 산시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것은 타이위안보다는 타이위안에서 기차로 2시간쯤 내려가면 만나는 작은 성곽도시 핑야오(平遙)다.

2000년 2월 2일 이 핑야오성은 중국인들은 물론이고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의 '유홍준'으로 불리는 위치우위(余秋雨)가 홍콩 봉황위성텔레비전의 지원으로 세계 4대 문명발상지를 여행한 후 최후에 선택한 곳이 바로 핑야오 고성(古城)이기 때문이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고대 문명의 흥망성쇠를 통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하는 인류의 미래를 살펴보겠다는 의도로 4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장도(壯途)에 나선 위치우위가 핑야오를 최후의 기착지로 선택한 것은 무엇일까. 그 황량한 대지에서 견뎌낸 수천년의 시간을 그는 흠모했을 것이다. 그것이 산시성의 매력이다. 그 길을 앞 이벤트의 주재자인 위치우위가 쓴 '중국문화답사기'(원제 文化苦旅)를 들고 떠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가장 빈궁한 곳에서 가장 큰 부자가 만들어져


위치우위의 '중국문화답사기'는 중국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주는 책이다. 그는 학자에서 계몽가에 가까운 문화관련 글쟁이가 된 이다. 한국의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에 비견하면 꼭 맞을 것이다. 유홍준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호불호가 나오듯 위치우위에 대한 중국인들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평가에 앞서서 위치우위의 목소리는 중국인들에게 문화가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책은 둔황을 비롯한 여행기들인 1, 2부와 미셀러니에 가까운 문화시평(3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의 대부분은 작가의 감성적인 문장이다.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 언제나 고대 문화나 문인들이 자취를 남긴 곳이기 때문"이어서 관련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한국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이 중국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키워드를 제공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위치우위가 특별히 마음을 쏟은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산시성 핑야오 고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그는 가장 빈곤한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이 만들어졌다는 점에 관심을 갖는다.

산시성을 지나는 외국 여행객들에게 가장 두드러진 것은 누추(陋醜)다. 중국에서 가난하기로 치자면 다른 지역도 많지만 산시성 지역이 더욱 그렇게 보이는 것은 산시성 평지의 대부분이 황토고원이고 여전히 요방(窯房 중국 섬북(陝北)지역에 퍼져 있는 동굴식 주택)이 두드러지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늦가을을 지나면 수킬로미터를 지날 때 푸른 나뭇잎 하나 보기 힘든 그 대지의 막막함이 더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중국 역사를 살피면 이 지역에 대한 동정심이 들 만큼 힘든 역사를 갖고 있다. 바로 산시성은 서남쪽과 서북쪽으로 포진된 이민족들이 중국을 넘볼 때 가장 먼저 접근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다지 호전적이지 못했던 한족(漢族)은 항상 주변에 있는 강대국들의 공격을 받아 무참하게 무너졌다.

산시의 남쪽인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西安) 부근)이 도읍이었던 당나라때 산시는 북쪽 몽고, 거란, 말갈 등 북쪽 민족이 중앙에 접근할 때 지나는 지역이었고, 이후에 베이징이 정치의 중심으로 갈 때는 시장(西藏 티벳)이나 위구르 족 등 강력한 소수민족의 외침을 받아야 했다. 물론 무력했던 한족 정권은 평소에 비단 1필이면 살 수 있는 말을 10필을 지불하며 사는 방식이나 화번공주를 보내는 방식으로 화친을 유지했다.

무력했던 이 지역의 모습은 우선 각 지역에 구축된 수많은 성벽으로 나타난다. 지금의 성도이자 고대도시인 타이위안을 비롯해 산시성 대부분의 도시가 성곽도시다. 가장 북쪽 도시인 따통(大同)도 옛이름이 평성(平城)이었고, 남부의 안읍(安邑)은 운성(雲城)이었고, 지금의 중심도시들인 슈어주오(朔州 원래는 朔城)나 진청(晉城), 윈청(運城)은 물론이고 성도인 타이위안도 14킬로미터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다. 이런 대도시뿐만 아니라 핑양(平陽), 치셴(祁縣), 핑야오 등 중소도시들도 여전히 잘 보존된 성곽을 갖고 있다.

이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그들 자신의 기질을 개발하고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런 산시인들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 핑야오 고성이다.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핑야오 성은 산시인이 살아왔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가장 특색있는 것은 산시인 가운데 유난히 금융인이 많았다는 것이다. 핑야오 고성의 고건축 가운데는 일반의 상상 이상으로 호화로운 집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중국에서 최초로 전당포를 만든 뇌이태(雷履泰 1770~1849)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상업학교에서 공부해 중국에서 최초로 전당포(票號)를 창시해 전 중국에 체인망을 만드는 사업수완을 보였다. 뇌이태 등으로 인해 핑야오는 고대부터 금융도시가 됐다.

핑야오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것이 바로 표국(票局)인데, 이것은 고대 전문운송서비스다. 장거리를 운반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이들을 위해 핑야오는 당시로서는 첨단 운송서비스를 만들었다. 바로 전문적인 무술인들로 이루어진 운송 전문 집단과 전국적인 운송 시스템이다. 황실까지 이 시스템을 이용했다. 결국 그다지 비옥하지 못한 땅과 항상 위협받는 이곳에서 거부들이 탄생했다.

위치우위가 말하고, 중국 역대 재정부장의 대부분이 바로 산시성 출신이라는 점은 산시인들이 얼마나 금융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 최고 거부의 하나이자 국민당의 초대 재정부장을 지낸 정치적 풍운아인 쿵샹시(孔祥熙) 역시 산시인이었다.

또 핑야오를 관광도시로 만들어 매년 50% 이상 여행수지를 성장시키는 주역인 장리밍(張禮明) 핑야오현 부서기(副書記)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점잖고, 의지있는 모습으로 앞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자원을 보존하고, 만드는 것을 보여줬다.

역사를 가슴에 묻고 현재 보기

핑야오의 지금은 물론이지만 산시성은 여전히 곤궁한 모습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가 열려있는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곳곳의 도시에는 거부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문화대혁명 때, 의식없는 부가 금기가 되면서 그 유산도 적잖은 피해를 봤다. 핑야오 뿐만 아니라 중국 최고 거부집안인 차오(曹)씨가 포진한 치셴을 비롯해 거칠 것 없는 산시평원의 곳곳에는 부자집안을 만들어냈다.

거의 무에 가까운 곳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것. 또 가장 빈궁한 땅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이 탄생했고, 여전히 그런 기질이 살아있다는 것은 위치우위가 산시에 대한 호감을 갖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위치우위가 이 책에서 읽어내는 중국문화는 미술, 문학 등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그는 자신있게 기준을 세우고 중국문화를 읽어낸다. 물론 기자와 같은 문외한에 가까운 이에게 그의 기준은 얼마나 정확한지 모르지만 전반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읽어내는 그의 필봉은 날카로워서 매력이 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이 저렸던 부분은 저자가 겪었던 문화대혁명의 슬픈 화인(火印)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의 실종과 삼촌의 자살 등의 비극은 물론이고 대학생인 저자 역시 노동현장으로 하방되는 경험을 말해준다. "사상을 파고, 의문을 열거하며, 단서를 정리하고, 중점을 결정하는 일이 반복되었다"는 상황의 지속인 문혁시대는 그에게 새로운 분서갱유의 시대로 다가온다.

이 책의 유홍준의 책이 그러하듯 좋은 여행가이드의 역할도 한다. 1, 2부는 그 자체가 훌륭한 여행 안내책자이다. 기자에게는 생소했던 천주산의 맛과 도강언의 매력 등을 일깨워주었다. 막고굴과 마찬가지로 근대초기에 엄청난 도굴의 비화를 겪었던 장서의 보고 천일각의 운명에 대한 기술도 수천년 문화의 가치를 읽어내지 못한 역사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작가가 책에서 가장 흥미를 보이는 것은 위대한 사람들의 흔적도 있지만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많은 이들에 대한 것이 많다. 다양한 부분에서 이런 인물이 나오지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란저우에서 쇠고기 국수를 만드는 주방장 마 씨의 기록이 아닐 듯 싶다. 세밀한 국수 만들기 과정과 더불어 자신의 손님이 문혁 기간 동안 누명을 썼서 아무도 찾지 않을 때, 그의 가족을 돌보던 마씨의 모습은 도(道)가 무엇인가를 일깨워준다.

핑야오를 시작으로 차오가가 부를 일군 치셴, 쿵샹시의 고향인 타이쿠(太谷), 타이위안은 한길로 놓인 기차로 2시간에 만나는 지역이다. 중국에서 이 길을 지나다가 돈자랑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타이위안은 산시의 중심도시지만 그다지 볼거리가 풍부한 곳은 아니다. 두 탑이 잘 조화를 이루는 쌍탑사와 고대건축 문화가 돋보이는 진스(晉祠)가 주요한 볼거리다.

덧붙이는 글 | <책소개>

제목: 중국 문화의 전도사 역할하는 필자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작가가 된 위치우위는 1992년 '중국문화답사기'(文化苦旅)를 출간한 후 상하이 시 문학 우수성과상, 대만 연합신문사 최우수 서적상 등을 수상해 중국의 문화전도사로 불리는 작가다. 중국에서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는 이후 봉황텔레비전의 도움으로 4대 문명 발상지를 돌아보고 쓴 '세계문명기행'(원제 千年一嘆)을 통해 다시한번 입지를 확인했다. 1999년 9월 28일 홍콩을 출발해 2000년 2월 2일 중국 산시(山西) 핑야오(平遙) 고성에서 여행을 끝마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이 책을 출간한 이후 그는 불법 복사도서에 대한 비판으로 절필을 선언했으나 올 10월에는 '나그네는 막힘이 없다'(行者無疆 華藝出版社)를 펴냈다. 이밖에도 '山居筆記', '千禧之旅', '霜冷長河' 등의 문화 기행서들이 있다.

덧붙이는 글 <책소개>

제목: 중국 문화의 전도사 역할하는 필자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작가가 된 위치우위는 1992년 '중국문화답사기'(文化苦旅)를 출간한 후 상하이 시 문학 우수성과상, 대만 연합신문사 최우수 서적상 등을 수상해 중국의 문화전도사로 불리는 작가다. 중국에서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는 이후 봉황텔레비전의 도움으로 4대 문명 발상지를 돌아보고 쓴 '세계문명기행'(원제 千年一嘆)을 통해 다시한번 입지를 확인했다. 1999년 9월 28일 홍콩을 출발해 2000년 2월 2일 중국 산시(山西) 핑야오(平遙) 고성에서 여행을 끝마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이 책을 출간한 이후 그는 불법 복사도서에 대한 비판으로 절필을 선언했으나 올 10월에는 '나그네는 막힘이 없다'(行者無疆 華藝出版社)를 펴냈다. 이밖에도 '山居筆記', '千禧之旅', '霜冷長河' 등의 문화 기행서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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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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