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새해 첫 소망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등록 2002.01.18 08:37수정 2002.01.1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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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오늘 올해 들어 첫 번째 '가족 나들이'를 하게 됩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들도 모두, 그리고 뒷동에 사는 동생네 가족도 함께 대전엘 갑니다. 지금 공주의 친정에서 기거하며 '충남교육연수원'에서 연수를 받고 있는 아내는 오늘 오전 11시에 모든 연수 일정이 끝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주에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뒷동의 동생네 가족도 동행을 하게 된 것은, 용접 기술자인 동생이 당분간 경기도 평택에 있는 일터의 숙소에서 머물며 일을 하게 된 덕분입니다. 남편이 매일 들락거리지 않게 된 집에서 갑갑하게 살 제수씨에게 아이들 데리고 바람 한번 쐬고 오자고 내가 제의를 한 거지요. 제수씨와 아이들 모두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옴당겨 살고 있는 우리 두 형제 가족이 이렇게 쉽게 행동 통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승용차 아닌 승합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나는 1988년 운전 면허를 취득하고 이듬해 처음 차를 마련할 때부터 승합차(중고 9인승)를 선택했지요. 지금 가지고 있는 세 번째 차 역시 승합차(12인승)인데, 승합차가 여러 가지로 실용적인 것 같습니다. 여러 가족이 함께 이동하기도 좋고, 교회 봉사를 포함하여 이웃에게 좋은 일도 할 수 있고…. 나는 끝까지 승합차만을 고수할 생각입니다.

우리 가족이 오늘 대전에 가는 이유는, 지난해 가을 '대전성모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어머니께서 수술 후 제1차 검진을 받는 날이 바로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예약이 된 날은 엊그제(16일)였는데, 오늘 연수가 끝나는 아내와 합류를 하기 위해 주치의이신 김지연 교수께 청을 드려 검진날을 이틀 연기하여 오늘로 잡은 거지요.

우리는 오전 9시경 태안을 출발, '해미성지'에 들러 공주 처가와 대전 막내동생네 집에 줄 물을 긷고, 12시경 공주 처가에 들러 물을 부어드리고 아내를 태우고 대전 동생네 집으로 가서 점심 식사를 한 다음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장태산 눈썰매장이나 엑스포 과학공원에 가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나와 아내는 저녁에 언론개혁운동의 '성지'가 된 옥천으로 가서 전국 언론개혁운동가들의 모임인 '전국 물총 독립군 결의 다지기 대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나로서는 올 들어 처음 참석하는 공적인 모임이지요.

우리 삼형제 가족이 올 들어 처음, 아주 일찌감치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은 어머니 덕분일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는 죄송스러운 표현이기도 하지만, 어머니께서 고령에도 대장암 수술을 잘 이겨내시고 계속적인 약물 치료를 잘 감수해주신 덕분에 오늘 1차 검진을 받게 되시어 우리 삼형제 가족이 또 한번 '가족 단합'의 모습을 보일 수가 있게 된 거지요.

이제는 그야말로 팔순을 바라보시는 연세(79세)가 되신 어머니는 암세포가 임파선에 전이가 된 단계인 '전3기'라는 진단에 따라 매일같이 두 가지 약을 복용해 오셨지요. 또다시 암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약과 면역증강제, 여기에다가 혈압강하제까지….

이렇게 매일같이 독한 약을 복용하고 사시면서도 어머니는 편안히 자리보전만 하시지 않고 활동을 많이 하셨지요. 처음엔 교사 며느리의 출근을 도와주시는 정도였으나 곧 다시 살림을 맡아 해 주시더니 대규모 공사급인 김장도 주도를 하시고….

주변으로부터 "교사 며느리를 두어서 고생한다"는 말을 들어도 어머니는 "이것도 다 하느님 사업이여"라는 말로 응수를 하셨지요. 이제 겨우 환갑을 넘긴 주변의 한 아주머니가 하루종일 바쁘게 몸을 놀리며 사는 며느리를 좀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매일같이 밖으로만 나도는 모습을 보시면서는, "저런다고 남들이 팔자 좋다고 이쁘게 보아줄 줄 아남"하며 오히려 측은하게 여기신 어머니였지요.

"자식 며느리 손주들한테 구애받지 않고 내 말년 인생을 편안히 즐기며 산다고 해서 죽을 때 즐겁게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여. 자손들을 위해 희생 좀 하며 고생스럽게 살았다고 해서 죽을 때 억울한 마음으로 죽는 것도 아니여. 자식들을 위해 죽는 날까지 일하다가 죽는 게 더 복된 거여. 하느님도 그걸 더 이쁘게 보실 거구."

가사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자신의 말년 고생까지도 하느님의 관점으로 파악하시고,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한 한 과정으로 생각하시는 어머니시니, 나로서는 이보다 더 큰 하느님의 은총이 달리 없으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곤 합니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어머니께 죄스러운 마음도 한량없지요. 아내는 방학 동안만이라도 어머니를 좀 편케 해 드리려고 했더니 또 연수를 가게 되었다며 더욱 죄스러워 했고….

어머니는 수술 후 1차 검진을 받으러 가시는 길에 뒷동 동생네 가족까지 동행하여 대전에서 삼형제 가족이 다 모이게 된 사실을 무척 반기시는 눈치였습니다. 행사라면 행사인데 그냥 갈 수 없다시더니 다시 동치미를 한 동이 담그시고, 생굴을 사다가 무를 썰어서 '흰젖'을 담그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비싼 꽃게를 사다가 게장까지 담그시더군요.

그 동안 어머니를 위해서 아들 딸 모두가 진심으로 기도하며 신경을 많이 썼지요. 특히 안양에서 사시는 누님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동생이 매달 대전까지 먼길을 가서 약을 타오는 수고도 큰데 약값까지 도맡게 할 수는 없다며 매달 20만원씩을 보내 주시더니, 얼마 전에는 2백만 원이 넘는다는 최고급 '옥매트'를 사서 보내 주셨지요.

"제일루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맏이루 태어나서 고생두 제일 많이 허구 공부두 중핵교배끼 뭇헌 큰딸 덕분에 내가 큰 호강을 허네. 이백몇십만 원짜리 요 위에서 잠을 다 자구…. 그런디 이걸 하느님께서 좋게 보실라나?"

이런 어머니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이런 요 위에서 주무시면서도 몸이 건강해지지 않으면 그게 바로 죄겄지요"라고 농담을 했지요.

어머니께서 오늘 받게 될 수술 후 1차 검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생각하면 나는 긴장이 됩니다. 대장의 암세포 때문에 시나브로 피가 새나가서 초래되었던 빈혈 증상의 회복 여부와 암세포의 검출 여부 따위를 검사할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검사 결과야 며칠 후에 나오겠지만, 나로서는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오기만을 빌고 또 빌 뿐입니다.

어머니의 수술 후 1차 검진 결과―그것이 좋게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가족 모두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 가족 모두의 '새해 첫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위해 우리 가족은 오늘도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공주를 거쳐 대전에 가는 내 승합차 안에서도 우리 가족은 어머니를 위해 '묵주 기도'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부부는 내일 저녁에 옥천에서 열리는 언론개혁운동 관련 행사가 성황리에 잘 치려지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 나라 역사 발전의 한 굽이를―희망의 한 지평을 볼 수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올 한해가 참으로 좋은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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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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