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억년 역사가 맥박치는 그랜드 캐년

<미국여행기8> 살아 있는 역사교과서

등록 2002.01.24 07:02수정 2002.01.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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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돌아다니다' 혹은 '많은 것을 겪다'는 의미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다. 다른 곳들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겪는다는 뜻이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여행의 의미이지만, 결국 '무엇인가를 얻는다는 것'은 곧 '자신을 좀더 깊게 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과 좀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순간부터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은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 생각한다.


힘차게 맥박치는 협곡

"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LA에서 북동쪽으로 500마일(약800km)을 8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려 도착한 그랜드 캐년에서의 첫 느낌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황량한 사막을 지나 펼쳐진 자연의 모습은 거대하고 웅장했다. 지평선 끝에 시선을 고정시켜 온 산하를 내 눈 속에 담았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느낌이었다. 망망대해에 나 홀로 떠 있는 기분을 느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그랜드 캐년은 햇볕이 드는 위치에 따라 형형색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살아 있는 자연 그 자체였다. 햇볕이 비치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변화하면서 내 시선을 유혹했다.

인간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 듯, 그랜드 캐년은 콜로라도 고원의 사막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그랜드 캐년은 애리조나주의 북부 동에서 서로 흐르는 콜로라도 강 주변의 370km에 이르는 긴 협곡을 나타내는 말이다. 애리조나 주 북서부의 고원지대가 수 백만 년동안 콜로라도 강에 침식되면서 거대한 협곡을 형성한 것이다. 그 웅장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이 협곡을 발견한 탐험가가 '거대한 협곡'이라는 뜻으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랜드 캐년 남쪽언저리에 있는 마터 포인트(mather point-내가 간 그랜드 캐년 남쪽에는 일종의 자연 전망대가 여러 곳 있는데, 그 중에서 전경을 가장 넓게 볼 수 있는 곳이 마터 포인트다)에서 바라보니, 협곡 아래로 흐르는 콜로라도 강에 의해 형성된 삼각주 부근에 있는 하바수파이 인디언 보호지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바수라는 말은 '푸른 물'이란 뜻으로 하바수파이는 '푸른 물에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곳에는 현재 "하바수파이 종족 300여명 정도가 소규모 농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랜드 캐년 국립 공원의 설명이다. 콜럼버스에 의해 신대륙이 침략 당하기 전 하바수파이와 같은 인디언들은 바로 그랜드 캐년뿐 아니라 아메리카 곳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연방정부에서 따로 지정해 놓은 보호구역에서만 살아가고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

이러한 그랜드 캐년은 한마디로 고대 지구의 생성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층마다 색깔을 달리하며 고대 지구의 각 시대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또한 그 생성의 기나긴 시간을 쉽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장엄한 모습은 단지 잘 조각되어 있는 커다란 바위 이상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자연의 역동적인 힘에 의해 오랜 세월 동안 조용히 변화해 가는 생명력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은 인간이 정해 놓은 기준으로 봐도 70~80여 년의 아주 짧은 시간이다. 이는 자연의 삶과 비교해보면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다. 상전벽해를 거듭하며 2억 년을 버텨온 자연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연도 이렇게 능동적으로 스스로 변화 발전해 간다. 이곳은 바로 이런 자연의 능동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와!"하던 내 외침은 다시 내게 메아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우리에게 자연은 늘 정복과 개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자연의 울타리 안에 존재함에도, 자연과 동등한 위치에서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자연을 변화 발전시키며 유지하고 있다. 갯벌의 생명력보다는 경제적 이윤이 앞서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인간을 위한 자연의 변화만을 강요해온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자연으로의 '도돌이표'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은 "자연을 자연 그대로 관리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이는 인간에 의해 자연이 관리되는 의미와 인간에 의한 개발을 막는다는 의미가 같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폐차에서 나온 고철로 국립공원 유지에 필요한 건물의 골격을 세우고, 자연채광을 통해 건물 안 온도를 유지하면서 자연에게 가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개발을 실험해 보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중심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중심으로 자연을 그리고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상징적인 의미이다. 단지 새 철골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그 조그마한 건물의 에너지를 화석연료가 아닌 자연에서 얻는다는 것만으로 자연을 존중하고 아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연의 생명력을 인정하고, 자연 안에서 공존의 방법을 찾아가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사고의 중심을 인간이 아닌 자연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저 수많은 세월을 거치며 바람에 의해 깎이고, 강물에 의해 다듬어지면서 자연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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