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들을 '질투'하게 만드는가

<베이징리포트> '질투병'에 걸린 중국인들

등록 2002.02.06 16:08수정 2002.02.0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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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일까?
누구나 살아가면서 행복하고 싶다는 소망은 가져도 행여 불행하고 싶다는 꿈을 품는 바보들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은 종종 우리가 의도하지 않는 사이에 알게 모르게 우리들을 습격하는 때가 있다. 굳이 직접적인 현실로 그 불행과 만나지는 않더라도 불행하다고 느낄 만한 징조들과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생각들이 시시때때로 우리들을 '불행'하다고 여기게끔 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근원 중에서도 가장 압권은 혹시 타인에 대한 '질투'가 아닐는지. 이것은 절대로 나의 우둔한 머리에서 어느날 갑자기 발명되어져 나온 생각이 아니라, 예전부터 동서고금의 많은 성인들이 미리 간파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또 며칠 전 서점에서 우연히 본 버틀란트 러셀의 '행복론'이라는 책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일반적인 인성의 모든 특징 가운데서도 질투는 가장 불행한 정서다"라고.

러셀이 가장 불행한 정서라고 말한 이 '질투'가 드디어 중국인들의 정서도 습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면, 지금 중국인들은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동의어가 돼버리는 꼴일까? 그렇게까지 심각한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고, 단지 나의 새친구 쭈링을 보면서 문득 하게 된 중국인들의 '질투'에 관한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잡담을 좀 하고 싶다.

왜냐하면 내가 최근에 사귀게 된 중국인 친구 쭈링이 바로 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질투쟁이' 유형에 속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공원에서 여군 쭈링을 만나다

쭈링은 얼마 전 새로 사귀게 된 나의 중국인 친구다. 아는 사람들이 방학이라고, 설날이라고 모두 한국으로 고향으로 가버린 통에 나만 또 꼼짝없이 베이징의 방구들을 긁어야 한다는 게 너무 억울해서, 당분간 나의 말벗이 되어줄 동무를 '사냥'하고자 간 베이징의 챠오양 공원에서 만난 올해 스물다섯살의 말띠 아가씨다. 게다가 그녀의 직업은 중국인민해방군 산하 해군 소속의 여군이다. 베이징 소재의 모 부대에서 선전부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1년간의 장기휴가를 신청해서 매일 '놀고 있는 중'이다. 그날, 공원에서 나의 그물망에 걸려든 것도 할 일이 없어서 집 근처의 공원으로 바람쐬러 나왔다가, 역시 그날따라 할 일이 없어서 한가하게 사람사냥이나 나온 나와 딱 마주친 것이었다. 쭈링은 나도 자기처럼 매일 할 일 없고 심심한 날나리라고 여겼든지 우리들의 그 만남을 '기가막힌 인연'이라고 표현했다. 생각해보면 참 기가막힌 인연임엔 틀림없었다.

그날. 공원에서 쭈링을 처음 만난 날, 우리는 밤늦게까지 아주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더 이상 재미가 없는 공원을 나와 그녀가 산다는 근처의 셋방으로 가서, 시장에서 장을 봐와 함께 저녁을 지어먹고, 음악을 듣고, 그녀의 사진첩을 보고, 또 같은 부대의 동료군인이라는 그녀의 남자친구에 대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쉴새없이 입들을 놀려댔었다.

쭈링이 기거하고 있는 셋방은 내 자취방 마루의 반정도 될까말까하는 크기에 이인용 침대가 하나, 그리고 각종 잡동사니가 놓여 있는 조그만 책상과 부엌용도로 쓰이는 '역시 작은' 탁자 하나, 그리고 난방을 하는 조그만 연탄난로가 전부인 몹시도 궁색한 살림이었다. 게다가 쭈링의 몸집은 날렵한 군인의 몸매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대(?)해서 그 좁은 방을 더 비좁아 보이게 했다.

▲ 여군 쭈링의 기골장대한 모습 ⓒ 박현숙
사실 쭈링의 그 비대한 몸을 보면서 조금 의아했던 건, 무슨 군인의 몸이 저렇게 뚱뚱할 수 있는가였다. TV에서 보는 중국 여군들은 처녀군인이건 아줌마 군인이건간에 대부분이 건강미 넘치는 호리호리하고 날렵한 몸이었는데, 쭈링은 그러한 상식과는 어긋나 보이는 몸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첫날부터, 차마 그런 실례되는 질문을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사연이 있겠거니'하면서 넘어갔다.

그러나, 그날 이후 거의 매일같이 둘이 죽이 맞아서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가만히 그녀를 관찰해보니 쭈링의 그 군인답지 않게 비대한 몸과 매번 듣는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고약한 말습관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질투가 상당부분 그 원인제공을 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늘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 스물다섯살 여군 쭈링

마침 올해는 그녀의 띠인 말의 해다. 그런데 말처럼 날쌔고 패기가 넘쳐야 할 이 젊은 아가씨가, 그것도 직업이 군인이라는 아가씨가 영 맥이 없고 사는 것도 추욱 늘어져 있다. 그리고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끝마다 '지겨워, 따분해'를 연발한다. 마치 밥먹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그 말로 맺음을 해야만 앞서 한 말들이 소화되는 기분을 느끼는 것 같았다.

고향이 쑤저우이고 허난성 루어양(河南省洛陽)의 외국어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했다는 그녀는, 대학교 1학년때 군에 자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 이후 배치받은 곳이 바로 해군소속의 베이징 소재 모 부대의 선전부서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사진첩 속에는 선전부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중국의 유명 연예인들의 실물사진들이 꽤 있고 현재 군출신 연예인으로 잘나가는 동료 여군들의 분장한 사진들도 종종 눈에 띈다. 그리고 그 사진들 속에는 불과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퍽이나 날씬한 몸매와 예쁜 종아리를 가졌던 그녀의 전성기때 모습도 전시되어 있다.

예쁘고 날씬했던 자신의 지난날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쭈링은 나에게 "그때는 날 쫓아다니던 남자들도 참 많았다"며 지금의 남자친구도 그 당시 자기를 쫓아다녔던 남자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당시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지금 쭈링의 남자친구는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군인다운 듬직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한때 그녀에게 정말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 속 지난 여름의 쭈링은 정말 예쁘고 씩씩하며 발랄한 생기가 통통 튀고 있는 여느 스물다섯 아가씨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쭈링은 이미 여름 사진 속의 그녀가 아닌 듯했다. 내가 쭈링의 이상한(?) 증세들을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한 것은 그녀와 만난 둘째날부터이다.

첫날밤 무수한 수다를 떨면서 우리둘이 공통적으로 합의를 본 것은 "둘다 별달리 구애받는 것이 없고 그다지 바쁠 일도 없으니까 같이 놀자"라는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근무지가 베이징 외곽인 만리장성 부근이고 가끔씩 외출금지령까지 내려져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밖에 못 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지금 일 년간의 장기 휴가를 받아놓은 상태라 앞으로 일년동안 죽 할일이 없다고 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남들보다 잘나고 싶고, 또 잘나가는 사람들을 질투하는 질투병에 걸렸다. 사진은 중국 타이산의 모습. ⓒ 박현숙
일 년간의 휴가라는 말에 조금 놀라서, 왜 그렇게 긴 휴가를 신청했냐고 물었더니 다른 설명없이 "사는 게 지겨워서. 그리고 난 노는 걸 너무 좋아해. 군대도 놀기는 좋았는데 아무래도 간섭하는 게 많아. 내년에는 남자친구랑 같이 꽝져우에 가서 놀 생각이야. 베이징도 이젠 지겨워"하는 게 아니겠는가. 게다가 앞으로 일 년 동안 뭘 할 생각이냐고 물으니 그저 노는 일 외에 할 일이 없단다.

이제 스물다섯 살밖에 안된 쭈링이 왜 어느날 갑자기 사는 게 그렇게 지겹고 따분해졌는지, 그때는 짐작조차 못했다. 나도 가끔씩 사는 게 따분하고 베이징이 지겹다고 느껴질 때가 있으니, 쭈링도 조금 이른나이에 '그때'를 맞는 것일 수도 있겠거니 했다.

그러나, 쭈링의 그 지겨움증과 어느날 갑자기 찐 살들 그리고 일 년 동안 삶의 목표가 없어진 것은 대부분이 자기보다 잘나가고 있는 동료 선전부원들과의 비교의식이 낳은 열등감과 자포자기가 유발한 것이었다. 적어도 내 추측은 그렇다.

쭈링의 구체적인 증상들을 열거해보면 이렇다. 하루는 둘이 베이하이 공원에 가기 위해 한참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차가 막히는 바람에 버스가 잠시 길 위에 멈춰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쭈링이 나의 팔을 잡더니 손가락으로 창문 밖 맞은편 정류장의 광고간판을 가리키는 것이다. 유명한 다국적 기업의 초콜릿 광고간판이었다.

쭈링은 그 광고에 나오는 여자들 중 한 명이 바로 자기 동료라고 하며 "별로 예쁘지도 않은 애가 출세를 했단 말이야. 쟤, 같은 부대에 있었 때는 별볼일 없었는데 어느날 군대영화 관련 일을 하다가 알게 된 감독 눈에 잘 띄어서 저렇게 출세를 했지 뭐야..."라며 입이 한발은 쭈욱 나와서 구시렁거리는 것이다.

또 같은 날, 모 라이브카페를 갔을 때 일이다. 그곳은 내가 아는 중국인 친구가 밤에 노래를 부르는 곳이라 데려간 곳이었는데, 술이며 음료수 값이 상당히 비싼 데라 주로 중국의 고소득층 화이트칼라들이 많이 오는 장소였다. 자연히 그곳에 오는 젊은 여자손님들의 차림새는 일류급일 수밖에 없다.

외출할 때마다 항상 군복과 군모를 착용하는 기이한 습관을 가진 쭈링은 얼마 안 있어 슬그머니 군복상의를 벗더니 의자 위로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과일쥬스만 홀쩍거린다. 그러다 우리들 앞에 앉아 있는 '부티'나는 한무리의 여자들을 한참 보더니 또 입이 한발은 나와서 퉁퉁거리는 것이다.

"쟤네들이 먹는 거 다 옆에 있는 저 남자가 돈을 낼 게 틀림없는데, 넌 쟤들이 뭐하는 애들일 것 같아? 분명히 머리에 사상(思想)은 없으면서 돈많은 남자나 꼬시려고 혈안이 된 애들일 거야. 얼굴만 예뻐가지고... 사상이 없는 애들이야..."

내가 보기에는 그저 멀쩡한 사람들이건만 쭈링이 보기에는 조금 어딘가 비정상적인 사람들로 비쳐진 것이다. 나는 순간 그녀가 '질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이런 쭈링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한번 우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역시 버스 안이었는데, 사람들이 꽉 찬 버스 안에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승차를 하셨다. 연세가 적지 않은 분이었고 손에는 지팡이까지 짚고 있었는데도 누구 하나 자리를 양보할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사실 중국사람들은 좀 이상하게도 노인들에 대한 자리양보 의식이 부족하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할아버지는 계속 서 있었고 보는 나도 마음이 불편할 정도였다. 그런데 쭈링이 갑자기 그 할아버지가 서 있는 자리로 가더니 그 앞에서 모른 척하고 앉아 있는 어느 40대 중년의 아주머니에게 대뜸 이러는 것이다. "동지! 이 할아버지에게 자리 좀 양보하는 게 어때요? 연세가 이렇게 많으시고 몸까지 불편하신데 당연히 자리를 양보해야 되지 않아요?"

쭈링의 목소리가 워낙 컸던데다 군복에 군모까지 착용하고 있었던지라 버스 안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쭈링에게로 향했다. 당시 쭈링의 표정과 태도가 얼마나 당당하고 힘이 넘쳐 보였든지 나도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젊은 여군의 호령에 무안해진 그 아줌마가 자리를 양보한 것은 당연했고, 할아버지는 쭈링의 부축을 받으며 그 자리에 무사히 앉을 수 있었다. 우리가 내릴 때까지도 쭈링의 그 '군인자세'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의연했다. 눈에 힘까지 들어간 채.

버스에서 내리고 난 후 쭈링은 "사람들이 통 문화가 없어, 문화가..."라고 말하며 군모를 다시 한 번 고쳐 쓰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쭈링만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우월감이었다.

나중에 만리장성 부근에서 근무한다는 쭈링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쭈링의 일 년간의 장기휴가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일 년 동안 살빼고 오라"는 군대의 암묵적인 명령인 듯했다. 왜냐하면 셋이 같이 밥을 먹다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무심코 쭈링에게 한 말을 듣고 내가 지레짐작을 한 것이다.

한참을 맛있게 먹고 있는 그녀에게 남자친구는 "너 그래 가지고 어디 살빼겠냐. 조금씩 천천히 좀 먹어"라고 했던 것이다. 그 다음 장면은 말을 안해도 충분히 상상히 갈 것이다. 쭈링이 얼마나 길길이 화를 냈을지.

쭈링은 어제도 전화를 하더니 '한국음식 먹으러 가자'고 한참을 졸랐다. 며칠 전까지만해도 한국음식은 웬지 맛이 없을 것 같다며, 역시 음식은 중국음식이 최고라고 혼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중국음식 예찬론을 늘어놓더니만 갑자기 입맛이 변한 것인지 한국음식을 먹자는 것이다. 하여튼 변덕도 죽끓듯 하는 친구다.

▲베이징 대학교에서 게시판에 붙은 새로운 정보들을 보고 있는 학생들. ⓒ 박현숙
'질투병'에 걸린 중국인들

어제밤,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는데 어떤 채널에서 세 명의 사람들이 나와 무슨 토론을 열띠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리모콘 돌리던 일을 중단하고 가만히 들어보니 주로 중국의 축구전문 여기자 리시앙의 '벼락출세'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관한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리시앙은 중국 국가대표팀 감독 밀루티노비치와 가장 친한 여기자이고 천문학적인 원고료를 받고 있는 축구전문기자이다. 그녀가 여자인데다 그렇게 많은 원고료를 받다보니 중국언론에서는 그녀와 밀루티노비치간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둥 다소 악의적인 보도들도 많았다. 그날 출연자 중에는 축구 관련 남자기자도 있었는데 그가 한 말이 압권이었다.

"저도 솔직히 리시앙 기자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성공하는 걸 보고 배가 아팠습니다. 나는 정말 몇 년 동안 그 바닥에서 현장경험을 쌓으면서 축구에 관해서라면 박사도 부럽지 않을 정도인데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애송이 여기자가 어느날 갑자기 벼락출세를 했으니 배가 안아프겠습니까.

사실 그녀는 운도 좋았습니다. 만일 국가대표팀이 이번에도 본선진출에 실패했었더라면 그녀에게 남는 것은 실패자라는 소리와 밀루티노비치 감독과의 스캔들뿐이었겠죠. 다행히 운이 따라줬던 것인지 결과는 성공했고 그래서 오늘날 리시앙이라는 여기자도 뜬 거죠.

그러나 엄밀히 말한다면 리시앙의 성공은 그녀가 일구어낸 노력의 대가라고 봐야 합니다. 남자들이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축구의 세계에서 여기자가 그것도 축구를 잘 몰랐던 여기자가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것도 벼락출세라고 불릴 만큼 성공을 했다는 것은 행운 못지않게 우리가 모르는 그녀만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만큼 성공하지 못한 우리들이 뒤에서 뭐라고 구시렁거리는 것은 솔직히 질투입니다. 질투..."


지난해말에 중국에 새로나온 책 중에는 <99가지 종류의 중국인>(九十九種中國人)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현대 중국인들을 99가지 종류로 분류를 해놓고 하나하나씩 그 구체적인 유형들을 분석하고 정리해놓은, 오늘날 중국인들을 이해하기에는 딱 좋은 참고서가 될 만한 재미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정리해 놓은 중국인의 첫 번째 유형이 바로 공교롭게도 '질투병에 걸린 중국인'이다. 원작에 나와 있는 중국어를 그대로 옮기자면 지금 중국인들 중에는 '紅眼病'(질투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오늘날 중국인들은 이러한 질투병에 걸리게 된 것일까. 이 책 저자의 생각도 그렇고 내 생각도 그런 게, 중국사회가 어느날 갑자기 개혁이다 개방이다 해서 사람들보고 "너희들 맘대로 한번 돈벌고 싶은 만큼 벌어봐라. 그래서 남들보다 먼저 부자가 되는 꿈을 꿔봐라"라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온갖 경쟁을 부추기고 남보다 먼저 잘나가보라고 채찍질을 해댔으니 중국인들의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대학동료가 어느날 미국의 하버드대학의 장학생으로 뽑혔다는 얘기를 듣고, 또 그가 성공해서 어느날 '하버드 유학시절'같은 성공스토리를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로 떼돈을 벌게 되고, 또 어느날은 이웃집의 누구가 주식투자에 성공해서 벼락부자가 되었더라라는 소문을 들으면서 아직도 성공하지 못한 다수의 중국인들은 그들을 질투하는 것 외에는 그리고 그 질투로 인해 자신이 더욱 초라하고 못났다는 생각을 하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울분과 부러움을 해소할 길이 없는 것이다.

위 책의 저자는 순진하게도 이러한 질투병에 걸린 중국인들을 향해, 평소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데 힘쓰고,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히며 아량이 넓은 가슴과 사심을 줄이는 데 주력하라고 당부하고 있지만 질투병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고상한 방법으로 쉽게 고쳐질 수 있는 병인가.

예전에 같은 부대 안에서는 별볼 일 없었던 동료가 어느날 세계적인 초콜릿 회사의 광고모델로 성공하는 걸 눈앞에서 목격한 내 친구 쭈링의 그 질투와 그로 인해 세상살이마저 지겹고 따분해진 심정을 어찌 아량과 수양만으로 다스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나이쯤 되면 '질투병'이 사라질 수 있을까. 사진은 베이징 베이하이 공원에서 매일 노래를 부르는 한 할머니의 모습. ⓒ 박현숙
'질투'당하는 사람은 행복할까?

나도 무수히 많이 주변사람들을 질투했왔고 지금도 질투하고 있다. 그 질투라는 것도 처한 생활조건에 따라 대상이 시시때때로 바뀐다.

지난 여름, 돈이 없어서 거의 한 달간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을 무렵에는 돈가진 사람들을 질투했었다. 그리고 매일 생각하는 것이라곤 어떻게하면 나도 떼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대책없는 망상과 공상뿐이었다. 그때는 나도 쭈링처럼 "저것들은 어디서 저렇게 돈이 샘솟듯 나오는 것일까? 다 부모님 등골을 뽑아먹거나 어디서 삥땅친 돈들일 거야"라며 그들을 저주하곤 했었다.

그러다 주머니에 돈푼좀 생기고 먹고 살 만해지면, 다시 또 다른 질투의 대상이 생긴다. 예를 들면 중국에 나와 있는 가련한 노땅 미스들이 흔히 농담으로 하는 '꽁쓰파'(꽁쓰는 회사라는 뜻으로 중국에 주재원으로 나와 있는 사람들이나 그 부인들을 통칭해서 농담으로 부르는말)들에 대한 질투도 그중 하나이다.

지난해 잠시 나와 같이 살았던 모 후배는 어느날, 베이징 한복판에서 대학동기와 딱 마주쳤다고 한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그 대학동기는 이른바 우리들이 질투하는 꽁쓰파였던 것이다. 잘 나가는 회사의 주재원 남편을 따라 베이징에 온 그 동기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집에, 가정부, 차까지 딸린 데다 돈걱정없이 하고 싶은 공부며 취미활동을 다 하고 산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나와 함께 밤마다 떼돈벌 궁리를 하고 있었던 그 후배는 그날 집에 돌아와 씩씩거리며 한참을 그 꽁쓰파 동기에 대한 부러움반 자신에 대한 신세한탄 반을 늘어놓았다.

역시 요지는, 대학때 그저그랬던 누구는 지금 화려한(?) 꽁쓰파가 되어 베이징에서 잘먹고 잘살고 있고 당연히 잘나갈 줄 알았던 자신은 왜 밤마다 (나같은 사람하고) 허황된 꿈이나 꾸며 공부에 치이고 돈에 치이느냐는 것이다.

그때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내가 했던 말이 "그럼 우리도 꽁쓰파가 되볼까?"였다. 그러자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이 더 걸작이었다. "이 베이징 바닥에서 돈 많고 잘나가는 놈들 중에 눈삐었다는 사람 있다고 들어봤어, 언니?"

그렇게 꽁쓰파를 질투했던 그 후배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는 여전히 베이징에 남아 질투쟁이 쭈링과 놀고 있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마음에 아량이 생긴 것인지 아니면 잘나가는 남들 질투하기에 그만 지친 것인지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해한해 불안한 중국생활을 넘기면서 깨달은 건, 잘나가는 남들 질투해봤자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차라리 남 질투하는 시간에 혼자서 떼돈버는 상상이나 하는 게 오히려 더 달콤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질투당하는 당사자라고 결코 상상만큼 행복하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남부럽지 않은 직장과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한 친구가 언젠가 한번은 나에게 메일로 "난 네가 부러워. 외국에서 오죽이나 자유로울 것이며 하고 싶은 일도 맘대로 하고 남 신경안쓰며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 나는 완전히 매인 몸이다. 정말로 니가 부러워 죽겠다"라며 내가 보기에는 그 친구야말로 '호강에 초친 소리'를 하고 있질 않은가. 그 친구가 나를 질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럽다는 메일을 받아보고는 '허허'하고 웃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답장을 날렸다. "내가 부러우면 너하고 나하고 바꾸자. 난 네가 부러워 죽겠다. 이것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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