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면 행복하다'는 철없는 속병

<베이징 리포트> '떠남'을 준비하는 후배에게

등록 2002.01.30 08:03수정 2002.01.3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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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설핏 잠이 들까 말까 하고 있는데, 갑자기 '꽈다당'하고 뭔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놀라서 나가보니, 문 앞에 놓여 있던 음수기(飮水機)를 받치던 작은 탁자가 그만 물통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있다. 그리고 마루바닥으로는 물통에서 새어나온 물이 흥건히 흐르고 있다.

급히 전기코드를 뽑고 쓰러진 음수기를 일으켜 세우려니 물통 가득 차 있는 물의 무게 때문에 쉽지 않는다. 물은 계속 새나와서 바지가랑이를 적시고 있는데 그놈의 음수기는 좀체로 세워지지 않는다. 결국 물이 반쯤이나 샌 다음에야 음수기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마루바닥의 물을 대충 닦고 남은 물기를 없애기 위해 그 위에 신문지를 가득 덮은 다음에야 새벽녘에 벌어진 이 느닷없는 사태는 얼추 마무리가 되었다. 가끔씩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을 맞는 경우가 있다.

철 없었던 '독립'의 꿈

중국에 오기 전에는 한 번도 혼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아니 딱 한번 있기는 있었다. 대학졸업 이후에 학원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 알량한 돈푼 좀 번다고 폼을 잡으면서, 부모님에게는 돈도 벌고 공부도 하려니 집에서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내세워 독립을 선언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는 부모님이 시골 어느 친척의 결혼식에 가신 사이 혼자서 짐을 싸들고 가출을 해버렸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약속된 가출이었다.

그러나 행복할 줄 알았던 집 떠난 생활은 불과 5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부모님의 핀잔과 동생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나에게 돈을 주던 학원이 망하고, 그러다 보니 월세를 못내게 되고 게다가 주인할머니마저 흉악해서 얼마 안 되는 보증금마저 날려버린 채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도 혼자 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5개월여의 비참한 가출의 말로를 경험한 나는 당시 '이제 다시는 집을 떠나지 말아야지. 이렇게 좋은 집을...'이라는 결심을 하며 엄마의 당부처럼 잠시 '속을 차렸었다'.

2년 뒤, 또 다시 그 병이 재발했다. '혼자 살면 행복할 것 같다'는 철없는 속병말이다. 그래서 또 '독립선언'을 했다. 그때는 핑계도 더 거창해져서 세계를 호흡해야겠다고 설쳐댔다. 그리고 공부를 좀더 해야겠다고.

그러나 세계니 공부 같은 건 솔직이 구색이었고, 역시 최대의 관심사는 혼자 사는 것이었다. 지난 가출의 경험상, 이번에는 아주 멀리 떠나기로 한 것이다. 그래야만 또 다시 거지가 되더라도 쉽게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왜 그렇게 혼자 살고 싶어했는지 모르겠다.

생활은 '전쟁'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비행기를 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땅을 밟으면서 나의 행복한 독립이 시작되었다. 공항을 빠져나오는 차에서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중국인들의 거대한 은륜의 물결은 당시 내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행복의 물결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그 자전거의 물결처럼 밀려올 것 같았던 행복은 다시 대학기숙사를 탈출해서 일반 중국인 아파트로 옮긴 이후부터 여지없이 깨지기 시작했다. 기숙사의 바글바글한 분위기와 거의 90%가 어린(?) 한국 대학생들이었던 게 못마땅해서 그곳을 박차고 나와 시작한 새로운 생활은 말 그대로 전쟁같은 생활이었다.

전쟁같은 생활은 전에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의 소소한 일에서부터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어느날 갑자기 멀쩡하던 수도꼭지가 새고 있다든지, 또는 어느 날 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전기가 나간다든지, 하수도가 막혀 물이 안 내려 간다든지, 세탁기가 없던 시절에는 겨울이면 빨래를 들고 이 대학 저대학 유학생 기숙사로 가 몰래 도둑빨래를 해야만 한다든지, 물값 받으러 온 중국인 관리인과 몇 푼 안 되는 물값 문제로 싸움이 붙는다든지, 게다가 한번 장을 볼 때마다 한꺼번에 사놓은 야채와 먹거리들이 혼자서 다 처리하지 못해 반이 썩어서 버려야 할 때의 그 속상함이라든지...

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전쟁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하나씩 그 전투요령들을 터득하게 되고 제법 꾀도 늘어난다. 자주 나가는 두꺼비집의 전기퓨즈 같은 문제는 아직도 찌리한 전기공포로 인해 웬만해서는 접근을 안 하려고 하지만 나의 잦은 구원요청을 받고 옆 집의 중국 아줌마가 매번 용감하게 공구를 들고와 두꺼비 집의 끊어진 퓨즈를 수리하는 것을 본 뒤로는 솔직히 고강도의 충격을 받았다. 그 중국 아줌마의 전기같은 강인함에 '나도 저렇게 해야 한다'라는 자극을 받은 것이다.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남녀학생이 각기 가정과 기술로 분리된 수업을 받았던지라, 혼자 살기 전까지는 전기니 기계 방면의 일들은 나와는 먼 친척뻘도 안 되는 안중에도 없던 문제들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평균적인 여성들보다 더 심한 기계치였던지라, 심지어는 컴퓨터의 온갖 자질구레한 전원들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TV와 VCD를 어떻게 연결하는지조차 몰라서 초기에는 매번 구원군들을 부르곤 했었다.

이제는, 나도 그런 방면에 있어서는 준 박사급 정도는 되었다. 전기방면의 문제는 아직도 무서운 일 중의 하나지만, 하수도를 어떻게 뚫어야 뻥소리 나게 잘 뚫는지, 물 계량기의 눈금을 어떻게 정확하게 읽는지, 컴퓨터 연결같은 건 이젠 해체를 한다 해도 다시 이을 수 있을 것 같고, 음식을 어떻게 적당히 준비해야 하는지, 중국인들과의 말싸움에선 어떻게 현명하게 대응을 해야 한다든지, 심지어 얼마 전에는 고장난 중고세탁기와 일주일을 씨름한 끝에 멋지게 수리하는 기술까지 터득해 버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터득한 혼자 사는 생활의 비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산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바로 위에서 시시콜콜하게 주절거렸던 전기퓨즈의 문제와 하수도, 물값, 음식쓰레기 등의 자질구레한 생활과 때로는 피곤한 일상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방세와 하루, 한 달, 일 년을 먹고 살아야 하는 물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아주 중요한 진리를 터득했다. 그것이 없으면 행복한 독립은 그야말로 '개풀 뜯어먹는' 망상이라는 것을.

화려한 '떠남'을 준비하는 후배에게

내가 사랑하는 한 여자 후배가 6년간의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고 곧 예전의 나처럼,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보다 넓은 세계를 호흡하기 위해 떠난다고 한다. 이제 막 '서른의 강'을 넘보고 있는 나의 후배의 그 '떠나고 싶다'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런 맘이 들 때는 누구도 그 바람기를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을 '나'를 통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짐까지 다 보내고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 놓았다는 후배에게 "그래, 훌훌 잘 떠나 버려"라고 격려는 해주었지만 이미 그 방면으로는 어느 정도 노하우를 터득한 이 선배의 안쓰러움과 괜히 드는 노파심을 알고는 있는지.

화려한(?) 삼십대의 시작을 새로운 환경에서 준비하고 싶다는 나의 후배는, 그러나 반년 뒤 아니면 일 년 뒤쯤에는 나와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것을 안 봐도 훤히 알 수 있다. 혼자서 전기 수리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막힌 하수도도 용 쓰고 뚫어야 하고, 현지인들과 뻔질나게 싸워야만 하고, 먹다 남은 혹은 미처 먹지 못한 음식들을 얼마 동안은 줄기차게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때로 심심할 때는 혼자 공원을 걸으면서도 앞뒤옆 사람 생김새에 괜히 '실실' 쪼갤 줄 아는 서글픈 유머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후배야. 너는 혼자 떠난 그 이후의 생활이 이렇게 화려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그저 그렇고 그럴 뿐인, 오히려 누추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짐작이나 하고 있는 거니?
한 때는, 한국에서 끊어온 비행기 오픈티켓의 유효기간이 아직 남아 있었을 때는, 가끔씩 그것을 꺼내 만지작거리며, 정 못견딜 정도면 언제든지 다시 날아가자고 위안을 하던 때도 있었단다. 그런데 그 오픈티켓을 이미 오래 전에 써버리고 다시 이 지긋지긋한 전쟁같은 생활들이 기다리는 베이징으로 돌아와서 생각한 게 뭔 줄 아니?

'선택'이라는 것은 결코 비행기의 오픈티켓이 아니라는 거야. 언제든지 정해진 기간 안에 맘만 먹으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오픈된' 시·공간들이 아니라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화려한 삼십대를 준비하기 위해 떠난다는 나의 사랑하는 후배야.
부디 훌훌 멋지게 떠나서, 나에게 고압전기같은 강한 가르침을 주었던 그 중국 아줌마처럼 씩씩하고 건강한 '삶'을 개척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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