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트랜트 레즈너는 인더스트리얼 음악의 황제다. 인더스트리얼 음악이란 반복적 컴퓨터 음향과 때려 부수는 듯한 드럼 머신, 존 케이지의 불협화음으로의 회귀,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듯한 소리 등을 수반하는 전자 음악의 한 형태다. 그러나 레즈너는 상처받은 듯한 목소리와 음을 움직이는 가사로 '산업 혁명’을 이끌었다” (TIME) 위 글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이 지난 1997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명중 트랜트 레즈너가 이끄는 원맨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를 선정하면서 밝힌 요지이다. 차가운 기계음, 인간적인 면은 전혀 찾기 힘든 신서사이저 사운드,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의 가사, 락계의 '살아있는 전설’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을 압축할 수 있는 표현이다. 90년대 이후 락계의 중심에서 한치도 흔들리지 않은 채 전세계 락 매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나인 인치 네일스. 지난 89년 [Pretty hate machine]으로 데뷔하며 90년대 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나인 인치 네일스가 첫 공식 라이브 앨범을 발매하였다. 나인 인치 네일스를 이끄는 유일한 멤버이자 밴드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한 트랜트 레즈너(Trent Reznor). 65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가 현재 자신이 추구하는 인더스트리얼에 이르게 된 데는 고교시절, 신서사이저 악기를 구입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인기를 끌던 휴먼리그, 디페시모드 등 신스팝 계열 밴드의 음악을 접했던 그는 신서사이저와 기계음에 대한 조화를 연구, 이를 응용하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적 스타일을 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이력은 끊임없는 파격과 실험의 연속이다. 어둡고 분위기 있는 전자음, 디스토션 걸린 기타 연주, 극단적인 절망 등을 표출한 문제의 데뷔작 [Pretty hate machine] (’89)으로 인더스트리얼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 올린 트랜트 레즈너는 EP [Broken](’92)에서는 수록곡 ‘Happiness in slavery’의 잔혹한 뮤직비디오로 인해 상영금지조치와 법원 고소를 당하며 뉴스메이커로 떠오르기도 했다. (행위예술가 봅 플래니건이 연기한 이 뮤직비디오는 봅이 눈가리개를 한 채 기계와 채찍 등에 의해 고문당하는 모습이 나오며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어 90년대 락의 최고 명반 중 하나로 꼽히는 [The Downward Spiral](’94)에서는 한층 강화된 헤비한 사운드를 앞세우며 트랜트 레즈너 본연의 실험적인 스타일을 구축했으며 더블앨범으로 발매된 [The fragile](’99)에서는 그동안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인간적인 내음을 느낄 수 있는 관현악 사운드를 도입하는 등의 변화를 도모하였다. - '사실상의 베스트’ [And All That Could Have Been] 지난 2000년 4월부터 6월까지 두 달간에 걸쳐 벌인 라이브 투어 ‘Fragility 2.0’을 담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라이브 앨범 [And All That Could Have Been]은 여러 모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본작은 90년대 락의 주요 연구대상인 트랜트 레즈너의 그동안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사실상의 베스트 앨범 역할을 하고 있으며 팬들에게는 스튜디오 앨범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인더스트리얼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대니 로너(Danny Lohner, 베이스), 제롬 딜론(Jerome Dillon, 드럼), 찰리 클라우저(Charlie Clouser, 키보드), 로빈 핑크(Robin Fink, 기타) 등 트랜트 레즈너와 함께 하는 공연 멤버들이 펼친 ‘Fragility 2.0’ 투어는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지로부터 ‘Best Tour (2000)’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앨범은 데뷔작 [Pretty hate machine]의 수록곡 ‘Terrible Lie’ ‘Sin’으로 포문을 연다. 원곡보다 더욱 헤비해진 사운드를 구사하며 듣는 이를 휘어잡는데 이어 [The Fragile]에 수록된 ‘The Frail’ ‘The Wretched’를 통해 암울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스레쉬메틀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비트가 인상적인 ‘Wish’, 일렉트로니카의 색채가 짙은 ‘Closer’는 레즈너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트랙이기도 하다. 앨범의 말미에 흐르는 ‘Starfuckers, INC’는 지난 2000년에 발매된 [The Fragile]의 리믹스 앨범 [Thing falling apart]에 세 가지 버전으로 리믹스됐던 트랙으로 필자가 가장 추천하는 트랙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나인 인치 네일스의 데뷔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음악을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앨범에서 고르게 선곡된 본작은 완벽한 음향상태, 테크니컬한 연주력 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완벽함이 마치 스튜디오 앨범을 듣는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로 관객들의 함성, 호흡이 결여돼 있어 일말의 아쉬움 또한 주고 있다. 중간 중간 트랜트 레즈너의 멘트를 삽입하며 관객과 함께 하는 분위기를 앨범에 담았다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싶다. 라이브 앨범이란 자체만을 두고 평가한다면 본작은 결코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 대상이 트랜트 레즈너라는 점을 놓고 봤을 때 본작은 아직 그의 음악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그를 추종하는 팬들에게는 필수적인 소장 목록이 될 것이다. 아직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본작을 접하면서 나인 인치 네일스의 내한 공연이 언젠가 성사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첨부파일 수록곡 - sin 수록곡 - starfuckers, inc.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