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관한 지적 모험으로의 초대

존 캅의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

등록 2002.04.02 20:59수정 2002.05.0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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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제목을 보았을 때, 고 함석헌 옹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는 책제목을 슬쩍 본뜬 것 아닌가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면 "생각하는 기독교인 되기"(Becoming a Thinking christian)가 이 책의 원제목이기 때문이다. 하긴, 평생 그리스도인이었으면서도 기독교의 배타적 경계를 뛰어넘어 드넓은 사상을 펼쳤던 함석헌의 책제목을 따른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함석헌 옹은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와 같은 책들을 통해서 낡은 기독교를 통렬히 비판하면서 새 시대에 걸 맞는 종교로 거듭날 것을 외치지 않았던가?

과연 이 책은 깊은 잠에 취한 그리스도인들을 흔들어 깨우려 하고 있다. 그것도 신학자, 목회자와 같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아닌 일반 평신도들을 말이다. 저자는 1장에서부터 "평신도들 역시 이미 신학자들이다"라고 선언한다. 그것은 의과대학에서 사용되는 의학 서적들을 거의 공부하지 않는 일반인들이 건강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즉 자신의 문제에 관해 무조건 전문가에게 의지하려는 습관을 넘어서 스스로 생각하는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주문하려는 것이다.


저자 존 캅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은퇴한 뒤 평신도 신학을 연구하며 위기에 빠진 교회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 교회가 쇠퇴하는 진짜 이유를 교회와 신학의 분리 및 신학적 성찰에 교인들이 폭넓게 참여하지 못하는 데서 찾고 있었다. 그의 분석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귀담아 들을만한 지적이다.

왜냐면, 대개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신학/신앙 담론은 목회자의 전유물처럼 되기 쉽고 매주 행해지는 "설교"도 목회자만의 일방통행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신도들의 경우에는 설교 내용에 불만이 있든 없든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을 피력할 공간 자체가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은 기독교 신학/신앙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도무지 익숙하지 않다. 많은 시간을 종교생활로 보내고 있음에도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적극적으로 대답을 찾아 나서는 데 낯선 것이다.

이 책은 평신도들이 오늘날 기독교가 직면한 주요 쟁점 문제들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매 장의 끝에는 반드시 "당신의 신학을 하라"가 딸려있어 앞서 논의된 내용들을 요약하여 독자 스스로 대답해 보도록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고 앞 부분에서 답을 미리 제시해 준 것도 아니다. 저자는 다만 특정 주제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가령, 교회 내에서 동성애를 바라보는 입장이 서로 어떠한 차이를 지니고 있는지를 저자는 보여준다. 그리고 분명한 규준이 될 것 같은 성서·기독교 전통도 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전문 신학자들도 서로 의견이 분분하므로 그들에게 의지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그 점은 5장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소설처럼 가상의 전문 신학자들을 등장시키고 유대교인의 개종 문제를 고민하는 어느 평신도와 대화하도록 하고 있다. 그 평신도와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신학대학 교수들은 각각 선교학, 교회사, 신약학, 조직신학을 전공한 교수들이다. 한데 그들이 말하는 유대교인들 개종에 대한 의견은 서로 상이하다. 결국 그들의 의견을 참조하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통해 판단해야하는 것이다.

이처럼, 평신도들 스스로 신학적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는 책은 매우 드물다. 특히, 신학 담론 자체가 신학대학 내에서나 겨우 통용될 뿐인 한국의 경우 꼭 필요한 책이 아닌가한다. 저자가 의도하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하여 다방면에서 많은 경험과 전문 지식을 소유한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신학적 논의에 참여하면서 신학이 상아탑에서 벗어나 대중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

존 캅 지음, 이경호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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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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