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당한 지구, 어떻게 살려내지?

노엄 촘스키 외 지음 <프리바토피아를 넘어서>

등록 2002.04.10 18:25수정 2002.05.0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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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인 프리바토피아(privatopia)는 "사유화의 유토피아"를 뜻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미국 문화, 즉 맥월드 문화(culture Mac World)에 대한 야유 섞인 신조어이다. 본디 공공의 광장이었던 상점가마저도 상업을 최적화하기 위한 개인소유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대형 상점가 건축이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이러한 맥도날드의 세계는 통합과 획일화를 강요하면서 미래로 돌진하는 또 하나의 미국으로, 우리 주변에 이미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유럽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르몽드 디쁠로마띠끄>에 기고한 글들 가운데서 21세기를 맞아 테마별로 엄선한 것들을 엮어 펴낸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오늘의 세계를 바라보는 유럽 좌파 지성들의 시각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시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한국 민중운동 진영의 그것과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들에게서 프랑스를 기축으로 하는 지극히 유럽적인 관점이 간혹 엿보일 때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제국"이라 일컬었던 지구적 자본 괴물에 대해 범세계적 저항연합의 가능성과 그 희망의 전조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이냐시오 라모네는 이렇게 말한다.

"이젠 지겹다. 시장이 정치 지도자들을 대신해 결정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지겹고, 세계의 몸과 정신이 상품으로 전환되는 것을 보는 것도 지겹고, 앉아서 당하는 것, 체념, 굴종도 지겹다"

한마디로 "고삐가 풀린 채 무한 질주하는 이 자본의 망령에 어떻게 제동을 걸 것인가"가 저자들의 공통된 관심사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글이 단순히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글들로 일관하고 있는 건 아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계급인 하이퍼 부르주아지에서 맥월드 문화, 바이오 테러리즘, 인터넷과 정신 지배, 지적 소유권, 제3세계 부채 탕감 문제 등 저자들 관심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글 자체의 성격도 그렇지만, 세계적인 석학들이면서도 그들은 난해한 말들과 수사로 치장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늘어놓지 않는다. 오히려 명쾌한 분석과 비판, 대안제시가 돋보이는 글들이 많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세계를 전율케 하였던 탄저균과 같은 생물학 무기의 문제를 다룬 부분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 글에 따르면, 미풍이 부는 하룻밤 동안 워싱턴과 같은 도시에 탄저병 바이러스 100킬로그램을 공중 살포할 경우, 무려 100만에서 300만 명까지 죽일 수 있다면서 최근 생물학 무기가 빈국의 핵무기로 등장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이런 끔찍한 생물학적 테러는 국가차원이 아닌 민간차원에서도 가능하다는 게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가령,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에서 발생한 옴 진리교 종파의 사린가스 살포와 보툴리누스균 발견이 그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 글의 저자는 미국처럼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 "예방차원의 공격"을 계획하기보다는 진정한 사회보장의 재구축, 국제관계를 민주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꾸만 주변부로 밀려나는 국가와 개인들에 의해 이러한 테러가 언제든지 자행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에서 보듯이, 결국 인류는 공존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게 가장 현명한 길이라 판단된다. 지금처럼 기본적인 식품의 세계총생산은 수요의 110%에 달하는 데도 매년 3천만 명의 인구가 굶어죽고, 8억 인구는 기아에 허덕이는 어리석은 행진을 조속히 멈춰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침묵하는 다수"가 아닌 "행동하고 실천하는 다수"가 요청된다. 우리가 뽑지도 않은 금융시장을 장악한 자들이 세계 질서를 어지럽혀 혼란과 공포를 가중시키고 인류를 자꾸 사지로 몰아가는 데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프리바토피아를 넘어서

피에르 부르디외 외 지음, 최연구 옮김,
백의,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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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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