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바쁜 걸음으로 개천 길을 따라 걷는다. 여덟 시 이십사 분, 출근시간 육 분 전이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등교한 뒤인지, 몇 녀석이 후다닥 뛰어 지나갈 뿐, 길거리가 한산하다. 나는 좀더 재게 발걸음을 놀린다. 그때 뒤에서 내 앞을 휙, 무엇인가 스쳐 지나간다. 깜짝 놀라 길가로 물러서며 그 물체를 바라본다. 자전거다.
그런데, 자전거 뒷꽁무니에 매달려 가던 아이가 뒤를 돌아보더니 내게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성생미임, 아영하세요?"
민성이다. 민성이가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타고 등교하는 중이다. 나는 그만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만다. 얼른 손을 들어 민성이의 인사에 대답을 해주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 사이 벌써 민성이가 탄 자전거는 저 멀리 교문 앞에 다다라, 운동장으로 사라진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민성이의 그 어눌한 인사 소리에 갑자기 내 마음이 환하게 맑아진다. 민성이는 정신지체아다. 제 딴에는 열심히 말을 한다고 하는 것도 정상적으로 되지 않고 발음이 엉망이다. 그래도 책을 읽으라고 하면 온 정신을 다 집중해 떠듬떠듬 읽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그런 민성이의 흉내를 내며 놀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민성이는 마음에 상처 하나 받지 않고 시키면 또 읽었다.
지난번 내 시간에는 갑자기 수업 중에 벌떡 일어나 교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민성이의 뒤를 쫒았는데, 어떻게나 잽싼지 금방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하면서 수업을 조금 더 진행하고 있는데, 교실 뒷문 쪽에서 민성이 얼굴이 나를 향해 잠깐 나타났다가 얼른 숨어 버렸다.
나는 계속 수업을 하며 앞문으로 가서 휙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보았다. 내가 앞문으로 나온 줄도 모르고 민성이는 또 교실 안쪽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야, 민성이. 너 왜 안 들어오고 그러고 있어?"
내가 소리를 지르자 민성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쌔액 웃었다. 그 웃는 얼굴이 더없이 맑아 보였다.
"왜 안들어오니?"
내가 다시 추궁을 하는데, 이미 교실의 아이들이 모두 복도쪽 창에 매달려 그런 나와 민성이의 모습을 구경삼아 바라보고 있었다.
민성이는 또 머리를 긁적이더니 입을 열었다.
"성생밈 수업하미, 들가면 혼나까요."
선생님이 수업하는데 들어가면 혼날까봐 밖에서 그러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녀석. 그래도 들어와야지, 거기서 기웃대면 어쩌란 말이야. 그래, 어디 갔다 왔니?"
"쉬야 매려 변소 갔셔요."
민성이가 제 사추리께를 가리키고 쑥스러운 듯 다시 머리를 긁적인다. 말할 때마다 머리를 긁적이는 것이 녀석의 버릇인가보다. 가만히 보니 교복 바지 앞쪽이 약간 젖어 있다. 어지간히 급하긴 급했나보다.
수업이 끝난 뒤 민성이네 담임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담임이 정색을 했다.
"민성이 때문에 미치겠어요. 왜 그런 아이를 특수학교에 안 보냈나 몰라요. 정말 걔 때문에 한시라도 마음 놓을 날이 없다니까요."
그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 민성이 담임은 조회나 종례도 잘 안 들어가고, 어쩌다 교실에 들어가면 잔소리에 야단만 불같이 치는 사람이다.
민성이네 반에서 쇳소리가 튀어나오면, 지나가던 선생들이 이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저 황 선생, 어제 남편하고 한바탕 했나보군."
하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미운 오리새끼마냥 겉돌기만 하는 민성이가 담임에게 큰 부담인 것만은 틀림없으리라.
민성이는 늦동이다. 아버지가 오십이 다 되어 낳았는데, 낳아 놓으니 불행하게도 정신지체아였단다. 그래도 민성이 아버지는 민성이를 어느 자식보다도 애지중지 길렀단다.
초등학교 때도 육 년 내내 민성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했다는데, 중학교에 입학한 요즘도 그 일은 계속된다. 아침마다 아버지 자전거 뒷꽁무니에 매달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보온 도시락을 어깨에 걸쳐 메고, 가방은 자전거 핸들에 달랑달랑 매달고 민성이는 학교에 온다. 앞에서 자전거를 모는 민성이의 아버지 머리는 이미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그 흰 머리가 바람에 날린다. 민성이는 그런 제 아버지 허리를 꼬옥 껴안고 학교에 온다.
와도 배울 것 하나도 없는 학교, 공부는 늘 꼴찌고, 다른 친구들 놀림을 받을 때도 있는 학교에 오늘처럼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온다. 오다가 오늘처럼 제가 아는 선생님이라도 만나면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성생미임. 아영하세요?"
그 소리가 해맑다. 흐린 날에도 개인 날에도 민성이 목소리는 늘 쾌청이다.
그래, 까짓 것. 공부가 무슨 대수냐. 그런 거야 살아가는 방편일 뿐이지, 존재의 전부는 아니지 않느냐. 맑은 마음씨 하나만 있다면, 너의 존재 가치는 이미 충분한 것이리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빙그레 웃는다. 교문을 들어서다 보니, 민성이 아버지가 다시 내 앞을 휙 스쳐간다. 아이를 내려놓고, 운동장을 폼 나게 한바퀴 돌아 집으로 가는 민성이 아버지의 머리가 교문 앞 포풀러 잎새처럼 싱그럽다.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민성이가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계단 아래 앉아 무엇인가를 정신없이 들여다본다. 가만 보니 계단 틈새에 피어난 민들레 노란 얼굴을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 그런 민성이 얼굴이 꼭 민들레 여린 꽃송이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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