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거꾸로 흐르는 현대인

<전원일기 3> 맥 놓고 산길 걷기

등록 2002.04.08 22:44수정 2002.04.09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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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방태산 밑에 계시는 한의사 한 분께서는 간경화는 병도 아니라는 주장과 함께 난치의 환자들을 고쳐 방태산의 화타로 불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의 책을 읽어보니, 대체로 그분의 치료법의 요결은 사람마다 타고난 기력을 되찾아 사람몸의 자연스런 균형과 조화를 되찾게 한다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사람의 기라는 것은 단전을 중심으로 한 하체에 머무르는 게 정상인데, 현대문명의 이기로 하체의 움직임은 적어지고, 오로지 머리 쓰는 일에만 치중된 현대인들은 그 기가 거꾸로 상체로 올라와 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혈행이 원만치 않게 되니 작은 병에도 스스로 몸의 치유력을 잃어 탈이 나게 된다는 말인데, 그분의 치료법이란 위로 올라간 기를 원래의 자리로 끌어내리는 것 - 즉 다리를 많이 움직이는 것이 하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명의의 의술치고는 너무 단순하고, 상식적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가만히 보면 그 너무도 단순한 그 말을 제대로 실천하고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하는 생각도 뒤미처 따라옵니다. 아는 분이 만보기라는 걸 허리에 달고, 시간만 나면 이리저리 어정거리며 애써 걷기를 힘쓰는데, 하루에 오천 보 걷기가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집 앞에서 차에 올라타고 승강기로 사무실로 올라가면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온통 머리만 쓰는 도시민들로서는 정말 그 몸에 탈이 안 나는 게 기이할 노릇이지요. 이러다 보면 기가 거꾸로 흘러 늘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겁고, 공연히 얼굴이 달아오르고, 조그만 일에도 격노하거나 흥분하기 쉽다고 합니다.

그 화타 선생은 방태산 꼭대기에 전기도 안 들어가는 토막집을 짓고, 죽을 표정을 한 환자들이 찾아오면 거기에 들게 한다고 합니다. 일단 그 토막집까지 오르자면 엄청나게 걸어야 하고, 토막집에서 배가 고프면 다시 산을 내려와야 하니, 다리를 쓰다 보면 어느새 위로 올라간 기가 제 자리로 내려오게 된다는 겁니다.


이와 함께 반욕법이란 걸 쓰는데, 대체로 겨울에 얼음 깨고 들어간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그 물에 몸을 하반신만 잠기게 한다는 것은 참 처음 들어본 것이지요. 그 원리가 추우면 사람 몸이 열을 낸다는 것인데, 기가 허해진 하체를 많이 쓰고, 추운 얼음 물에 들어가 열을 내게 함으로 스스로 힘을 되찾게 하는 것이랍니다.

그 분의 말 가운데, 모든 병은 걸으면 낫게 되는데, 자리에 눕게 되면 죽게 된다는 겁니다. 그 말을 뒤집어보면 요즘 현대인의 많은 병들은 걷지 않는 데서, 걷게 만들어진 다리라는 걸 그저 몸에 편히 달고 다니는 데서 생기는 것인 듯합니다.


현대의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여전히 자연치료법과 한방의학에 의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최근 들어, 채식주의자들이 늘고, 관광지를 벗어나 호젓한 숲을 찾는 분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채식만으로도 성이 안차 아예 생식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의 집에는 부엌에도 불씨라곤 없더군요.

그저 사시사철 집 주변의 야산에서 푸른 빛만 나면 죄다 먹거리가 된다 하는데, 밥상을 차린 것이 모두 푸른 풀들을 그릇에 담아 놓은 것입니다. 거기에 곡식가루를 섞어 드시는데, 한 가지 흠이라면 너무 맛있어 과식하게 되는 거라니 참 해보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요.

놀랍게도 겨울철 눈밑에서도 그분들의 먹거리인 푸른 풀들이 있더군요. 특히 겨울을 이겨내는 것들이 지닌 강인한 힘이 사람 몸에 좋다 하더군요.

그런가 하면 봄이 되면 축령산 휴양림에 가면 나이 드신 분들이 삼림욕을 하는 걸 보게 됩니다. 처음엔 나이 지긋한 노부부께서 아름드리 나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몸을 당기는 광경을 보고 내가 무언가 은밀한 광경을 훔쳐본 거 같아 얼굴이 붉어졌는데, 가만히 그분들의 동작을 살펴보니, 서로의 몸이 아니라 나무에 몸을 부딪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왕성하게 새 순을 돋구는 나무에 몸을 맞대어 그 생기를 받아들이기 위함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

또 볕바른 날이면 아침결에 그 밑에 담요를 깔고, 옷을 벗고 맨몸으로 그 기를 받는 분도 있다 합니다. 과학적인 해석으로도 잣나무나 소나무와 같은 송백류에서 내뿜는 물질들이 적정한 살균작용을 한다는 말이 있고, 실제로 솔밭을 걷다 보면 상쾌한 솔향기가 몸에 느껴지긴 합니다.

그 밖에도 땅의 기운을 받기 위해 맨발로 걷는 분들, 흙을 고운 체로 걸러 그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는 분들. 요즘엔 숯막에서 나오는 목초액이 좋다는 말이 널리 퍼지고 있으니 실제로 그것의 효과가 있든 없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보상심과 본능적인 균형감 같은 게 있나 봅니다.

이런 자연요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간단하고, 널리 알려진 것이 걷기인 듯합니다. 조깅이라는 것도 관절에 무리가 간다는 지적도 있는 걸 보면, 오로지 가볍게 걷는 것이 좋은데, 그냥 거리를 걷는 것은 운동량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지루하여 싫증이 나기가 쉬우니, 한적한 산길이나 숲을 걷는 게 가장 이상적인 건강 관리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봄이면 나물 뜯으러 다니고, 여름이면 버섯, 가을이면 밤이나 도토리 주우러 다니는 분들의 건강 관리도 훌륭한 방법이긴 하지만, 무엇인가 목적을 가지고, 특히 무엇인가를 얻어내는 걸음이 자칫 마음의 평정을 잃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무엇이든 강박적인 소유와 목표가 설정되어 있는 현대인의 삶에서 때로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홀가분히 자신을 숲에 풀어놓고 산길을 걸어 보는 것도 멋진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시골에서 살다 보면, 싫든 좋든 걷게 되는 기회가 많지요. 때가 되어도 오지 않는 개들을 찾으러 다녀야 하고, 눈이 오면 차가 다니는 마을길까지 넉가래를 밀고 걸어야 합니다. 아이도 고개를 두어 개 넘는 산길로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그걸 끌고 가는 게 거추장스러운지 걸어다니기도 합니다.

녹음이 짙은 고갯길에서 도란도란 아이들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한참 뒤에 나타나는 아이와 친구들의 걷는 모습은 보기에도 참 한가롭고 싱그럽게만 보이는 풍경이었습니다. 가을이면 구절초가 길가로 늘어선 산길을 걷노라면 꼬리에 고추장을 묻힌 듯한 잠자리들이 어깨에 나붓이 내려앉기도 하는 그 길, 봄이면 길섶에서 어미꿩이 조막만한 새끼들을 거느리고, 일렬로 줄지어 지나가는 그 길을 실로 얼마만에 걷는 것일까요.

그러나 그렇게 걷는다는 것도, 그 느릿한 걸음으로 맥을 놓고 산길을 거니는 것도 사실은 삶의 여유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속에 살아도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면, 좀체 그런 걸음을 즐길 수 없으며 후다닥 차를 몰고 나가기 급급하지요. 결국은 어디서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이며, 시골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도심의 바쁜 일정과 욕심을 거닐고 오는 이상, 이처럼 좋은 봄날의 산길을 맥놓고 걸을 기회를 얻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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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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