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집 짓는 사람

등록 2002.05.20 08:58수정 2002.05.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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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부딪치는 문제는 어디로 갈까입니다. 한동안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겨우 갈 곳을 정하고 나면, 다음은 집이 문제입니다. 새 집을 짓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지요. 이번부터는 시골살이에 필요한 집에 관해 몇 가지 이야기를 이어 써볼까 합니다.


물골안에서는 좀 번화한 마을에 사는 후배가 있지요. 초등학교 후배격이 되는 사람인데, 아파트에서 살 때 술자리에서 내가 물골에 들어가서 살자고 술김에 한번 이야기를 했는데, 얼마지 않아 그이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바로 들어가더군요. 그 후로 나를 볼 때마다 바람만 넣고 본인은 안 들어온다고 원망도 많이 들었는데, 그만큼 추진력이 있는 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작년 가을부터 집앞 마당에 마루를 짓는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들렀는데, 솜씨가 제법인지라 아예 마루가 아니라 지붕까지 얹어 방을 들이는 편이 낫다고 바람을 넣었지요.

나로서는 그이의 손재주를 칭찬하며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인데, 며칠 지나니 지붕을 얹는답니다. 혼자서 끙끙거리고 하는 게 참 대견하기도 하고, 돕지 못하는 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어느 결에 그 무거운 샌드위치 패널을 지붕에 얹고 나니, 이왕의 내 찬사와 바람도 멎을 줄을 모르고 아예 그 위에 이층 다락방을 얹어 보라고 했지요.

결국 마루를 내달려던 일이 나중에는 아예 증축으로 이어지고, 그이나 나나 온종일을 직장에 매달리고 나면 남는 시간이란 건 저녁뿐인데, 가을 해라는 게 여우 꼬리보다 짧기만 하지요. 그런데 이 양반이 일을 벌이는데 하루 지나고 보면 집 모양이 덜컥덜컥 들어섭니다.

다락을 올리라던 내 말은 어느 결에 정식 2층집이 되었고, 나는 어떻게 그 무거운 조립식 지붕 패널을 그 꼭대기로 끌어올렸는지 경탄할 뿐입니다. 그저 경탄만 하기도 뭐해서 이왕 올린 2층 구조를 보니 맞배 지붕 뒤가 비스듬히 뒤로 주저물러 앉게 경사가 져서 전체적인 집 모양이 살지 않다고 돈 안드는 조언을 해주었지요.


그리고 다음날 가 보니 그 무거운 지붕이 수평으로 올려져 있는 겁니다. 이 박력 있는 사내가 그 날, 내 얘기를 곰곰히 생각하다가 결국은 그 컴컴한 밤중에 자동차 쟈키를 들고 올라가 그 육중한 지붕을 떠올렸다는 겁니다.

한 옆으로 뽀족탑 모양의 다락방까지 만들 때는 까마득한 사다리에 매달려 패널을 올리고, 못을 박고, 사이딩을 돌리는 모습이 거의 곡예단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짜임새 있게 짜여진 것이 아니라 수시로 뒤바꾸고, 애써 구해온 문짝을 써 먹지도 못하기도 하고,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제 각재를 세우고, 합판을 치고, 단열재를 채우고, 마감을 하고, 창문을 뚫고, 문틀을 짜고, 손수 유리까지 끼우고, 층계도 만들어 2층으로 잇고, 싱글을 덥고, 사이딩으로 외장까지 마친 박선생을 곁에서 보며, 나는 참으로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그이의 얼굴에 감도는 깊은 성취감과 즐거움의 표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뒷산의 참나무를 베어다 기둥을 세우고, 자신의 논에서 벤 짚을 지게에 지고온 황토에 섞어 손수 자신의 집을 지었던 옛 선조들의 삶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그이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집 짓는 일이란 것이 결코 혼자 하기는 힘든 일이지요. 판자에 못 하나 박는 것도 누군가 밑에서 판자를 들어주는 것과 혼자서 들고 한 손으로 박는 일은 단순한 두 배의 힘 이상이지요.

그럼에도 늘 밖으로 나도는 바람에 바람만 넣고, 말로만 이래라 저래라 하는 - 그이의 말로는 감리단이라고 합디다 - 내가 무척이나 낯 뜨겁고, 미안하지만 지금도 이번의 경험했으니 형님 집은 충분히 잘 지을 수 있다고 말하는 후배를 대할 때면 몸둘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나중에 마을의 후배들과 함께 거들기도 했는데, 그리 좋아하더군요. 혼자서 천정의 합판을 박을 때는 거의 사람 두 배 크기는 되는 얇은 합판을 머리로 이고, 한쪽에 재빨리 못을 박고, 그것이 떨어지기 전에 달려가 다른 쪽의 못을 박아야 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합판을 가만히 들어만 주어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뾰족한 지붕에 덮개를 씌우는데, 추녀 끝에 못을 박기 위해 거꾸로 매달리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도움 - 그 이의 다리에 줄을 묶어 버티고 있는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나는 눈앞이 아찔해지더군요.

그 짓을 혼자서 해 왔다고 생각하니 후배가 미련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게도 느껴졌습니다. 생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짬짬이 집을 짓는 바람에 아직도 완성이 되지 않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여기는 후배를 보면, 자신의 살 집을 자신의 손으로, 또는 이웃과 함께 짓던 옛사람들의 노고가 반드시 고통스럽던 것만은 아니리라고 넌지시 헤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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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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