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를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

예수의 의미(마커스보그&N.톰라이트 공저)

등록 2002.06.03 21:37수정 2002.06.0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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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기독교라는 종교를 창시한 교조쯤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놀라지 마시라. 예수는 기독교 같은 종교를 생애에 만들어 본적도 없고 아예 들어보지도 못했다. 예수의 부활사건 이후, 그를 따르던 일단의 제자들이 교회를 만들어 그를 신앙의 대상으로 믿기 시작하면서 기독교라는 종교가 시작된 것뿐이다. 이 사실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와 "신앙의 그리스도(Christ of faith)"의 문제를 낳았다.

"역사적 예수"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 이전에 역사 가운데서 실재로 살았던 예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에 반해 "신앙의 그리스도"는 예수의 죽음 이후에 체험되고 기독교 전통에 의해 고백된 예수를 말한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는 연속-불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정도가 어떠한가에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기독교의 역사는 이 둘의 구분을 불필요한 것처럼 소홀히 해왔다. 각종 신조로 덧칠된 예수가 아니라, "역사적 실재 인물로서의 예수"가 신학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진 것은 계몽주의 이후였다. 그러니까 "역사적 예수"에 대한 논의는 긴 기독교의 역사에 비해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대표적인 예수 연구 학자 두 사람이 진보적 진영과 보수적 진영을 대표하여 예수에 대한 논쟁을 벌인 것을 묶은 것이다. 그러므로 최근 예수 연구의 동향과 쟁점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들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넘어서 역사 속에 실재했던 예수의 모습을 알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흥미로운 논쟁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이 두 학자는 대학원 시절 동일한 교수 밑에서 배웠으나 예수에 관해서 서로 매우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보그가 말하는 예수상(sketches of Jesus)이 영의 사람, 치병자, 지혜의 교사, 사회적 예언자, 운동의 선구자라면, 라이트는 유대교 전통에 토착적인 범주들에 비추어 이해된 메시아와 하느님 나라의 예언자로서의 예수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그는 주류 학자들의 복음서 연구 결과, 고대 유대교 연구, 예수 당시의 사회적 세계에 관한 학제간의 연구, 교차문화적 연구 등의 방법을 원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복음서의 내용을 단순히 기억된 역사(history remembered), 기억된 역사와 은유화된 역사가 결합된 전승, 사실 보도가 아닌 은유화된 역사(history metaphorized)의 전승이라는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한다. 반면 라이트는 예수 당시의 언어 용법을 중시하는 범주를 사용하면서 복음서의 이야기들이 본질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급진주의나 근본주의의 입장에서는 일정하게 벗어나 있다. 라이트의 입장이 전통주의에 기울어 있고 보그가 진보적인 듯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면만 있는 것은 아니며 서로 일치하는 지점 또한 많이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번 논쟁을 통해 예수 연구자들 간의 그간의 이견을 좁히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그들의 바램이 결코 허황된 것만이 아님을 나타낸다.


예수를 인식론적으로 어떻게 이해하든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예수와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에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보그가 말한 다음의 내용이 인상깊게 남았다.

"믿음은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별로 없다. 즉 모든 옳은 것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망나니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성자들이 이단으로 몰렸던 반면에 옳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잔인한 억압자와 무자비한 박해자였다. 오히려 기독교인의 생활은 그 전통이 가리키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인데, 그 이유는 관계가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고 변화시키기 때문이다"(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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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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