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읽기를 바라고 썼을까

<생각하는 노년이 아름답다>
<새는 빈 둥지를 지키지 않는다>

등록 2002.06.20 11:49수정 2002.06.2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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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 세 개가 있는 집에서 하나는 안방, 하나는 어린이방, 남은 하나는 공부방이라 부른다. 두 평이 채 안되는 공부방이 우리 부부의 책방이자 말 그대로 공부방이다. 출입문과 창문이 있는 곳을 빼고 책상과 책꽂이, 컴퓨터를 빽빽히 놓았으니, 두 사람이 함께 들어가기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 한 사람이 나온 후에 그 다음 사람이 들어가야 할 정도이다.

정리할 줄은 모르고 쌓아 놓기만 하는 내가 그래도 불편하지 않게 책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틈틈이 책을 살펴 보고 분야별로 정리해서 꽂아놓는 남편 덕분이다. 노인복지 공부를 시작하던 1993년만 해도 사실 노인 관련 책이라고는 손에 꼽을 만큼 밖에 없었다. 기본 이론서와 대학원 교재, 논문이 대부분이었고 시몬느 드 보부아르, 소노 아야코, 폴 투르니에의 책 정도가 다였던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 노인 관련 책들이 쏟아지다시피 나오고 있다. 남편이 책꽂이 한 켠에 아예 노인 관련 책들만 모아놓을 정도가 된 것이다. 열심히 챙겨서 읽지만 역부족이다. 노인 혹은 노년이란 단어가 붙은 책들을 구해 읽어나가면서 언제부터인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년 관련 책은 과연 누가 읽을까.

김성순씨는 책 제목 밑에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덧붙였고, 유성호씨는 책 제목 위에다가 '행복한 노후를 위한 조언'이라고 썼다. 노년에 이른 사람들이나 노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들인 것 같지만 과연 그들이 얼마나 읽었을지 모르겠다. 아마 저자에게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읽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노인복지 전문가들은 어떨까.

두 책이 서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노년에 겪게 되는 변화에서부터 노년기의 문제들, 개인 혹은 법적·사회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들, 그리고 노인복지 관련 단체 목록에 이르기까지 모아 놓고 있어서 한마디로 백화점에 들어서서 한 바퀴 휙 둘러보고 나온 것 같은 기분이다. 백화점에서 꼭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하지만, 때로는 유리창 너머 내 것이 아닌 물건을 눈으로 구경만 하기도 하지 않는가.

한 사람은 행정 관료를 거친 정치인(김성순)으로, 한 사람은 노년학자(유성호)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글도 매끄럽고 오랜 공부와 경험에 바탕을 둔 자기 목소리를 담고 있긴 하다. 하지만 기본적인 철학을 깊이있고 풍성하게 드러내 보이지는 않고 있다.

노인복지 혹은 노년학은 단순한 학문의 한 분야를 넘어 삶에 대한 자세, 죽음을 보는 눈,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 없이는 그 깊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구나 다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책만을 쓸 필요는 없지만, 노후 생활 안내서와 조언서가 넘쳐 나는 때일수록 원점으로 돌아가 나이듦과 늙어감에 대한 이해나 인식을 넓히는 곳으로 방향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백화점식으로 노년의 모든 문제와 해결 방식을 죽 나열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한 몇 가지 제언으로 이루어진 책은 이미 충분하기에 넓이보다는 깊이를 추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래야 읽을 것 같다. 노년에 이른 사람들도, 노년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아니 노년을 자신의 인생 계획표에 아직 넣지 않은 젊은 사람들도 그래야 노년에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일 것 같다.

저서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책 발간의 목표가 아니라면 다음 번에 펴내는 책에서는 두 저자 모두 다양성보다는 깊이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미 갖춘 넓이에 깊이를 더하는 좋은 책과 저자를 만나는 기쁨을 맛보고 싶다. 일단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 보기로 하면서 비좁은 방, 비좁은 책꽂이에서 또 다른 책을 골라 본다.


(생각하는 노년이 아름답다, 김성순 지음, 동인, 2002 / 새는 빈 둥지를 지키지 않는다, 유성호 지음, 미래를 위하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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