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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를 찾으며 ①
이웃 동네 외환은행에 가서
달러를 찾는다
외화 통장에 들어 있는
명명백백한 내 돈
미국에 가서 사는 누이들이
어머니 용돈을 보내 올 적마다
조금씩 남겨서 모은 돈이지만
나도 달러를 예금해 놓고 사는 사람
달러가 필요할 때마다
환전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
허나 내 통장의 달러를 찾으려면
수수료가 필요하단다
미국의 누이가 송금을 할 때도 수수료를 뗐고
내가 한국 돈으로 찾을 때도 수수료를 뗐는데
통장 안의 달러를 찾는데도 수수료를 뗀단다
내가 달러를 직접 예금한 경우에는
수수료가 붙지 않지만
미국에서 송금을 한 경우에는
달러를 싣고 오는 수송비를
수요자가 부담해야 한단다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아니, 그럭저럭 이해는 되면서도
승복하기가 어려워
창구 여직원과 괜한 실랑이
내가 직접 입금한 달러를 찾을 때는
수수료를 떼지 않는다는 말이
앞으로는 그런 예금을 많이 하라는 말로 들려서
한 순간 기가 죽는 심사
내가 더욱 초라해질 것만 같아서
서둘러 수수료를 내고
겨우 100달러를 찾아 은행 문을 나서는데
어느새 저녁으로 기울어 가는
힘없는 햇살,
점점 더 졸아들고 있는 나의 오후….
달러를 찾으며 ②
교원공제조합의 협조로
동료 교사들과 함께
아내가 금강산을 간다기에
달러를 맡겨놓고 있는 외환은행에 가서
100달러만 찾기로 했다
외국에 갈 때만 달러가 필요한 줄 알았더니
금강산을 가는데도
미국 돈이 필요하단다
평양곡예단 공연을 보는데도
달러를 내어야 하고
미국 돈이 반드시, 꼭 필요하단다
북한 땅이 멀고 먼 나라 같게만 느껴지는
얄궂은 심사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무수한 장애물 같게만 느껴지는
내 마음 역시 아직은 첩첩산중
달러를 세어 주며 관심을 표하는 창구 직원에게
아내가 금강산에 가는 거라고 했다
선생님은 안 가시느냐는 말에
달러를 지니지 않고도 갈 수 있는 때가 오면
그때 갈 생각이라고 했다
죽을 때까지 금강산 구경을 못할 지라도….
내 얼굴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가랑비를 맞으며
시장 안의 막걸리도 파는 술집을 찾아가서
내 건강 문제에 저항하듯
막걸리 두 사발을 마셨다
모처럼 만의 목구멍 해갈이
뱃속에서부터 쏴하는 쾌감을 불러일으키더니
울컥 눈물이 솟았다
만원 짜리 받기를 사양하는
처음 본 아주머니에게 200원을 빚지고
훈훈한 마음으로 술집을 나와
느긋이 뒷짐을 지고 시장 거리를 걷는데
어느 한 집의 유리창에 내 모습이 보였다
걸음 멈추고 다시 보니
정직하게 늙어가고 있는 내 얼굴이 보였다
다음 순간 내 얼굴에서
내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아아, 내 아버지의 얼굴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반가움 때문이었을까
속으로 탄성을 머금으며
아버지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느새 눈물 어린 눈으로….
먼저 잘들 가는구나
안면도 세계꽃박람회 덕분에
4차선으로 확장된
천수만 제방 길을 달린다
규정 속도 80Km를 유지하며 달리는데
자꾸만 경쟁심이 인다
마냥 자맥질을 할뿐인
내 경쟁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를 앞지르고 따돌리고
잘도 달려가는 성능 좋은 차들
문득 오기 같은 경쟁심의 유혹이 두려워
차를 갓길에 세운다
경쟁할 의지를 잃었거나
뭔가 이상이 생겨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한 사람처럼
망연히 서 있는데
더욱 빠르게
내 옆을 쌩쌩 스치고 지나가는
기세 좋은 사람들
정말 잘들 가는구나
감탄하고 부러워하며
괜스레 내 낙오를 절감하는데
언뜻 내 뇌리를 스치는 의문들
먼저 가고 빨리 가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먼저 가고 빨리 갈수록
인생 길에서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점점 신의 창에서는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스피드를 즐기며 잘 달리고
욕망을 이루며 잘 나가는 것이
제발 신의 창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기를….
옛길을 가며
4차선으로 건설된
새 길을 달리는 상쾌한 기분
한 곳을 지나는데
전에 다니던 길이 보이고
휴게소가 보였다
드넓은 마당에 차 한 대도 없고
휴지 조각만 날리고 있는
적막하고도 쓸쓸한 풍경
저 휴게소를 이용한 적이 많았지
저 꼬불꼬불한 2차선 도로가
내게는 아기자기하고 정다웠지
그대로 외면할 수는 없을 듯한 마음에
좌회전 신호를 받는다
이윽고 옛길을 찾아
한적한 길을 저속으로 달리는데
한없이 가고 싶은 마음
한참을 가다가 되돌아와서
텅 빈 휴게소 마당에 차를 놓는다
무한정 여유를 누리고픈 내 오후
어느덧 석양을 보면서도
쓸쓸한 마당이 싫지 않은
유유자적을 누리고픈 내 심회….
덧붙이는 글
8월 한 달 동안 시 형식의 글을 여러 편 지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시 형식의 글을 웹상에 올리는 일을 무척 망설였습니다. 시인도 아닌 주제에 시 형식의 글까지 짓는 일이 내심 면구스러웠고, 특히 시인 여러분께 죄송스러운 마음도 컸습니다.
하지만 저도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시 형식의 글이 참으로 적합함을 잘 인지하고 있기에 나름대로 열심히 시늉을 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짓는 시 형식의 글들은 대부분 저의 '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일종의 '생활시'들입니다.
<오마이뉴스>의 '사는 이야기' 코너를 즐겨 찾으시는 분들, 특히 제 글의 독자님들께 시 형식으로 씌여진 저의 '사는 이야기'를 들려 드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것 역시 저로서는 미약하게나마 '참된 세상 꿈꾸기'의 한 방편이기도 하겠기에….
아무튼 저의 이런 염치없는 소행을 너그럽게 보아주시기 바라며, 우선 다섯 편의 글을 오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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