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법부는 몇 시일까

<문화유산답사 36> 정동 '구(舊) 대법원' 건물을 찾아

등록 2002.10.04 19:38수정 2002.10.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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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덕수궁 돌담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그저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연인들의 데이트코스가 아니다. 이 길에는 소용돌이와 같은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역사가 녹아 있으며, 실제로 주변엔 비운에 겨운 유적들이 즐비하다. 사진은 돌담길 바닥에 깔린 블록 중 하나로, 구(舊) 대법원 건물(현 서울시립미술관)과 구 러시아 공사관 등이 보인다.
흔히 '덕수궁 돌담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그저 보기만 해도 아름다운 연인들의 데이트코스가 아니다. 이 길에는 소용돌이와 같은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역사가 녹아 있으며, 실제로 주변엔 비운에 겨운 유적들이 즐비하다. 사진은 돌담길 바닥에 깔린 블록 중 하나로, 구(舊) 대법원 건물(현 서울시립미술관)과 구 러시아 공사관 등이 보인다.권기봉

〈문제1〉 해방 직후부터 최규하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까지의 대한민국 법무장관은 모두 27명이었다. 그 중 몇 사람이 일제시대 때부터 법관을 지냈을까?

① 한 명도 없다
② 2명
③ 16명
④ 모두


〈문제2〉1995년 2월 반민족문제연구소가 해방 이후 35년에 걸친 역대 정부의 각료와 시·도지사, 대법원장, 3군(軍)참모총장, 합참의장 등 사회지도급 인사 중 일제 경력자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때 일제 경력자로 분류되는 이는 248명이었다. 그 중 법조인은 몇 명이나 있었을까?

① 한 명도 없다
② 19명
③ 69명
④ 모두


일단 이 답사기를 읽기 전에 위 문제부터 풀어보도록 하자. 어차피 지식 내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므로 답부터 이야기하자면 두 문제 모두 ③번이 정답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먼저 〈문제1〉의 경우 해방 직후부터 최규하 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까지의 대한민국 법무장관 중 절반 이상(59.3%)인 16명이 일제경력자라는 이야기인데 이는 실로 대단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해방 이후 일제 경력자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분야를 물으면 경찰이나 정치인, 문화예술인 등을 예로 드는 이가 많은 것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법조인의 친일 경력에 대해서는 다소 무관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문제2〉의 경우에는 해방 이후 35년간 정부 지도층 인사들 중에 일제 경력자로 분류되는 248명 중 27.8%인 69명의 출신이 법조계라는 사실이다. 물론 박정희와 같이 일본 육사 등을 거친 일본군 출신자들이 248명 중 36.3%인 90명에 달해 최고 수치를 기록하긴 했지만, 경찰 총수나 시·도지사 등을 제치고 법조계가 27.8%라는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한 것이다. 특히 이들 법조계 출신의 대부분은 일제 시대 때 일본 고등문관 사법시험 등에 합격해 경성지법에서 판·검사를 지냈던 인물들이라 더욱 충격적이다. 입법부나 행정부 할 것 없이 사법부 역시 일제 잔재가 거의 청산되지 않았던 것이다.


일제 법원 건물을 1995년까지 그대로 이용한 대한민국 사법부

1928년 9월 30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구 대법원 청사. 준공 당시 일제치하 대법원 격인 조선고등법원과 경성복심법원 등이 입주했던 이 건물은, 지난 1995년 10월까지 대한민국 대법원이 이용하다가 2002년 5월에 서울시립미술관이 개관하면서 법원 건물로서의 역할을 마치게 된다.
1928년 9월 30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구 대법원 청사. 준공 당시 일제치하 대법원 격인 조선고등법원과 경성복심법원 등이 입주했던 이 건물은, 지난 1995년 10월까지 대한민국 대법원이 이용하다가 2002년 5월에 서울시립미술관이 개관하면서 법원 건물로서의 역할을 마치게 된다.권기봉
그런데 이것이 사람에 그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하드웨어적인 부분에까지 사법부의 독주 아닌 독주는 계속된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3부(府)가 모두 일제 시대 때 건물에 그대로 들어갔지만 입법부는 여의도로, 행정부는 세종로나 과천 등으로 일찌감치 이사를 했다. 하지만 유독 사법부만은 1995년 10월 28일 서초동 새 청사로 이전할 때까지 계속 일제 법원이 있던 건물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물론 '건물이 무슨 대수냐'며 반론을 재기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는 일제 치하를 거치면서 수많은 애국지사·독립투사들을 형장의 이슬로 잃어갔고 또 많은 이들은 열악한 시설의 감옥소 안에서 굶주리고 고문에 못 이겨 죽어갔다. 그런 지사들에게 사형 판결을 내리고, 빛도 들지 않는다던 서대문 형무소 수감을 결정하던 일제 법원이 있던 건물을 바로 얼마 전까지 버젓이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건물을 찾아가면 이런 역사를 아는 듯 모르는 듯 그 암울했던 시대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길이 없다. 서대문 형무소는 곡절을 거쳐 결국 역사의 교육장으로 되살아났다지만, 이곳 구 대법원 건물에는 현재 화가 천경자의 작품을 비롯한 미술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법원이 서초동 새 청사로 이전한 이후 지난 5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법원 박물관이나 일제 시대 투쟁사 등을 요약한 자료관 등이 아닌 미술관으로 말이다.

멋들어진 아치식 현관에 아케이드식 창틀 등이 돋보이는 이 건물은, 해방 이후 한 층을 더 올려 4층이 되었다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바뀌면서 다시 지상 3층의 건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멋들어진 아치식 현관에 아케이드식 창틀 등이 돋보이는 이 건물은, 해방 이후 한 층을 더 올려 4층이 되었다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바뀌면서 다시 지상 3층의 건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권기봉
특히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나면서 옛 건물의 앞부분 벽만 남기고 완전히 개축하는 과정에서 내부는 물론 외부도 원래의 석조 건물 형식을 버리게 되었다.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으면 환한 유리 건물에서 오는 나름의 세련된 멋이 느껴지긴 하지만 어딘 지 모르게 어색하단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한편 지금의 서소문 일대에 법원 건물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11년경이다. 1907년에 구성된 대심원이나 경성지방법원 등은 의금부(義禁府)가 있던 공평동 현 제일은행 본점 터에 1908년 들어선 건물에 있다가, 1911년 12월 1일 고등법원(구 대심원)이 지금의 구 대법원 청사에 이웃한 의정부(議政府) 건물로 이전했고, 이후 경성지방법원 등이 같은 건물로 이주해 오면서 1928년 9월 30일 지금의 자리에 새 건물을 들이게 된 것이다.

초가을 데이트족(族)이 차지해 버린 정동…

이제 정동의 역사는 잊혀진 채 앳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나 문화 공연을 관람하는 동네가 되어 가고 있고, 정동 경운궁 선원전 터에 미국 대사관저에 이어 미국 대사관 빌딩이 들어선다는 보도가 있는 것을 보면 캐나다 대사관이나 성공회 건물 등과 함께 외국인들의 동네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담스러워 보이기만 한 경운궁 돌담길이 갖는 비운(悲運)의 역사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오늘도 정동은 다정하게 팔짱 끼고 초가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차지해 버린 듯한 느낌이다.

덕수궁 돌담길 따라 구 대법원 찾아가는 길

새문안길에서부터 들어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지하철 1호선 시청역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가장 쉬울 것이다. 시청역에서 경운궁(덕수궁) 쪽으로 나오면 돌담이 보이면서 앞쪽으로 관광 안내 부스가 보인다. 이것을 지나면 바로 경운궁의 정문인 대한문 앞인데, 그냥 봐도 대한문 왼쪽으로 길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름하여 '덕수궁 돌담길'.

'경운궁 돌담길'이라 불려야 하지만 일단 그 설명은 여기서 제쳐 두고 골목을 따라 걷자. 구불구불하게 의도적으로 구부려놓은 차도·인도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분수대가 자리한 교차로에 다다르게 된다. 오른쪽 전경들이 방망이들도 진치고 있는 곳으로 가면 미국 대사관저가 있는 일명 '하비브 하우스'고, 여기서 곧장 직진하면 정동극장이다. 그 왼쪽 길은 구 러시아 공사관과 정동 스타식스 극장 등으로 빠지는 길인데,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서있는 방향에서 8시 방향에 나 있는 작은 오르막길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안내판이 있으니 그리 애먹을 일은 없다.

이 오르막길을 오르면 이내 서울시립미술관인데 이것이 바로 구 대법원 건물로, 지금은 미술관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원래 건물의 앞부분 석벽만 살려두고 내부와 다른 외벽들은 모두 유리로 새 단장했다.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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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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