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폭발사건, 그 후 인도네시아

등록 2002.10.23 01:23수정 2002.10.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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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시내의 유명 쇼핑몰인 스나얀 플라자.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특이한 사실은 평소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서양인, 특히 백인들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옆에 있던 후배가 갑자기 한마디 말을 던졌다.

"갈 데가 없으니까, 쇼핑몰로 몰려들었구나."
"갈 데가 없다니?"
"리조트를 가겠어, 휴양지를 가겠어. 어디 다닐 만한 데가 있나? 그러니 쇼핑몰이나 산책삼아 나오는 것이겠지."

발리 폭발 사건 이후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사이에 불안감이 고조된 것은 사실이지만, 특히 집중적인 피해자들이 많았던 서양계 외국인들의 불안감은 특별하다.

비교적 이슬람적 색채가 강한 데다 도시적 성격이 강한 자카르타에 비해 힌두교가 지배적인 발리는 자유로운 분위기에 휴양지로서의 편안함과 안전함이 돋보이는 장소였다. 특히 윈드서핑이나 문화관광 등을 즐기는 서양인들이나 일본인들이 발리를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국에서 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카르타 등지에 체재하는 이들이 주말 여행지 등으로 선호하는 곳이 발리였다.

각종 휴양시설과 리조트가 제공되는 곳들에서, 테러에 대한 공포가 각인된 지금 본국으로 가지도 못하고 사정상 체재를 할 수밖에 없는 서양인들이 낮에 쇼핑몰 등을 찾음으로써 답답한 일상을 해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도 외국인이 거리를 활보하는 일은 안전상의 문제 등으로 쉽지는 않았다. 그런 까닭에 인니 주재 외국인들의 외출은 대체로 낮에 이런 저런 쇼핑몰을 찾아다니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각 쇼핑몰이나 대형 건물, 호텔에서는 삼엄한 보안 검색이 강화되었다. 이전에도 소규모의 폭탄 폭발 사건 등이 있었던 데다, 제2의 폭발 사건 가능성이 높다는 뉴스 보도로 불안과 긴장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쇼핑몰에는 어린 학생들도 여럿 보였는데, 그 학생들은 자카르타 국제 학교들이 이달 말까지 휴교령을 내린 탓에 임시 방학 상태가 되어 본국으로 귀환하지 않고 남아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이런 조심스런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인니 사회에는 폭발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 조금씩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배경에는 이번 사고로 사망한 이들 중에 인도네시아인들도 있건만, 이들에 대한 관심은 외국인 사망자들에 가려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여러 폭탄 폭발 사고들이 있었으나, 유독 발리 사건에만 이목이 집중될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거기에만 매달려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니 정부가 발표한 새 테러 방지법과 관련해 내국인의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에 대한 반론 등이 나오면서 외압에 대한 은근한 불만들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인니 유력 일간지 중 하나인 메디아 인도네시아가 현재 진행중인 여론 조사 상황을 보면 이에 대한 인니인들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아부 바까르 바시르의 체포와 관련해 "왜 그가 체포되었다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변 중 외압 때문이라는 것이 36.67%로 1위이다. 물론 그가 폭발 사건의 강력한 용의자이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30%로 2위를 달리고 있다.


또한 최근 인니 정부가 강경주의 핵심인물들을 체포하는 것과 관련해 이것이 도리어 사회 내의 반발이나 또 다른 사건을 불러일으키리라는 의견이 절반 정도나 된다. 또 다른 질문에서 응답자들은 인니 정부의 새 법안이나 조처가 테러세력을 줄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발리 사건 배후에 외국이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는 의견이 63.33%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인니 정부의 발리 사고 대처 상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었고, 사건 조사에 관련 국가들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련국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사건이 이용될 수 있다고 보는 의견이 56.67% 였다. 한편 국내 테러리스트 조직에 대한 평가에는 66.67%의 사람들이 강력한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또 다른 유력 매체인 뗌뽀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아부 바까르 바시르가 국제 테러조직에 연루되었다고 보는 응답자가 57.2%로 일단 인니 국내 조직과 국제 테러단체와의 연계를 인정하는 생각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여론 조사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사회적 여력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이고, 대부분의 인니 국민들은 아직도 합리적인 정보 접근에서 소외되어 있는데다, 전통적 사회의 사고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 의견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다. 이슬람 세력들이 전세계적으로 궁지로 몰리거나 모함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여러 정보들을 종합해볼 때 대체로 인니인들은 자국 내 테러조직의 존재와 바시르의 연루에 대해서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으며, 자국 정부의 대응 능력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국의 지나친 관여나 과도한 향후 대응 상황 등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언론에서는 발리 사건과 관련한 관련 국가들의 행태를 언급하면서 발리가 인도네시아 땅인지 외국땅인지 알 수가 없다며 인도네시아인들은 소외되었다고 언급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하니리포터에도 송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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