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자율학습 감사는 계속돼야 한다

학부형이 방향을 잃으면 학교는 망합니다

등록 2002.10.23 15:26수정 2002.10.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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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야간 자율학습 당번 날입니다. 엎드리면 코 닿을 데라 잠시 집에 들려 저녁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데 교실에 들어서자 통닭 냄새가 솔솔 풍깁니다. 아이들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오늘 학년부장 선생님께서 한턱을 쏘신 모양입니다. 거기에 음악 선생님이 집에서 삶아오신 계란까지 먹었더니 배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호들갑을 떱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들고 온 과자 봉지를 바라보는 눈길이 탐욕스럽기만 합니다.

오늘 학교에서 교사 친목회를 했습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생들을 조금 일찍 집으로 보내고 쌀쌀한 날씨지만 오랜만에 운동장에 모여 선생님들끼리 발야구를 했습니다. 야간 자율학습도 식당에 사정이 생겨 오늘만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3학년에 한해서는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터라 저녁 식사에 상관없이 남고 싶은 사람은 남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두 분 선생님이 먹거리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리 반은 오늘 야간자율학습에 아홉 명이 남았습니다. 아무래도 실업계 학교는 인문계에 비해 학구열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더욱 밤늦게 남아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대견스럽기만 합니다. 아이들도 선생님들을 고마워하는 눈치입니다. 자기들 때문에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도 못한다고 미안해하기도 합니다. 물론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강제로 자율학습을 실시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자율학습을 강제로 한다는 말 자체가 희극적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며칠 전 일입니다. 학교 전교조 분회 선생님들과 함께 고교평준화와 초등교육정상화를 위한 집회에 참석하고 난 뒤에 뒤풀이 자리에서 학년부장을 맡고 계시는 김 선생님이 저를 잠깐 보자고 하시더니 사뭇 진지한 어조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간 자율학습비 감독 수당을 받지 않으니까 솔직히 아이들에게 떳떳하긴 합니다. 하지만 학년부장의 입장에서는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에게 아무런 보상을 해줄 수 없는 것이 죄송스럽고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학생들이 낸 돈이 수고하신 선생님에게 제대로만 돌아간다면 학생들에게 자율학습비를 걷는 것도 한번 고려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김 선생님이 하필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하는 야간 자율학습을 희망자에 한해서 할 것과 자율학습비 징수 금지를 강하게 주장한 사람이 바로 저였기 때문입니다. 교육부의 지침으로도 희망자에 한해서 하지 않거나 자율학습비를 징수하는 것은 법을 어기는 명백한 범법행위이기에 저의 요구는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김 선생님의 말에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뜨끔했던 것은 밤늦은 시간까지 가정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개인 생활을 희생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에게 아무런 보답을 해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시는 김 선생님의 심정에 강한 공감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경우는 본인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순번제로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하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저는 김 선생님께 사정하듯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자율학습비를 걷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고 죄송스런 생각이 들어도 어떡합니까? 물론 법이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이익에 되는 일이라면 법을 어겨서라도 해야겠지요. 그런데 법으로 금지된 자율학습비를 징수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하는 일일까요?"

그 날 저는 거기까지만 말을 하고 끝냈지만 이런 말도 하고 싶었습니다. 돈을 받지 않고 자율학습 감독을 하는 것조차도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자율학습이란 말 그대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하는 학습을 말합니다. 그러니 자율학습 감독이란 말도 강제적인 자율학습이란 말만큼이나 희극적인 단어조합이 아닐 수 없습니다.


0교시란 말도 그렇습니다. 숫자가 1부터 시작하지 않고 0부터 시작하는 것이 이상합니다. 거기에 명칭이 0교시 자율학습입니다. 자율학습인데도 담임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감독을 합니다. 늦게 오면 벌을 주기도 합니다. 지각처리만 하지 않을 뿐 실제로 지각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율적으로 하는 공부인데도 10분만 늦게 교문을 통과해도 아침부터 운동장을 돌아야 하는 '재수 없는' 날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자율학습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교사는 무능한 교사입니다. 가끔은 자율이란 단어가 마음에 걸리기도 해서, 자율학습을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 아이들을 위하는 길일까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가 아주 가끔은 학생들에게 맡겨보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하는, 그런 생각이 많은 교사는 무능교사로 낙인이 찍히기가 십상입니다. 유능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고, 아이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단순한 열심만이 아닌)도 발휘해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의 모순된 현실입니다.

최근 감사원의 불법 보충수업에 대한 감사를 둘러싸고 매우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감사원이 전교조 부산지부가 요구한 감사청구를 받아들여 감사를 실시하려 하자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교조가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한 것은 교육부 지침을 어기고 받아서는 안되는 특기적성 관련 간접수당과 야간 자율학습비를 걷고 있어 감사청원을 한 것인데 이를 두고 학부모들이 반대를 하고 나선 것입니다.

학교에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데도 학부모로써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바쁜 생활에 쫓겨 그럴 수도 있다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바로 잡아 학생들에게 바른 교육을 해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욕설을 퍼붓고 삿대질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희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법치국가에서 '법대로 하지 마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꼴이니 말입니다.

감사원의 감사는 교육관청의 감사와는 다를 것이라고들 합니다. 불법 보충자율학습에 관련된 잘못된 것들이 낱낱이 파헤쳐져 비리의 온상이었던 학교가 쑥대밭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교육관청의 감사에는 아무 대응이 없던 일부 학부형들이 마치 생사를 건 사람들처럼 난리법석을 떠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이는 그 동안 교육관청의 감사가 얼마나 '수박겉핥기식'이었는지를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감사원의 감사도 교육관청의 감사와 크게 다를 것이 없으리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사실 학부모들의 염려와 간섭은 이 대목에서 발휘되어야 마땅합니다.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법대로 제대로 하라고 감사원에 가서 농성이라도 해야할 일입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상식이 통하는 건강한 사회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학교에 불법이 난무하면 그 최종 피해자는 다름 아닌 학생들입니다. 일부 학부모들에겐 관심거리조차 되지 않는 아이들의 도덕성의 해이를 거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자율학습만 해도 그렇습니다. 하고 싶은 아이들만 모여서 자율적으로 하면 효과도 클 것입니다. 하기 싫은 아이들을 억지로 하게 하니까 자율학습 시간이 떠들거나 잠을 자는 아이들이 대부분인 쓰레기 시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특기적성교육도 교육부의 지침대로 해야 학생들에게 유익합니다. 학생들이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자기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도움이 될만한 과목을 신청하여 수업을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 교육부의 지침입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학교는 행정편의주의에 사로잡혀 학생들의 의사는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시간표를 짜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효과가 없는 수업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간접수당도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직접 수업을 하지 않는 교장이나 교감, 심지어는 보충수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행정실장까지도 간접 수당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직접 수업을 하는 교사들이 받는 금액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거나 오히려 크게 웃돌기도 하여 말썽이 되기도 했습니다. 간접수당이 없어지면 보충자율학습의 과열현상도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 동안 비교적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특기적성교육이 간접수당의 재등장과 함께 과거처럼 다시금 과열과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입니다.

간접수당이 사라진 것은 보충수업이 특기적성교육으로 바뀌고 난 뒤의 일입니다. 교육부에서 간접수당을 못 받도록 법으로 명시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 법은 유효하여 간접수당을 받는 것은 엄연히 법으로 금지된 사항입니다. 그런데 작년 이후부터 간접수당이 슬그머니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부 학교는 이중장부를 작성하여 법망을 피해 가고 있지만 이번 감사에서는 그마저도 다 밝혀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서 해당 학교들은 초긴장 상태라고 합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비뚤어진 자식사랑으로 인해 방향감각을 잃고 질타의 대상을 혼동하는 학부모가 많아질수록 우리 교육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른 교육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려는 교사들이 설 땅을 잃고 말기 때문입니다. 대신 학교에는 아이들의 올곧은 눈망울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회주의자들과 안일무사주의자들만이 판을 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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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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