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되지 않은 중국인들의 종교관

<차이나소프트 - 문화3> 불교와 도교 중심 모든 사상 포괄

등록 2002.11.14 23:58수정 2002.11.1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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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친한 친구랑 만나서 금해야할 두 가지가 종교와 정치 이야기다. 같은 종교를 가진 이들이라면 모르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종교에 관해 논쟁을 시작하면 결국 감정을 상하기 쉽고, 또 지역감정 등 다양한 변수가 중첩된 우리나라에서 정치에 대한 생각은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기 쉽기 때문이다.

역사상 일어난 전쟁의 상당수가 종교전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말은 틀리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미션스쿨에 다녔던 고등학교 시절 기독교를 믿는 한 친구에게 다른 종교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날아온 주먹에 맞았던 기억이 있는 나에게도 종교는 쉽사리 끄집어내기 어려운 문제다. 또 수십년간 선거결과에서 지역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정치 문제도 여전히 복잡한 문제인 것 같다.

그렇다면 종교문제나 정치문제는 토론과 설득으로 쉽사리 바꿀 수 없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종교관은 중국에서도 독특하다. 기자가 사는 톈진(天津)에는 2만5천명 정도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고, 정주하는 사람은 만명 가량인데 이미 10개 가량의 교회와 2군데의 선원(禪院), 또 한 개의 천주교 모임이 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상당히 종교적인 국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국 공안당국의 엄격한 금지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하기 위해 온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사실 중국에 건너올 때까지만 해도 중국 사람들은 상당수가 불교나 유교를 신봉하리라고 생각했다. 또 우리처럼 종교간에 갈등이 없겠냐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보는 중국인들의 종교관을 보면서 상당히 놀라게 된다. 다름 아니라 종교에 대한 어떤 절대적인 믿음이 극히 드물고, 타 종교에 대해 포용적이다는 것. 물론 조선족 동포만은 극히 예외적이라고 한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종교에 대해 절대적인 탄압을 하지 않는다. 물론 티벳의 분리운동을 주장하는 일부 장족불교나 파룬궁에 대해서는 정부가 강압적으로 포교나 집회를 금지하지만 다른 종교의 경우 그렇게 까지 강하게 탄압하지 않는다.

유불선과 기독교-이슬람교가 공존


타이산 정상 위황딩. 도교사원이 이곳에서 중국인들은 향을 태우고, 열쇠를 채우며 자신의 복을 기원한다
타이산 정상 위황딩. 도교사원이 이곳에서 중국인들은 향을 태우고, 열쇠를 채우며 자신의 복을 기원한다조창완
기자의 중국어 발음을 교정해주는 개인교사인 란위(冉宇)는 스무살의 발랄한 여대생이다. 그녀에게 종교를 물었더니, 자기의 어머니와 이모가 불교를 믿어서 사원에 몇 번 따라가 봤는데, 자신에게는 특별한 종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담삼아 어머니가 불교 믿으라고 하지 않는냐 물었더니,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즉 중국에는 타인에게 종교를 강요하거나 포교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공자(孔子) 등 유가(儒家)의 위인들을 숭배하는 유교(儒敎)를 숭상할 것 같지만 중국에서 유가는 그저 제자백가의 한 분파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물론 한(漢) 시대에 공자가 왕의 권위를 능가하는 종교적인 인물로 추대된 적이 있지만 이후에는 그런 공자도 수없이 해체되면서 종교적인 색채를 띠기에 너무 평범해졌다. 또 일반에서 유교에 대한 숭배를 찾기는 쉽지 않다.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에 가도 그가 거대한 위인으로 비춰지지만 종교적 높이로까지 숭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유가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공자나 맹자 등 유가의 명인들이 많이 태어난 산둥(山東)성 지역은 가부장적 권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세다. 그 때문에 산둥성 남자들은 장가가는 데 적잖이 애를 먹는다. 이미 가정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확보하거나 오히려 우월한 지위를 확보한 다른 지역 처녀들이 산둥 남자를 유난히 꺼리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사상에 깊숙이 박혀 있는 도교(道敎)도 종교로 숭배되기에는 적잖은 한계가 있다. 어느 지역에 가나 칭양궁(靑陽宮)과 같은 도교사원을 찾을 수 있지만 종교적인 색채가 상당히 감쇄된 느낌이다. 대부분의 도교사원에는 도사(道師)들이 있는데, 필자의 눈에는 어떤 권위보다는 그들이 점을 쳐주는 것이 재밌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중국인들에게 종교라고 말하면 당연히 불교를 먼저 떠올린다. 중국에 불교가 전파된 경로는 서북인도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지방으로 전래된 북방 불교와 더불어 수마트라섬과 말레이 반도를 우회하여 남부해로를 통하여 베트남을 경유하여 중국남부에도 전해졌다. 인도의 승려가 직접 중국에 와서 사찰을 세우고 불법을 전한 경우도 있지만 법현, 현장, 의정 등은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고 불교 문화를 배워왔다.

하지만 유입 경로가 다르고 소승경전과 대승경전이 차례로 전해지면서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불교가 전파됐다. 이에 따라 자신들의 위치에 따라 나름대로 경전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교상판석(敎相判釋)이 일반화되면서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관습이나 학문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거쳤다. 이후 끊임없이 한족과 변방민족의 정권 교체 속에서 불교는 어느쪽에서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

이런 중국에도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들어왔지만 중국인들의 마음에 크게 자리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절대적인 신앙에 의탁하기보다는 당장에 그들의 삶은 좌우하는 변수들이 중요했기 때문에 종교에 눈이 돌릴 시간이 부족했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어떤 것을 강요하거나 강요받는 것 자체를 꺼리면서 서구 종교가 들어갈 틈새를 주지 않았다.

물론 그들에게 서구는 마약이나 강요하고, 자원이나 문화재를 강탈하는 존재였으니, 그들의 종교가 쉽게 수용되기도 힘들었다. 결국 중국에서는 어떤 특정한 종교가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했다. 대신에 각 사상의 중층적으로 결합하면서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

핑야오의 성벽. 유불선은 물론이고 기독교에 재물에 대한 기원까지 느낄 수 있다
핑야오의 성벽. 유불선은 물론이고 기독교에 재물에 대한 기원까지 느낄 수 있다조창완
이런 특성은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어디서나 쉽게 느낄 수 있다. 산시성(山西省) 핑야오(平遙) 고성(古城)도 한 곳이다. 서주(西周宣王 기원전 827년˜ 782년)에 처음 쌓여진 이 성은 직경 4킬로 내외의 작은 성으로 완벽히 보존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문화평론가 위치우위(余秋雨)도 유달리 좋아해서 자주 들렀던 이곳에서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가 종교다. 핑야오에는 중국 종교의 모든 것이 있다. 도교사원인 청허궁(淸虛宮)과 청황먀오(城隍廟)가 있고, 유가의 산물인 원먀오(文廟)가 있고, 성의 한켠에는 백년 가량된 천주교 교당도 잘 보존되어 있다. 또 성의 양쪽에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절인 전궈스(鎭國寺)와 수앙린스(雙林寺)가 있어 불교 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또 핑야오는 중국 최초의 금융기관인 표호(票號)를 창립한 사람으로 청조 부자의 상징인 뢰이타이(雷履太) 등 호화로운 집도 많다. 이런 집들은 부를 꿈꾸는 중국인들에게 또 다른 신전의 역할을 했는데, 이 집들의 상당수는 문화대혁명 때 집중적인 공격의 대상이 되어 집안에 있던 화려한 조각은 상당수 파괴되어 있다.

이 작은 고성 안에 수천년 동안 유교, 불교, 도교는 물론이고 근대에 들어온 천주교 성당까지 들어와서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중국 종교문화의 독특한 특징이다.

철학자 펑요우란(馮友蘭)박사가 보는 관점도 비슷하다. 다름 아니라 중국인은 종교에 그다지 심취하지 않는데 이는 "종교는 거의 대부분이 어느 정도의 미신·교조·의식 및 제도를 상부구조로 갖춘 철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철학의 시녀고,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서구와 달리 중국에서 어떤 한 종교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한다.

핑야오 고성 안에 자리한 성당. 근대이후에 세워졌지만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핑야오 고성 안에 자리한 성당. 근대이후에 세워졌지만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조창완
대중문화에서도 융합의 종교관 찾을 수 있어

그럼 그런 특성은 어디서 나왔을까. 사실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때, 몽고, 여진, 만주족 등 강한 군사력을 가진 소수민족의 정권이 결국에 동화된 이유를 놓고 다양한 해석을 한다. 보통은 한족 문화가 뛰어나서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모든 것을 흡수시켜서 자기화시키는 '블랙홀'같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중원에 자리한 한족들은 신체적으로 그리 강인한 민족이 아니다. 이는 중국역사를 보면 휜히 나온다. 한족이 중심인 주(周), 한, 수, 당, 송, 명 등의 국가는 지배기 극히 협소한 국가에 지나지 않은 과도기 국가에 가까웠던 반면에 원, 청 등은 소수민족이 지배세력으로 강성한 힘을 바탕으로 현대 중국의 위상을 상당 부분 만들었다.

한족을 중원이 지배하던 시대에도 한족들은 오랑캐라 불리던 변방 민족에 화번공주(화친을 위해 오랑캐의 왕에게 시집보내는 공주)를 보내고, 비단 한필에 지나지 않는 말을 비단 10여필을 주고 사는 등 항상 쫓기는 삶을 살아왔다. 당연히 공격성도 떨어지는데, 수나라나 당나라가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에 쳐들어오다가 참패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반면에 이들은 서구는 물론이고 자체적으로 가진 문화를 흡수시켜 핵심을 뽑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당연히 그 문화는 '짬뽕 문화'에 가깝다. 한 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서유기(西遊記)를 보면 유교와 불교, 도교 등 모든 문화가 합쳐져 있다. 황제의 명으로 가는 것은 유교적인 반면에 천도복숭아, 옥황상제 등이 등장하는 것은 도교 문화고, 삼장법사 등 일반 배경은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이런 인상은 중국 대부분의 산에서도 쉽게 느낀다. 어느 산이나 불교사원, 공자를 모신 사당등은 물론이고 도교사원 등이 이웃해서 공존하고 있다.

이런 융합의 문화는 현재도 여전하다. 한국에도 개봉해 드물게 좋은 성적을 거둔 저우싱치(周星馳)의 <소림축구>(小林足球)는 중국에서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한국에도 소수의 매니아가 있지만 중국에서 저우싱치의 인기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그의 영화들은 정전(正傳)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영화들이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종교관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영화 '소림축구'. 그 안에는 무당과 소림이라는 두 경쟁세력의 융합이 담겨져 있다
영화 '소림축구'. 그 안에는 무당과 소림이라는 두 경쟁세력의 융합이 담겨져 있다조창완
<소림축구>에서 주인공인 더싱(的星 저우싱치 분)은 소림무술을 배우는 제자이자 축구광이다. 그가 우연히 최고의 선수에서 심부름꾼으로 추락한 밍두오(明鐸)를 만나서 축구팀을 꾸린다. 이들은 소림무술을 바탕으로 최고의 팀이 되지만 선수에게 약물을 투입해 경기를 내보내는 지앙슝(强雄)팀 앞에서 위기에 몰린다.

이때 이 팀을 구하는 것은 무당(武當) 무술의 제자인 '만두의 여왕' 아메이(阿梅 짜오웨이(趙薇)분)다. 아메이는 강력한 스피드를 가진 볼 앞에서 기공을 통해 공의 속도를 제어한다. 역시 지나치게 스피드를 강조하는 소림무술로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느림 속에 강함이 있는 무당무술로 이겨낸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통합의 정신은 중국인들의 사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소림축구>에서 볼 수 있듯이 불가와 도가의 무술이라는 장벽은 그다지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물론 중국 역사에서 종교간에 싸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양의 종교전쟁에 비교해서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은 전면에 민족갈등이 내재해 종교전쟁으로 보기가 어렵다.

중국의 새로운 종교 '부'

현재 중국에서 새로운 종교가 된 것은 바로 '부'(富)다. 중국 여느 음식점에 가면 출입구나 계산대 뒤에 있는 차이선예(財神爺)를 만날 수 있다. 모두 돈을 많이 벌게 해주길 바라는 기원이 담겨져 있다. 또 오래된 도시에 가면 도교, 불교, 유교 사원에 못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변형시킨 차이선먀오(財神廟)다.

오류의 역사로 평가받는 문화대혁명은 실질적으로 종교나 정치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중국인 들 내부에 상존하는 부자되고픈 욕망에 대한 폭압이었다. 이후 덩 샤오핑은 그 욕망이 있어야 굶어죽지 않아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중국인들은 문혁때 상처가 남아있어 부자되는데 약간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

가게에 있는 재신상. 중국 가게의 대부분은 관우상과 천후가 변형된 재신상이 서 있다
가게에 있는 재신상. 중국 가게의 대부분은 관우상과 천후가 변형된 재신상이 서 있다조창완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인물과 사상'에 쓴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인물과 사상'에 쓴 글을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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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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