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산 정상 위황딩. 도교사원이 이곳에서 중국인들은 향을 태우고, 열쇠를 채우며 자신의 복을 기원한다조창완
기자의 중국어 발음을 교정해주는 개인교사인 란위(冉宇)는 스무살의 발랄한 여대생이다. 그녀에게 종교를 물었더니, 자기의 어머니와 이모가 불교를 믿어서 사원에 몇 번 따라가 봤는데, 자신에게는 특별한 종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담삼아 어머니가 불교 믿으라고 하지 않는냐 물었더니,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즉 중국에는 타인에게 종교를 강요하거나 포교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공자(孔子) 등 유가(儒家)의 위인들을 숭배하는 유교(儒敎)를 숭상할 것 같지만 중국에서 유가는 그저 제자백가의 한 분파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물론 한(漢) 시대에 공자가 왕의 권위를 능가하는 종교적인 인물로 추대된 적이 있지만 이후에는 그런 공자도 수없이 해체되면서 종교적인 색채를 띠기에 너무 평범해졌다. 또 일반에서 유교에 대한 숭배를 찾기는 쉽지 않다. 공자의 고향인 취푸(曲阜)에 가도 그가 거대한 위인으로 비춰지지만 종교적 높이로까지 숭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유가의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공자나 맹자 등 유가의 명인들이 많이 태어난 산둥(山東)성 지역은 가부장적 권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세다. 그 때문에 산둥성 남자들은 장가가는 데 적잖이 애를 먹는다. 이미 가정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확보하거나 오히려 우월한 지위를 확보한 다른 지역 처녀들이 산둥 남자를 유난히 꺼리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사상에 깊숙이 박혀 있는 도교(道敎)도 종교로 숭배되기에는 적잖은 한계가 있다. 어느 지역에 가나 칭양궁(靑陽宮)과 같은 도교사원을 찾을 수 있지만 종교적인 색채가 상당히 감쇄된 느낌이다. 대부분의 도교사원에는 도사(道師)들이 있는데, 필자의 눈에는 어떤 권위보다는 그들이 점을 쳐주는 것이 재밌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중국인들에게 종교라고 말하면 당연히 불교를 먼저 떠올린다. 중국에 불교가 전파된 경로는 서북인도에서부터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지방으로 전래된 북방 불교와 더불어 수마트라섬과 말레이 반도를 우회하여 남부해로를 통하여 베트남을 경유하여 중국남부에도 전해졌다. 인도의 승려가 직접 중국에 와서 사찰을 세우고 불법을 전한 경우도 있지만 법현, 현장, 의정 등은 인도의 성지를 순례하고 불교 문화를 배워왔다.
하지만 유입 경로가 다르고 소승경전과 대승경전이 차례로 전해지면서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불교가 전파됐다. 이에 따라 자신들의 위치에 따라 나름대로 경전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는 교상판석(敎相判釋)이 일반화되면서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관습이나 학문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거쳤다. 이후 끊임없이 한족과 변방민족의 정권 교체 속에서 불교는 어느쪽에서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
이런 중국에도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들어왔지만 중국인들의 마음에 크게 자리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어떤 절대적인 신앙에 의탁하기보다는 당장에 그들의 삶은 좌우하는 변수들이 중요했기 때문에 종교에 눈이 돌릴 시간이 부족했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어떤 것을 강요하거나 강요받는 것 자체를 꺼리면서 서구 종교가 들어갈 틈새를 주지 않았다.
물론 그들에게 서구는 마약이나 강요하고, 자원이나 문화재를 강탈하는 존재였으니, 그들의 종교가 쉽게 수용되기도 힘들었다. 결국 중국에서는 어떤 특정한 종교가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못했다. 대신에 각 사상의 중층적으로 결합하면서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