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이런 고마움으로 밥을 먹는다면

단식을 마치고 처음 대하는 음식

등록 2002.11.22 17:49수정 2002.11.25 15:3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꼭 13일 만에 처음으로 밥숟갈을 들었다. 아직 정상적인 밥숟갈은 아니다. 밥도 한 숟갈. 국도 한 숟갈. 시뻘건 김장김치도 한 줄기 퍼 담고 싶은 내 밥숟갈의 바람은 적어도 열흘 또는 그 이상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이다.


어제 아침에 현미와 수수를 넣고 죽을 끓인 다음 미음을 만들어 먹었는데 굶어봐야 밥 귀한 줄 안다고 열사흘을 굶었으니 어찌 밥이 반갑지 않으랴. 미음 숟갈을 입에 넣기도 전에 입에 고인 침이 흥건했다.

걸쭉한 미음에 푹 삶은 무 한 조각과 아무 양념 안 들어간 역시 작년에 메주 쑤어 만든 조선간장 한 숟갈을 종재기에 담아 소박한 내 식탁이 완성 되었다. 미음이 입에 닿는 순간. 풀죽은 채소들이 단비에 활짝 살아나듯이 내 몸 세포 하나하나가 퍼덕 퍼덕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반 숟갈씩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먹었다. 미음 양보다도 더 많은 침이 나올 때까지 씹었다.

이렇게 꼭꼭 씹으면 음식 본래의 달콤한 맛이 어금니에서부터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고소한 듯 하면서 달콤하기도 한,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음식 근원의 맛이 있는데 오래 씹을수록 더 잘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도록 꼭꼭 씹고 또 씹으면서 이 음식이 대체 어디서 온 것일꼬 하면서 그윽히 음미하다 보면 비로소 농부의 땀 내음도 맡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총과 부처님의 공덕도 두루두루 느껴져 아주 공손하게 음식을 삼킬 수 있게 된다. 이때 나는 미음 한 숟갈이 아니라 보석 같은 햇살과 청량한 바람 한줄기와 개구리 울음소리, 하늘의 별빛까지 합쳐진 보배를 한입 먹은 것이 된다. 이렇게 먹어야 음식은 열량을 내 주는데 그치지 않고 하늘과 내가 통하고 이웃과 소통되는 고리가 되는 것이다.


음식 한 숟갈에 온 몸이 섬세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뭘 먹느냐와 관계없이 고맙고 반갑다. 뭘 먹어야 맛있고 즐겁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어야 행복하냐가 훤히 보이는 순간이다. 보식을 할 때의 이 황홀하기까지 한 감흥은 단식을 하지 않고서는 경험하기 힘들 것이라 여겨진다.

정상식사가 가능해 질 때에는 내가 계획하고 있는 대로 내 밥상은 또 한번의 혁명(!)을 이루게 될 것이 기쁘고 또 기대된다.


원래 열흘만 하려고 했다가 너무 상태가 좋아 사흘 연장을 했는데 단식 기간 내내 내가 평소처럼 생활하고 서울 여의도까지 가서 농민집회에도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효소를 마신 것과 매일 매일 한 명상수련과 기 운동이 원동력이 된 듯 하다. 준비 한 책을 읽으며 좀 더 깊이 있게 몸에 대한 공부를 계속한 것도 힘이 되었다.

변이 정체되는 원인이 되는 겹친 장의 도해. 장은 신축적이라 소화습수가 잘 안되면 장이 늘어난다.
변이 정체되는 원인이 되는 겹친 장의 도해. 장은 신축적이라 소화습수가 잘 안되면 장이 늘어난다.전희식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수용하게 된다고 했던가. 단식기간 중 현기증이 나도 반가웠고 뒷통수가 당겨도 반가웠다. 아무렇지 않아도 걱정을 안했다.

참고로 내가 본 책은 ‘내뇌혁명’, ‘밥과 명상’, ‘사람을 살리는 단식’, ‘새로운 의학 새로운 삶’, ‘경락의 대 발견’이었다.

다른 책은 전에 다 본 책이었고 ‘새로운 의학.....’과 ‘경락의 대뱔견’은 처음 읽은 책이다. 앞의 책은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왔는데 외과의사 등 양의학 전문의들이 의술의 한계를 절감하고 전통의술에서 희망을 찾는 책이고 뒤의 책은 그 유명한 북한의 김봉한교수가 완성한 전신 경락과 건강에 대한 아주 귀한 책이다. 일본에서 처음 출판되었던 책이다.

대장벽의 게실과 S자 결장의 게실. 게실은 장의 염증 부위 출혈과 정체된 변이 말려 들어간 만들어진다고 한다.
대장벽의 게실과 S자 결장의 게실. 게실은 장의 염증 부위 출혈과 정체된 변이 말려 들어간 만들어진다고 한다.전희식
양의학에 대한 나의 불신은 아주 깊은 편이다. 양의학은 기본적으로 반 생명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 전통의술에서는 모든 증상을 치유의 과정으로 보면서 도리어 북돋워서 건강을 되찾도록 하지만 양의학에서는 증상은 곧 병이어서 잘라내고 죽여 없애는 것을 능사로 한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다. 의료만큼은 국가가 책임지고 무료화 해야 한다는 생각도 사람의 생명이 상업화 되어선 안 된다는 데서 비롯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렇다는 것이지 단정하고 문을 닫아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한정된 경험과 지식으로 인한 편견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여지를 열어놓고 쉬지 않고 정말의 세계를 찾아 노력 할 일이다.

보식을 시작하면서 등 주요 혈 자리 모두에 부항을 떠 봤는데 놀랍게도 단식 전에 비해 모든 혈자리에서 색소반응조차 안 나타나고 어혈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사실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단식 중에 내 몸의 취약한 부위들이 치유되는 것을 통증을 통해 다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단식은 사실 전신에 대한 동시적인 부항요법을 실시하는 것과 같다. 전신의 어혈을 빼 내는 것이 단식 이외에는 없다.

과장결장으로 인한 충수와 소장 침범. 늘어나고 확대된 과장결장이 숙변 침체의 근거지가 된다.
과장결장으로 인한 충수와 소장 침범. 늘어나고 확대된 과장결장이 숙변 침체의 근거지가 된다.전희식
앞 번 기사에서 숙변에 대한 존재유무 논란이 일었을 때 나는 숙변이 없다는 말을 처음 듣는지라 사실관계를 알아 봤는데 몇 년씩 장속에 머무르는 똥은 없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다. 나는 그동안 창자 속에 똥이 몇 년씩 고여 있는 줄로 알았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참 고맙다.

내가 스승으로 삼고 있는 두 분은 몇 년 된 숙변이란 없다는 주장의 논거를 자세히 전해 듣고 그 주장이 맞다고 하셨다. 그러나 같은 똥이 몇 년을 창자 속에 끼어 있는 건 아니지만 평생 숙변을 장 내에 끼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잘못된 먹을거리가 주범이다.

숙변이 쌓이는 장 구조는 ‘사람을 살리는 단식’에 실린 사진을 올려본다.

확대된 대장의 게실. 독일인 멕켈이 처음 발견하여 멕켈게실이라고도 한다.
확대된 대장의 게실. 독일인 멕켈이 처음 발견하여 멕켈게실이라고도 한다.전희식
단식을 하게 되면 몸의 독소들 즉, 어혈이 다양한 형태로 배출되는데 숨으로도 나오고 피부의 땀으로도 나온다. 물론 가장 많이 배출되는 것이 항문을 통해서 숙변의 형태로 나온다. 가래나 백태로도 나온다. 그래서 단식을 할 때는 하루에 몇 번씩 몸을 청결하게 해 주지 않으면 몸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주변 사람이 고통스럽다.

차라리 단식기간에는 식욕도 감퇴되므로 크게 고생되지 않기도 한다. 정작 보식기간에 몸의 처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식욕이 왕성하게 살아나면서 몸을 버리는 수가 종종 있다. 나는 7-8년 전 보름 단식 후의 보식 때 비스켓을 하나 집어 먹었다가 이틀을 다시 굶어야 했던 적이 있다. 앞으로 보름여 보식기간에 이번 단식의 성패가 달렸다. 그때 가서야 비로소 단식이 끝났다고 말 할 수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성욕 드러내면 "걸레"... 김고은이 보여준 여자들의 현실
  3. 3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4. 4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도이치' 자료 금융위원장 답변에 천준호 "아이고..."
  5. 5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