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변이 왜 이리도 반가운지"

단식 - 고요의 접경으로 가는 여행

등록 2002.11.17 22:52수정 2002.11.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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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단식 아흐레 째다. 어제 드디어 숙변이 와르르 나왔다. 오전 나절에 아랫배가 싸르르 , 싸르르 하길래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왠 배앓이? 싶다가 숙변이 나오려나보다 알아채고 화장실로 가서 크게 숨을 마셔서 복근운동을 해 주었더니 거짓말 안 보태고 시커먼 숙변이 한 바가지는 나왔다.


매번 봐 왔던 숙변이지만 죽은 자식 살아 온 만치나 반가워 변기에 코를 댈 듯이 한 자세로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아스팔트 포장할 때 뿌리는 끈적거리는 콜타르 같았다. 너풀너풀 해조류 같은 것도 있고 염소 똥처럼 망울망울 얼핏보면 탄 누룽지 같은 똥도 섞여 있었다. 냄새는 지독했다. 아이들도 단식 며칠 후부터 아빠 몸에서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했었는데 이 숙변 덩어리들이 내 숨으로 땀으로 풍겨 나와서 그랬을 것이다.

숙변누기는 단식의 첫째 목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 안 가득 몇 년씩 된 숙변들을 싸안고 다닌다고 보면 된다. 온갖 기생충과 병균의 서식처가 되고 소화흡수를 방해하고 독성을 지닌 숙변은 만병의 근원이다. 특히 섬유질이 사라지고 기름진 음식 위주의 현대인 식단은 이를 더 부추기고 있다. 다만 끊임없이 새로 들어가는 음식들이 숙변의 통로를 막아주고 있어서 냄새가 밖으로 안 나올 뿐이다.

하루걸러 계속하는 냉·온욕 때 보니 몸무게가 4kg 정도 빠졌다. 내 욕심이나 무모한 욕망도 아마 40kg 이상 빠져나간 게 분명하다. 머리도 맑고 몸도 가볍고 기분도 좋고 뭘 보든 무슨 소릴 듣든 멀거니 별 감정 없이 보이고 들린다.

내가 특별히 숙변을 기다리거나 촉진시키는 무슨 노력을 한 건 아니지만 숙변이 나오면 기분이 아주 상쾌하다. 몸도 참 시원해진다.


오늘아침 역시 상쾌하게 맞았다. 보통 본 단식 3-4일째나 나타나는 명현 현상도 이번 단식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내가 단식을 하는지 어떤지 거의 의식도 없이 날짜가 많이 흘렀다. 가끔씩 어지럼이 날 때가 있는데 이 어지럼을 잘 다루어 줄까 그냥 모른 척 할까 하다가도 대체로 가만히 놔두곤 했다. 신경 안 써 줘도 자기가 알아차리고 적당히 내 몸에 머물다 가곤 한다.

평소대로 생활 할 수 있는 것은 효소 덕분


이번 단식은 굳이 말하자면 좀 특별한 구석이 있다. 거의 방조하는 식의 단식이 되고 있다. 인위적인 것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관장도 안 하고 찜질도 안하고 그러면서 할 일은 평소처럼 다 하고 지낸다. 관장을 안 해 보는 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숙변을 누고 싶었던 것이다. 활동량도 제법 되고 딴 때보다는 기공이나 국선도 행공을 하고 있으니 장운동을 신경 써서 해 주면 될 것 같아서이다.

늘 아침에 일어 날 때는 몸을 깨우는 와선을 10여분 한 다음 살그머니 신부 걸음걸이로 일어나서 효소액을 타서 마신다. 이번 단식에는 그 어떤 이물질도 취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상태로 진행을 할 생각이어서 작년에 사용하고 남은 마그밀도 꺼내지 않았고 구충제도 먹지 않았다. 뒷머리 당기는 것이나 좌골신경통 있는 것이 단식기간에 더 두드러질 때는 의식을 집중해서 의념 호흡을 부지런히 해 주고 있다.

며칠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입안 가득히 가래가 끼고 하얀 백태가 생기고 있다. 몸의 독소가 나오는 것이다. 오늘은 하남출판사에서 나온 티벳 건강법 - 다섯 가지 수행법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번 단식 동안에 밥과 명상이라는 책에 들어 있는 ‘밥상을 다시 차리자’ 라는 글과 오래 전에 봤던 뇌내혁명, 조화로운 삶의 지속 등 계획했던 책을 깊이 잘 읽고 있다.

단식이 끝난 후의 내 식생활에 대한 이러 저런 계획을 정리하고 있다. 알지만 실행하지 못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누구나 그렇다고 본다. 듣고 보고 느끼고 하지만 정작 잘 안되는 게 먹는 문제이다. 그런데 이번에 ‘밥과 명상’이라는 책에서 이제는 잘 될 것 같은 단서를 확실히 찾았다. 너무 내용이 좋아 그 부분을 복사해서 친구에게 주기도 했다.

사람의 건강은 우선 건강한 밥상이 제일 중요하다. 먹는 방법 또한 중요하다. 생활환경과 마음관리도 건강에 필수요소라 하겠다. 나의 이번 단식에는 맛과 부드러움에 빠져 있는 잘못 차려진 밥상을 물리고 ‘천천히 꼭꼭 씹어서 공손히 삼키는’ 식사를 하고 싶은 내 다짐이 있다. 좋은 생활습관도 다시 몸에 익히고자 한다.

관장을 커피관장이나 포도관장 대신 죽염관장을 단식 말미에 한두 번만 할까하는데 그 대신 마시는 효소는 자극성이 있는 솔 효소를 조금씩 첨가하여 주고 있다. 관장을 안 하는 대체 효과를 줄 생각이다. 내가 할 일 다 하면서 단식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효소 덕분이다.

이번에는 고구마 효소를 주로 먹고 있다. 미네랄과 비타민, 무기질이 듬뿍 든 고구마 효소가 내게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이 고구마 효소는 작년에 담았다가 얼마 전에 꺼내보니 향이나 맛이 기가 막히게 잘 발효가 되어 있었다. 1차 발효기간을 잘 맞추었고 2차 발효를 땅속깊이 독을 묻어 근 1년을 진행시킨 것이 주효한 듯 하다.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설계는 단식에서 시작해야

농사를 짓다보면 교과서적인 농법과는 달리 농부 취향에 따라 애정이 더 가는 작물이 있게 마련인데 나는 고구마가 볼수록 좋다. 구황작물로 가뭄과 기근이 들었을 때 우리 조상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고구마의 과거(?)도 훌륭하지만 고구마의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감탄스럽다.

순을 잘라 던져 놓기만 해도 땅에 닿은 순에서 고구마를 맺는다. 어떤 해충도 덤벼들지 못하고 병도 없다. 땅속에 든 고구마는 땅 색. 잎은 잡초 색. 줄기는 그 중간. 이 얼마나 자기 주변과 동화되어 잘 사는 모습인가.

지금이 중동 무슬림들에게는 라마단 기간이라는 얘길 들었다. 세속적인 욕구를 물리치고 인격보다 더 귀한 영격을 한발 높이고자 하는 내 단식과 우연히 기간이 겹쳐서 혼자 흐뭇했다. 한 달이나 지속되는 라마단 기간을 다 채우진 못해도 애초의 열흘을 더 연장 할 생각이다.

참 고요하고 흡족하다. 단식은 평화와 고요의 접경으로 가는 여행이라고 말을 만들어 본다. 요즘 사람은 기운이 좀 빠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단식을 끝내고 내가 먹을 먹을거리들은 단식 시작 때부터 부지런히 마련 중이다. 겨울에도 채소를 먹기 위해 온실을 만들어서 심었는데 잘 자라고 있다. 앞으로 생채식으로 하루 두 끼를 할 생각이다. 칼로리 위주의 현대 영양학의 미신을 깨뜨리고 하늘기운과 땅기운의 식사를 하려는 것이다.

단식을 거치고 나면 입맛을 새로 길들이게 된다. 음식이 같는 독특한 자기 맛을 입이 하나하나 깊이 알아채게 되는 것이다. 양념과 요리에 의해 다 묻혀버린 식품 하나하나의 본래의 맛을 생채식을 하면 더 확실하게 음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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