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기여우대제'인가?

'기여우대제' 도입을 위하여 선행되어야 할 것

등록 2002.11.28 00:34수정 2002.11.2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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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가 2004년부터 '기여우대제'를 실시하기로 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연대 김우식 총장은 "학교에 물질적, 비물질적으로 기여한 기여자의 자녀가 응시할 경우 동문의 추천을 통해 소정의 심사과정을 밟은 뒤 정원 외로 선발하는 과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기여우대제를 실시하기 위해 요구되는 고등교육법 29조와 34조의 개정도 적극적으로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연세대학교는 오랜 기간 동안 기여우대제를 준비해 왔다. 2001년에만 해도 '기여우대제 도입을 위한 연세 포럼'을 두 차례 열어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2001년 11월 21일에는 기여우대제 시행 계획(안)을 발표했다. 이 시행계획안을 통해 연대는 이 제도의 도입 목적을 '공식적인 비물질적 또는 물질적 기여를 통해 대학과 국가발전에 크게 도움을 주신 분들 및 그들의 자손에 대하여 대학교가 보은적 차원에서 다방면으로 우대하기 위해서'라고 규정했다.

또한 이 제도에 대한 여러 사회적 비판을 감안하여 '일정 수준의 수학능력(예:수능 3등급 이상)을 요구한다', '기여, 기부금은 교육 연구시설과 장학금으로만 사용하겠으며, 기여금 관리위원회를 설치하여 엄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하겠다', '소년소녀 가장등 기타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위한 특별전형도 실시하겠다'등의 조항을 마련하였다.

이렇게 일부 사립대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기여우대제가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 사립대학들은 한국 대학 교육에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이에 걸맞는 재정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도 사립대학의 정책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과 규제를 일삼는다는 불만을 가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 자체적인 재정 확보를 위한 노력에 대해서까지 규제하는 것은 너무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사실 이 제도에 대한 사회적 반감과는 달리, 정작 이 제도의 시행세칙안을 발표한 연세대학교의 학생들은 '기여우대제'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가 지난 9월 이 제도에 대해 진행한 '스티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학생의 70% 이상이 '기여우대제가 학교의 교육환경 개선을 가져온다면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기 때문에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은 이에 비해 적었다.

그러나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기여우대제에 찬성한다'는 입장은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여겨진다. 사립대학 재단의 기금 중에서 대학의 연구, 교육을 위해 투자하는 돈을 '재단전입금'이라고 하는데, 작년 보도자료에 따르면 연세대학교의 재단전입금 비율은 23%에 불과했다. 이는 다른 사립대학에 비해서도 낮은 수치였다는 점에서, '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자본을 학교의 연구, 교육에 투자한다'라는 기본적 명제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연세대학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립대학들도 재단전입금은 50% 이하를 기록하면서 교육 시설 개선에 재단의 자본이 아닌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수치인 등록금 의존율에 있어서는 80% 이상을 나타내고 있어서, '기여우대제' 도입을 위해 필수적인 '투자자본의 교육적 회수'가 과연 보장될 수 있겠는가 라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즉 '기여입학으로 인해 형성된 기금'이 100% 교육적으로 회수된다는 사회적 신뢰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기간에 사립대학 재단들이 행해 온 일들은 이러한 신뢰를 구축하는데 심각한 장애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시민단체, 학생회, 교수등으로 구성된 기금관리위원회를 설치하겠다'라는 연세대학 측의 시행세칙안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지지만은 않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이 문제는 현재 고교평준화 완화 노력이라는 문제와 맞물려, '사회적 이동통로가 되어 온 교육의 전통적 기능'을 현저히 약화시키게 된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가 많다. 기여우대제 역시 핵심은 기여자의 물질적 능력에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유일한 사회 이동 통로가 되어 온 '교육'의 기회 균등 원칙을 약화시키는 조치라는 것이다.


사립대학의 자율적 재정 확충 및 학생 선발이라는 논지로는 이 문제점을 상쇄하기 어렵다. 또 각 대학에 걸맞는 '인재 선발'을 위한 대학의 자율성이라는 측면에 대해서는 기간에 행해져 온 교육부의 규제와 간섭을 '묵묵히' 견뎌낸 사립대학들이 유독 이 문제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선발 자율화'를 논하는 것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결론적으로 '기여우대제'는 여전히 시기상조이다. 이 제도가 언젠가는 도입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필자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기금의 교육적 회수'가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재단전입금 비율을 높이고 등록금 의존율을 낮추는 작업을 해나감으로써 사립대학의 교육적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이 제도로 혜택을 입을 대학은 일부 명문 사립대학들 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들 대학부터 우선적으로 '수능점수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인 학생선발제도 도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명문 사립대학들의 대 교육부 과제는 기여우대제를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이 아니라 '학생 선발의 자율화' 확보에 있다. 그래야만 기여우대제가 본질적으로 담고 있는 '교육기회 불평등'의 측면을 감소시킬 수 있다. 그런 노력이 진지하게 기여우대제 도입을 검토할 수 있는 환경을 생성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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