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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알간 눈, 귀를 쫑긋하여 잔뜩 긴장한 채 눈 위를 걷고 있는 잿빛 털과 하얀 털을 뒤집어 쓰고 엉금엉금 깡충깡충 뛰어가고 있는 자그만 체구의 이 짐승은 겨울이면 산길 주변의 자귀나무와 싸리나무, 칡덩굴 등 콩과식물의 껍질을 죄다 갉아먹는다. 양지쪽 무 밭 가에 도착하여 배를 채우고 갔음이 역력한 흔적을 남기는데 염소 똥보다 더 크고 옅은 갈색 섬유질을 배설해 놓으면 영락없는 토끼 똥이다.
겨울 산 나무짐을 지고 다니는 동네 청년들에게 이놈들의 흔적-나무를 갉아 먹었든가 '무시' 뿌랭이를 갉았다든가 똥을 갈겨 놓고 가면 표적이 되기 일쑤다.
다음날 빈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오를 때 밤새 얇은 철사를 오그려 만들어 뒀던 올무-'몽매'를 한 코 한 코 주요 길목 코너마다 옴짝달싹 못할 지점에 100m 간격으로 너댓개만 놓아두고 비나 눈이 오길 기다렸다 다음 날 가보면 싸늘한 시체를 건져 올릴 수 있다. 나뭇짐에 하나 턱 올려 오는 나무꾼의 발걸음은 득의양양 할 수밖에 없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뭇짐을 대충 부려 놓고 코 아랫부분 인중부위에 면도칼로 열십자(†)를 그어 상처를 내고 위아래 좌우 사방으로 서서히 껍질을 벗기면 홀라당 발가벗고 '깨복쟁이'가 되고 만다. 우스개 소리로 어른들은 호랑이도 동굴에 들어가 코 아래에 열십자만 긋고 꼬리를 잡고 놀래키면 홀라당 가죽을 벗고 껍데기만 도망가 그 때 들춰 메고 오면 된다고 했다. 생쥐가 물에 빠져 죽은 형상이다.
마저 배를 따 내장을 손질하여 부엌에 던져 놓으면 이제 마님께서 자갈자갈 식탁을 푸짐하게 해 놓을 것이다. 이웃집 친구 한두 명을 미리 불러 놓는다. 저녁 밥 먹지 말고 소주나 한 잔 하자고 말이다.
노련한 칼 솜씨로 잘게 토막을 내 주면 사모님은 짤박하게 물을 잡고 무채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마늘, 생강 다져 매콤한 고춧가루를 풀어 뽀땃하게 끓여 준다. 사실 토끼 한 마리랬자 가죽을 벗겨 버리고 내장 덜어버리면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소주 대병 두 병은 충분히 소화할 만한 양이다. 뼈와 살이 동시에 씹히는 토끼탕, 이 맛을 꿩고기 다음으로 쳐준다.
겨울이 깊어 가면 먹을 것이 떨어진 산짐승들은 서서히 하산을 하여 인가 근처까지도 내려온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모양을 보아 밤새 몇 몇 동무들을 꼬드겨 나무하기도 그른 까닭에 '토끼몰이'나 한 번 나가자고 한다. 눈 온 날 아침 해가 쨍하고 떠오르면 눈 위에 진주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아름다운 분위기 마저 사람편이다. 동네에 학생들까지 총동원령이 내리면 다들 장화를 신고 나왔다. 작전회의를 통해 미리 봐뒀던 토끼 다니는 길목으로 안내하는 사람이 대장이다.
조심조심 소리를 내지 않고 토끼 발자국을 따라 접근한다. 토끼 한 마리를 발견하면 일제히 "우-" 소리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겁을 주고 내몰면 토끼는 질겁하여 혼비백산하게 된다. 이 때 오른 손에는 막대기 하나씩이 들려 있다.
토끼몰이는 아래서 위로 하면 사람이 쫓아가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결국 놓치고 만다. 따라서 위에서 아래로 내 몰아야 한다. 토끼는 뒷다리가 길어서 뒷다리를 툭툭 차고 오르막길은 잘 오르는 반면 아래쪽으로 향하면 앞다리가 짧아 급한 김에 뒷다리로 땅을 세게 차면 고꾸라져 눈구덩이에 곤두박질 치는 원리를 이용하면 몇 마리쯤은 건질 수 있다.
두어 마리만 잡아와도 동네잔치가 벌어진다. 어린 나는 한 점이라도 어떻게든 먹어 보려고 근처에 뽀작거리고 있었다. 토끼몰이를 나가는 날은 마당에 눈이 오후에나 치워지기 때문에 어른들로부터 핀잔듣기 일쑤였다.
초식 동물은 이른 봄 새순이 나기 전에 먹어야 맛있다. 짐승이 새 풀을 먹으면 고기에서 누린내가 많이 나는 턱에 산골 사람들은 한 겨울에 단백질도 보충할 겸 사냥을 즐기는 것이다. 이 얼마나 흥겨운 풍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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