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6

혈겁의 시작 (1)

등록 2003.01.12 12:52수정 2003.01.1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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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혈겁의 시작

꽈꽈꽈꽈꽈꽈꽈꽈꽈꽝!
우르르릉! 우르르르르르릉!


"어머! 저를 어째…?"
"허억! 아, 안 돼!"

두 번째로 엄청난 폭발음이 터지자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식과 경악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방금의 폭발로 무림천자성의 자랑이었던 구 층 누각이 또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깊은 잠에 취해있다 엄청난 굉음에 놀라 튀어나온 그들은 눈앞에서 생생하게 벌어지는 현장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곳은 중원무림의 패권을 거머쥐었고, 천하의 상권마저 움켜 쥔 무림천자성의 총단이 있는 호북성 무한(武漢)이었다.

무림천자성에는 무림과 상계를 움켜쥐었다는 의미로 건립한 두 개의 구 층 누각이 있었다. 세무각(世貿閣)이라 이름 붙은 두 누각은 한 치도 다를 바 없어 쌍둥이 누각이라 불렀다.


그런 세무각 중 좌측 누각이 무너져 내린지 불과 반각도 되지 않아 두 번째로 우측 누각마저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터뜨린 폭약에 의한 붕괴였다. 지붕에 얹어 놓았던 기와들이 산산조각 나면서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가운데 누각의 잔재는 활활 타오르는 화염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무엇들 하느냐? 어서 불을 꺼라!"


누군가의 호령이 연신 터져 나오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또 다시 폭발한다면 자신의 목숨을 장담해줄 사람이 전무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신 터져 나오는 불호령은 이길 수 없는 듯 저마다 물을 길어다 뿌렸다.

그러나 기름먹인 목재의 불길은 몇 동이 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세기를 지닌 불로 성장한 상태였다. 충천하는 화염 속에서 몇 마디 비명이 들렸으나 그것도 이내 멈췄다.

"으으으! 대체 어떤 놈이냐? 어떤 놈들의 짓이냐?"

분노한 무림천자 철룡화존 구부시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천하에 누가 있어 감히 무림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무림천자성 총단에 이런 위해를 가할 것이라 상상이나 했었겠는가!

쌍둥이 누각이라는 애칭을 지닌 두 개의 누각은 무림천자성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건물이었다. 화려하기로 따지면 천자가 머무는 자금성(紫禁城)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유리(琉璃)로 만든 기와를 얹었기에 날이 좋은 날이면 백 리 밖에서도 번쩍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둥은 칠보(七寶)로 단장되어 있었고, 서까래와 들보는 단청(丹靑)으로 치장되었었다.

월동형 창 역시 정교한 솜씨로 양각된 창살로 장식되어 있었다. 실내에는 발목까지 잠기는 파사국 특산 융단이 깔려 있었고, 황금을 입힌 기둥마다 환상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벽마다 당송팔대가의 서화(書畵)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세상의 온갖 진귀한 물건들로 그득하였기에 은자로 따지면 구 층 누각 하나에 적어도 일억 냥은 족히 된다 하였다. 그런 두 개의 누각이 산산이 부서져 내린 것이다.

그것으로도 부족한 지 화염이 다른 전각으로 떨어지면서 곳곳에서 화염이 충천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철룡화존 구부시는 펄펄 뛰었다.

"부성주! 지금 즉시 화재를 진압하시오. 그리고 원인을 파악하여 즉각 보고하시오."
"존명!"

인의수사(仁義秀士) 채니(蔡 )의 허리는 직각으로 꺾였다. 잠시 후 그의 진두지휘 하에 조직적인 화재 진압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불이 꺼진 것은 거의 모든 것이 불에 타버린 후였다.

모든 것이 끝난 후 드러난 것은 한 마디로 완전한 폐허였다. 두 번의 폭발로 인하여 구 층 누각 두 동(棟)이 완전히 붕괴되었고, 쓸만한 것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누각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멸(全滅)이었다. 단 한 명도 탈출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워낙 엄청난 폭발이었고, 순식간에 화마(火魔)가 덮쳤기 때문일 것이다. 무림천자성의 총단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건물이다 보니 죽은 자들 대부분은 요직에 있던 자들이었다.

주변에 있던 세 개의 전각에서도 화재가 발생되었었다. 그 가운데 두 개는 반파(半破) 되었다. 여기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대들보가 내려앉으면서 그 충격으로 압사한 것이다.

무림천자성의 총단에서 있었던 이 사건이 강호 전역으로 번져 나가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하루였다. 불과 하루만에 발 없는 말이 만 천하로 뻗어간 것이다.

양민들 대부분은 무림의 정의를 수호하느라 애쓰는 그들에게 누가 그랬느냐며 분개하면서도 궁금해하였다.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 극히 일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무림천자성이 천벌을 받은 것이라며 남몰래 고소해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쌍둥이 누각에는 폭약이라곤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폭약을 설치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흉수가 누구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순간에 조금만 잘못하면 자칫 덤터기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드러내놓고 환호를 한 곳도 있었다. 사사건건 무림천자성과 대립하던 마도무림의 문파들이 그들이었다.

구룡마문(九龍魔門) 문주 신궁(神宮) 가다피(可多 )와 월빙보(月氷堡) 보주 흑염수사(黑髥秀士) 후세인(侯世印)은 쌍수를 들고 환호하였다.

그리고 북해신마단(北海神魔團)의 단주인 죽립광괴(竹笠狂怪) 가수두로(可秀斗露)와 아부가문(衙斧架門)의 문주 금금존자(錦衾尊子) 오사마(吳獅瑪) 역시 환호작약하였다.

이들은 무림천자성의 참사에 속이 시원하다면서 거창한 연회를 벌였다. 다만 대 폭발 때 성주 일가를 비롯한 극상층 수뇌부들이 모두 몰살당하지 않은 것이 애석할 뿐이라 하였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문파들은 조문사절을 보내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무림천자성이 정의를 구현한다는 미명 하에 전횡을 부리는 것이 못 마땅하던 차에 내심 고소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희생자들 가운데에는 시비(侍婢)나 서동(書童) 등 아무런 잘못도 없건만 희생당한 자들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림천자성이 있기 전까지 무림 정의를 수호하던 칠파일방 장문인들은 일제히 조문사절을 이끌고 무한(武漢)으로 향했다.

소림사(少林寺) 장문방장인 영공선사(英空禪師),
무당파(武當派) 장문인 태청진인(太淸眞人),
화산파(華山派) 장문인 금화도사(金華道士) 지관무(池寬珷),
점창파(點蒼派) 장문인 철혈신창(鐵血神槍) 문인걸(文寅傑),
곤륜파(崑崙派) 장문인 운중일도(雲中一道) 단형진(單亨震),
청성파(靑城派) 장문인 삼안수사(三眼秀士) 민진부(閔秦富),
아미파(峨嵋派) 장문인 무안신니(無顔神尼),
개방( 幇) 방주 오향취개(五香醉 ) 공기명(孔琦銘)

이들의 뒤에는 각파의 장로들과 호법들이 따르고 있었다. 이들뿐만 아니라 명문세가들의 가주 역시 세가의 수뇌부들을 대동하고 무한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히 중원 정파의 핵심부 전체가 조문을 한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것만으로도 무림천자성이 강호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조문사절을 맞이하는 자들 가운데에는 무림천자성을 대신하여 중원 상권을 좌지우지하는 유대문(儒 門)의 문주 이수나알(利收拿謁) 사론(史論) 이하 수뇌부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동영(東瀛)에서 건너온 왜인(倭人)들로 구성된 왜문(倭門)의 문주 간담교토(肝膽狡 ) 고이주(高伊周)와 그 수하들도 있었다.

이수나알은 외호에서 알 수 있듯이 무림천자성을 대신하여 고리대금업으로 재물을 긁어모은 뒤 이를 상납하면서 남는 부스러기를 챙긴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실제로는 많은 재물을 빼돌리고 있으며 은밀히 힘을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소문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을 조사하지 않았다. 무림천자성의 수뇌부 가운데 조사를 명할 위치에 있는 자들 대부분이 유대문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문의 문주인 간담교토가 어떤 사람인지는 그의 외호를 보면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천하에서 가장 간사한 자가 바로 그였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를 반복하고도 남을 인물이라 하였다.

또한 언제든 자신이 불리하면 방금 전에 한 말도 안 했다고 우기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외호에 토끼를 뜻하는 토자가 들어 있는 이유는 겉으로 보기엔 안 그렇지만 몹시 소심하고, 새 가슴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겁이 많다는 것이다. 하긴 무림에서 목숨을 부지하려면 겁이 많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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