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이야말로 가장 정감 어린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이다경상북도
"요새 농장에 가서 뭐하십니까?"
"나무도 키우고 사발도 굽고 그러지요."
"사발요?"
"네, 우리 나라 전통 사발을 굽지요."
"사발도 도자기의 일종 아닌가요?"
"사발도 도자기는 도자기지요. 하지만 저는 도자기 중에서도 사발만 굽거든요."
내가 그분을 만난 것은 제법 오래 되었다. 처음 나는 그분이 무엇을 하는 분인지 잘 몰랐다. 그저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늘 나와 같은 시외버스, 그러니까 양산, 언양, 경주를 경유해서 포항으로 가는 그 버스를 같이 타는 조금 낯익은 승객의 한사람에 불과했다.
그분은 월요일이면 늘 내가 시외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그 장소에 나와 나처럼 담배를 한대 피우며 우두커니 서 있다가 그 버스가 오면 나와 같이 줄을 서서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분과 말을 붙혀보지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그런 인연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분은 늘 한복을 입고 다녔다. 요즈음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점퍼와 청바지 차림으로 다니지만 지난 11월까지만 하더라도 그분은 늘 헐렁한 개량한복 차림이었다. 그리고 그분은 늘 양산을 지나 웅상읍 근처의 고속도로에서 내렸다. 그곳은 원래 차가 서지 않는 곳이었지만 운전기사들은 그분을 늘 그자리에 내려주었다.
차를 타고 오는 동안 그분은 운전기사와 여러 가지 농담을 종종 주고 받는 것으로 보아 운전기사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분이 내리는 곳은 다랑이밭이 겹겹이 쌓여있는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그분은 고속도로에서 내려 그 다랑이밭으로 산토끼처럼 훌쩍 뛰어내려 밭둑을 타고 그 마을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무슨 농장이라도 운영하십니까?"
"저어~ 누구신지…."
"월요일마다 이 차를 타시지요? 그리고 양산을 지나 웅상 근처 고속도로에서 내리시지요?"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저도 매주 월요일마다 이 차를 타거든요."
"아, 예에~ 일주일에 두 번씩 그곳에 가지요."
내가 그분에게 처음 말을 건 것은 지난 월요일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간단한 인사 이외에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이내 차가 왔고, 그분은 늘 운전기사 뒤에 앉았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그분은 당연히 그 시골마을 앞에서 내렸다. 그리고 참새처럼 포르르 날아 이내 그 마을 속으로 사라졌다.
"이 사발 굽는 걸 누구에게 전수하기는 해야겠는데, 아들 녀석은 통 관심이 없어요. 그 일을 좋아하는 아버지나 많이 해라는 그런 식이지요."
"예에~ 근데 그 옆에도 도자기를 굽는 곳이 한군데 더 있지요?"
"어떻게 그리 잘 아십니까? 그분은 진사를 굽는 분인데 전국에서도 알아주지요. 하지만 진사는 납을 쓰기 대문에 생활용기로는 부적합합니다"
"사발을 구울 때도 소나무나 참나무를 땔감으로 쓰나요?"
"네, 그렇지요. 근데 반드시 우리 나라에서 나는 소나무와 참나무를 써야 좋은 사발을 얻을 수 있답니다."
사발은 죽사발, 개사발 하듯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기그릇이다. 사발은 주로 밥그릇, 국그릇 등으로 쓰이며, 재료는 도토, 장석, 규석, 백토 등을 원료로 하여 만든다고 한다. 사발이란 이름은 몽골어의 사바(Saba, 그릇)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사하치(砂鉢)'라고 부르는 사발은 사발(沙鉢)이라고 적기 때문에 한자말로 생각하기 쉽다고 한다.
"사발이란 말은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낱말입니다. 저는 사발을 순수한 우리 말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몇 년이나 되셨습니까?"
"저는 따로 배운 스승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제 스스로 좋아서 사발을 굽기 시작했으니까요. 한 30년 정도 되지만 아직도 불을 다루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어떤 이는 가마에 온도계를 꽂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그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불은 불을 다루는 사람의 정성도 정성이겠지만 불은 결국 하늘이 다루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날, 그분과 나란히 자리에 앉은 나는 그분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내가 그 무언가를 알려고 일부러 말을 붙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버스를 같이 타고 오면서 심심풀이 땅콩처럼 그렇게 주고 받은 말들이었다. 이야기 도중 나는 통성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또한 그분도 끝내 통성명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렇게 자연스럽게 모르고 지내는 것도 어쩌면 보다 객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렇게 스치듯이 만나 그럭저럭 통성명을 대충 하는 것보다는 내가 그분의 가마에 가서 그분이 사발을 굽는 것을 직접 보고 난 뒤에 정식으로 통성명을 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지요. 제가 전시회를 하기 위해 사발을 선물한 친구에게 사발을 잠시 빌려달라고 했지요. 그리고 전시장에 놓을 때 가격을 5000만원이라고 써붙였지요. 그래야 그 사발이 팔리지 않을 것이고 전시회가 끝난 뒤 친구에게 되돌려 줄 수가 있을 테니까요. 또 간혹 정말 좋은 사발이 나오면 저는 남들에게 팔기가 싫어서라도 일부러 그렇게 붙이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전시회가 끝난 뒤 그 사발과 다른 사발 몇 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단다. 정말 낭패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사발과 비슷한 사발을 그 친구에게 이거 맞냐, 하면서 건네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 또한 그 사발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그래, 이게 맞아,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당시 그분은 그 친구에게 마음을 모두 들켜버린 것처럼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사발을 꼼꼼히 챙기기 시작했단다. 며칠 뒤 알고 보니 처남이 그 사발을 실은 박스 하나를 쓰레기인 줄 착각하고 쓰레기장에 그대로 버린 것으로 드러났다. 서둘러 그 쓰레기장에서 박스 하나를 찾아낸 그분은 친구에게 그 사발을 바꾸어 주면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너, 정말 그 사발이 진짜 니 사발이라고 생각했냐?"
"아니, 다 알고 있었다네."
"근데?"
"너의 성격으로 보아서 그 사발 때문에 너무 큰 상심을 할 것 같아서 그랬네. 그리고 어차피 그 사발은 자네가 내게 선물한 사발이 아닌가 말일세."
그 이후부터 그분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이 구워낸 사발은 남에게 선물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청자, 백자보다 훨씬 더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 사발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사발이나 청자, 백자도 모두 같은 방법으로 구워내지만 청자나 백자는 눈요기 거리에 불과하지만 사발은 우리의 식탁을 빛내줄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용기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즈음 가스 가마로 수없이 구워지는 사발들을 바라보면 마치 우리 민족의 올곧은 기상과 아름다운 정서가 무너진 것처럼 슬프지요. 나 하나만이라도 우리의 장작불을 지켜내야지요. 좋은 사발이든 좋은 자기든 결국 우리 나라에서 자란 나무가 일으키는 불이 모든 것을 결정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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