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눈을 아름답다고 했는가

시골에서 눈 치우기

등록 2003.01.29 20:56수정 2003.01.3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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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골에 들어와 맞이하는 첫눈은 그야말로 선경과 같았습니다.


칙칙한 시멘트 건물들 사이로 내리는 도심의 눈과는 우선 때깔부터 다릅니다. 낙엽송 가지에 하얗게 얹힌 눈송이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솔바람 소리를 내며 은빛 가루로 하늘을 덮습니다.

꺼칠하던 겨울산들은 눈발에 하나씩 지워져가고, 양계장이며, 배추밭이며, 마을회관이며 거룩한 풍경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답다 못해 거룩하기까지 한 눈이 거듭되면서 발목까지 빠지는 눈을 치우다 보면 나중엔 희끗희끗 눈발만 비추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요.

눈 내리면 고달퍼지는 오르막길
눈 내리면 고달퍼지는 오르막길이형덕
경험으로 지켜 보니, 푸짐한 함박눈은 한꺼번에 많은 눈이 내리는 폭설인 경우가 많지만 그리 오래 내리지는 않고, 의외로 함박눈이 푸짐히 내리면 날도 푸근하여 눈이 그치고, 볕이 나면 금세 녹아갑니다.

그런데 쌀가루 같이 부슬부슬 내리는 눈은 정말 하루 종일 하고도 며칠 더 내리는 눈인데, 대개 이런 눈이 내리면 날까지 몹시 추워 내린 눈이 꽁꽁 얼어붙기기 십상이지요.

눈만 내리면 그다지 미끄럽지는 않은데, 겨울비나 진눈깨비가 온 다음에 날이 추워져 그것이 언 후에 살짝 싸래기라도 내린 다음날이면, 이것은 모래를 끼얹고 넉가래로 밀어도 소용이 없지요. 얼어붙은 빙판길을 삽으로 일일히 깨어 내야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넉가래는 집에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요즘은 철물점에서 프라스틱에 봉을 박아 파는 게 있습니다. 빗자루도 싸리비는 낭창거려 얼어붙은 눈을 밀어내기 힘들고, 철물점에서 파는 뻣뻣한 프라스틱으로 된 비가 좋더군요. 한 자루에 삼천원 정도 합니다.

이태 전 겨울에는 얼마나 눈이 자주 내리는지, 저녁내 쓸고나면 다음날 아침에 하얗게 솜이불이 덮여 있는 것입니다. 차들이 많이 다니는 마을길이나 차도라면 문제가 없지만, 홀로 떨어져 있는 집이라면 꼼짝없이 그 많은 눈을 혼자서 감당해 내야 합니다.

그 눈이라는 게 무릎까지 쌓이고 나면 비질도 안되고, 넉가래도 나가지를 않아 여간 애를 먹이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다시 눈이 올 때마다 밀어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쌓인 눈 위로 차가 지나가면 눈이 굳어져 빙판처럼 얼어붙게 되니, 차가 나가기 전에 밀어 놓아야 합니다.


두어 걸음만 나아가도 넉가래가 넘칠만큼 많은 눈이 모여지니, 팔힘만으론 어림도 없어 배에다 자루를 대고 밀어 봅니다. 그러다가 돌멩이라도 걸리면 덜컥 자루가 배를 찌르는데, 눈물이 핑 돌만큼 아프지요.
호젓하니 혼자 외진 곳에 살다보니 마을길까지 혼자서 겨우내 눈을 치우는데, 어찌나 눈이 자주 오는지 이태 전에는 서른 두 번까지 눈 오는 날을 헤아리다 그만두었습니다.

아침 일찍 눈을 치우러 나가면, 얄밉게도 차가 지나간 바퀴 자국이 쌓인 눈을 눌러 놓아 넉가래로도 치워지지를 않습니다. 알고 보니, 올무를 놓은 사람이 눈만 오면 토끼라도 잡을까 새벽부터 차를 타고 왔다 가는 것입니다.

다행히 마을에 트랙터 가진 분이 몇 번 길을 뚫어주었지만, 그것도 매번 신세를 질 수는 없으니 대빗자루와 삽, 넉가래를 동원하여 온가족이 눈을 치워야 합니다.

한번은 집에 놀러온 손님이 마침 내린 눈으로 갈길이 막혀 몇 시간을 눈을 치우고 가던 일도 있었지요.

제설용 모래주머니나 염화칼륨을 준비해 두는 것도 좋은데, 그것도 발이 푹푹 빠지게 내린 눈에는 감당을 못하지요. 눈이 많이 내리다 보면, 비닐하우스나 지붕의 경사각이 완만한 집에서는 이따금 지붕이 내려앉는 경우도 있으니 가능하면 지붕의 경사를 급히 주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시골길에는 눈이 한 번 쌓이면 제비 올 때까지 안 녹는 곳도 있다하니, 차도 가능하면 사륜구동차를 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름 보일라나 가스 보일라를 쓰는 집에도 눈이 오기 전에 충분히 기름이나 가스통을 여유있게 들여 놓아야 하겠지요. 이리 말하니, 온통 시골의 겨울이 온통 눈 치우는 고생뿐인 걸로 알듯한데, 여태껏 눈으로 길이 막혀 밖에 나가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눈 치우는 일도 도시 사람들이 돈 들여가며 하는 스쿼시나 헬스 운동으로 여긴다면 고달픈 것만은 아니니까요.

오미자밭에 내리는 눈은 그래도 향기롭기만 하다
오미자밭에 내리는 눈은 그래도 향기롭기만 하다이형덕
차도 못 올라와, 마을 입구에 내려 놓고, 눈에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밤길을 아이와 함께 걸은 적이 있습니다. 발밑으로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파랗게 달빛이 눈 덮인 논바닥과 산길에 내려앉는 걸 바라보던 기억은 볼이 얼얼하니 얼어붙긴 해도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었답니다.

누가 눈을 아름답다고 했는가. 가만히 돌아보니, 제가 바로 그사람이 되고 말았군요. 이왕 내리는 눈, 힘들다고 미워하면 더 고달퍼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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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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