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꽃 눈꽃 풀꽃의 대향연

고향에서 건진 겨울 풍경<1>얼음과 눈

등록 2003.02.06 15:40수정 2003.02.0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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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꽃>


a 바람에 제 멋대로 굽은 고드름

바람에 제 멋대로 굽은 고드름 ⓒ 김규환

a 연기가 피어오른 집에 걸린 고드름

연기가 피어오른 집에 걸린 고드름 ⓒ 김규환

시골마을을 지나다 보면 고드름이 사람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수정(水晶)에 해가 반사되면서 튕겨나가 눈을 현혹하기 때문이죠. 눈 오는 날 날씨가 풀리는 오후가 되면 군불을 때느라 데워진 지붕 양지쪽에서부터 물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라치면 어김없이 물이 밑으로 떨어집니다. 날씨 핑계 대고 거드름을 피운 녀석들끼리 엉겨붙어 생겨난 것이 고드름입니다.

고드름도 인생사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나선 놈이 힘겹게 마련입니다. 그러잖습니까, ‘선구자는 늘 외롭다’구요. 한 번 쥐꼬리 만큼이라도 길을 내면 이 놈 저 놈 뭐 대단한 것이라도 얻겠다 싶어 다들 모여들지요. 이렇게 해서 밤을 지새고 다음날 오후가 되어 날이 확 풀려야만 마당으로 “툭!”하고 떨어집니다. 지친 고드름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입니다.

a 위에서 떨어진 곳에 열린 얼음- 옆에 쑥대가 보이는 군요

위에서 떨어진 곳에 열린 얼음- 옆에 쑥대가 보이는 군요 ⓒ 김규환

a 바위에 엉겨붙은 얼음

바위에 엉겨붙은 얼음 ⓒ 김규환

얼음꽃의 백미는 냇가에 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개울 또는 도랑에 나가 경사진 곳이나 물살이 거센 곳이라면 이내 다 흘러갔나 싶은데도 몇 놈만 어슬렁거리고 남아 지푸라기나 나뭇가지, 돌덩이에 새 살림을 차립니다. 얇은 것일수록 투명한데 자꾸 춥다고 모이다 보면 두껍게 흰색을 띄어 어디에 달라 붙은지 모릅니다.

꽤 모였다 싶으면 자기들도 뭔가 주름잡을 게 있는 모양인지 토실토실 결을 만들어 울퉁불퉁하게 만듭니다. 이게 자연이 아닌가 합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딱 맞는 형상이지요.

꼭 목이 마르지 않더러도 동그란 얼음꽃을 떼내 입에 넣으면 입안이 시원하기 그지 없습니다. 제법 큼지막한 것을 입안에 넣고 있으면 사탕을 먹어 헐 것 같던 기억이 납니다. 낮 동안에 그걸 한두 개 먹어 본 아이치고 집에 와서 ‘쬐끄만’ 깍쟁이에 설탕이나 사카린을 녹여 휘휘 저어서 나뭇가지 하나 툭 박아 놓고, 장독대 위에 올려 놓지 않은 아이가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기 무섭게 제일 먼저 찾았던 그 ‘아이스께끼’를 쭉쭉 빨아대느라 정신 팔렸지요.


a 살얼음1

살얼음1 ⓒ 김규환

a 살얼음2

살얼음2 ⓒ 김규환

얼음 중에서도 첫얼음이거나, 날씨가 풀린 뒤 한 자 30여cm나 되는 두껍게 얼었던 얼음덩어리가 모두 떠내려 가고 새로 얼음이 얼면 참 보기 좋습니다. 살짝 언 얼음이라고 해서 살얼음이라고 하지요. 이 살얼음이어야 사람이 조심스레 밟아주면 “찍찍~” 소리를 내며 무지개를 그어 놓습니다. 물이 줄어드는 늦은 오후에는 중간중간 비어있어 부분별로 다른 하얀 얼음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살얼음 위를 조심조심 걷다가 보면 ‘쉬리’며, 어름치, 버들치, 피리, 꺽지는 물론이고 붕어와 바닥에서 느릿느릿 기어 다니는 실처럼 가는 미꾸라지가 눈에 들어 옵니다. 이런 민물고기를 관찰하기 위해 굳이 위험스럽게 얼음 위로 올라갈 필요까지 없지요. 냇가 어디고 얼음 주위에 가서 보면 투명한 얼음 속으로 이네들 만나기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얼음이 녹아 없어지는 우수나 경칩 즈음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정을 들고 냇가 바위틈을 누빕니다. 긴 장화 신는 것은 필수사항 입니다. 사람 몸채 만한 돌이 있으면 정이나 헤머를 사정없이 후려 내리칩니다. 주위에 하얗게 고기가 둥둥 떠오릅니다. 이 때는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므로 얼른 조리나 체로 건져 올리죠. 두어 시간 좌우 어깨를 번갈아 가며 내리치면 국그릇으로 두 그릇은 나옵니다.

오는 길에 냇가에 겨울에도 파릇파릇 싹을 띄우고 있는 돌미나리를 뿌리째 뽑아서 물에 흔들어 씻어 오면 좋습니다. 반그릇은 배를 따서 듬성듬성 썰어 진한 빙초산을 녹여 초고추장을 만들어 미나리에 비벼 술 안주하고 나머지는 짤박하게 지져 놓으면 밥 반찬으로 으뜸이었습니다.

<눈꽃과 눈사람>

a 나무가 눈에 붙어 있는 듯한 눈꽃

나무가 눈에 붙어 있는 듯한 눈꽃 ⓒ 김규환

a 사막과 진배없는 아침 눈꽃-해발 700미터 지점

사막과 진배없는 아침 눈꽃-해발 700미터 지점 ⓒ 김규환

눈꽃이 만발했습니다. 봄에 노란 꽃부터 피기 시작하여 흰꽃으로 바뀌고 태양을 머금은 꽃들은 붉디붉게 핍니다. 가을 서늘한 날씨엔 다시 노란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유례없이 많은 꽃이 피는 곳이 우리나라랍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가 빠져 있지요. 바로 눈꽃입니다. 눈꽃 중 최고로 치는 것이 비내리다가 바로 앙상한 나뭇가지에 달려 붙는 것이고 다음으로 눈내린 다음날 햇살을 받아 조금 녹았던 수분이 밤새 얼어 붙은 것이 보기 좋습니다.

바닥 눈 위에는 얼음사막 위에 소금 결정체가 뒹굴고 있는데 담아 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a 마을 앞 논두렁이 만들어 둔 눈사람

마을 앞 논두렁이 만들어 둔 눈사람 ⓒ 김규환

눈사람만 보면 개나 아이들 할 것 없이 무척 좋아합니다. 눈사람을 쉽게 만드는 방법은 눈이 내리기 시작할 때는 손대지 말고 어느 정도 눈이 포근히 쌓여 바닥에 1차로 녹은 눈과 새로 내린 눈이 만나 적당한 습기를 머금고 있을 때 굴리면 잘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렸을 적에는 일부러 눈사람 만드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마당을 치우기 위해 가상에서부터 안쪽으로 눈을 뭉쳐 굴려 나가 크게 말아진 것은 몸뚱아리로 쓰고 작은 것은 머리 부분에 올려 놓으면 되는 눈치우는 일과 관련된 놀이였답니다. 그러니 마당 넓은 아이들은 불평이 있게 마련이죠. 낙엽 질 땐 낙엽 쓸고, 눈 올 땐 눈을 치워야 되니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겨울 풀꽃>

a 겨울꽃

겨울꽃 ⓒ 김규환

한겨울에도 잊지 않고 사람 붙잡는 이들이 있습니다. 눈에 덮여 있던 작은 풀에서 어찌 이 귀여운 꽃을 피워대는지 놀랍습니다. 지 한 몸 버팅기기도 힘들게 작은 것이 외려 굳건히 살아 남아서 좁쌀만한 꽃을 피웁니다. 이 꽃은 이름을 모르지만 겨울 시린 날씨에 뺨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군요.

지붕이 곧 내려 앉을 것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우스 안에서는 하얀꽃이 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하얀 꽃에서 그 붉디 붉은 딸기가 열리는지 모르겠습니다. 3월이면 딸기철이 되지 않을까요? 본격 출하시기가 되면 담양 사람들은 새벽잠을 잊고 살아야 합니다. 밤 12시가 멀다하고 딸기를 따다가 잠시 눈을 붙이러 들어갔다가 다시 꼭두새벽4시에는 나와야 하죠. 일어나자 마자 딸기를 마저 따서 선별을 하고 포장을 합니다. 아저씨는 대충일이 마무리되는대로 해가 떠서 실내 기온이 무한정 올라가 말라 비틀어 죽기 전에 비닐을 걷어 올려 줘야 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저녁 때 기온이 떨어지면 다시 내려줘야 하지요.

a 딸기 꽃

딸기 꽃 ⓒ 김규환

이왕 이야기 나온 김에 딸기이야기 하나 추가합니다. 고교 3학년 때 딸기밭이 지천인 담양 창평고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는데, 주말에 친구들은 다 집으로 가고 동준이라는 친구와 나머니 한 친구만 남았더랬습니다. 5월 말쯤이었을 겁니다. 동준이는 저녁을 먹고 집에 좀 다녀 온다고 하고서는 금세 다시 나타났습니다. 큰 대바구니에 노지 밭 딸기를 가득 담아 자전거에 싣고 왔더군요. 밤새 셋이서 먹어댔습니다. 엄지 손톱만한 작은 크기였지만 알갱이가 살짝 씹히면서 그 얼마나 달고 맛있던지. 그 뒤로 논딸기, 하우스 딸기를 먹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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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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