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접나한은 조금 전에 들었던 소리 가운데 오물을 삼키는 소리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늘 화려한 비단 의복에 정갈한 음식, 그리고 향긋한 차와 편안한 잠자리를 고집하던 그가 어찌 더러운 분뇨를 먹는 것을 상상이나 해 보았겠는가!
"크흐흐! 그게 뭔지 이제 감 잡았나? 좋아, 네놈은 적응도 빠르고 상상력도 풍부하군. 지금부터 정확히 일각의 시간을 주겠다. 여기 서있는 멍청한 두 놈에게 방금 네가 보고 느낀 것을 상세히 설명하여 탈출은 꿈도 못 꾸게 해 주도록!"
"조, 존명!"
혹시 자신을 피거형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허겁지겁 달려온 비접나한은 보고 느낀 것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이에 냉혈살마와 이회옥의 안색은 더 이상 창백해 질 수 없을 만큼 창백해졌다.
냉혈살마는 수 없는 살행을 저지르는 동안 스스로 담대(膽大)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피거형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전신에서 소름이 돋는지 부르르 떨었다. 그것은 이회옥도 마찬가지였다.
도착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운기조식을 함으로서 장차 지옥갱을 탈출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기에 잠시도 쉬지 않고 운공을 했었다. 탈출한 뒤 자신을 무고(誣告)한 증인들을 찾아가 단단히 따져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출을 시도하다가 잘못되면 피거형에 처해질 것을 생각하니 떨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 같이 잔인한 형벌을 생각해 낸 무림천자성이 어쩌면 생각과 다른 집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세인들이 알고 있기로 무림천자성은 무림의 정의를 수호하는 집단이다. 그런데 아무리 흉악 무도한 죄를 지은 죄수들이라고는 하지만 같은 사람을 상대로 설마 이 같은 짓을 자행하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으으으…! 지옥갱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생지옥인 모양이다. 으으! 내가 과연 여기에서 버틸 수 있을까?'
이회옥은 탈출은커녕 지옥갱에서 버틸 일이 꿈만 같았다.
"크크크! 이제 잘 알았느냐? 똥물 속에서 썩기 싫으면 탈출을 꿈꾸지 않으면 된다. 알겠나?"
"조, 존명!"
이번에도 비접나한이 가장 먼저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나머지 둘은 사실 대답하고 싶어도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겁에 질려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크흐흐! 좋아, 그럼 너희들이 무슨 죄로 왔는지 한번 볼까? 뭐야 이거! 냉혈살마가 누구냐?"
"저, 접니다. 대인!"
이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흉악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거들먹거리던 냉혈살마였지만 그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내공을 모두 잃은 이상 범인(凡人)이나 마찬가지인 지금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옥졸이 왠지 두려웠던 것이다.
"호오…! 제법 많이 죽였군. 좋아, 네놈은 그렇다고 치고… 읏! 이건 뭐야? 색마? 비접나한? 네놈이 비접나한이냐?"
서류를 살피던 옥졸의 경멸에 찬 시선을 받은 비접나한은 즉각 오체복지(五體伏地)하며 복창하였다.
"소, 소인이 비접나한입니다. 대인!"
"이런 빌어먹을… 이젠, 이따위 색마 놈을 보내? 어쩐지 적응이 빠르다 싶었더니… 에이, 퉤에! 임마, 네놈의 쌍판떼기만 봐도 재수 없으니 앞으로 본좌 앞에선 고개조차 들지 마! 알았어?"
"존, 존명!"
"다음은 뭐야? 뭐, 말 도둑? 이런 미친놈들. 이젠 말 도둑까지 일루 보내? 도대체 어떻게들 일 처리를 하는 거야? 에이…!"
옥졸은 한낱 말 도둑 따위를 보낸 것이 신경에 거슬린다는 듯 툴툴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좋아! 너, 말 도둑이라고 했지?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인데 대체 누구 말을 몇 마리나 훔쳤길래 지옥갱에 보내진 것이냐?"
호기심이 동한 옥졸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 소인은 말을 훔친 적이 없습니다."
"뭐? 말을 훔친 적이 없다고? 하긴 미친놈더러 너 미쳤냐고 하면 미쳤다고 하는 놈이 하나도 없다더니… 오라, 그러고 보니 이 녀석 무지하게 뻔뻔스런 놈인 모양이군. 흥! 보나마나 괘씸죄로 이리 보내진 모양이군. 좋아, 너 같은 놈을 지옥갱에서 안 받으면 어디에서 받겠느냐? 후후! 죽도록 고생하게 해주지."
"정말이에요. 저는 정말 말을 훔친 적이 없어요. 믿어 주세요."
억울하다는 듯 소리치는 이회옥을 본 옥졸의 입가에는 가소롭다는 듯한 조소가 어려 있었다.
"크크! 그래 넌 말을 훔친 적이 없어. 믿어주지. 하지만 일단 이곳에 온 이상 넌 죽을 때까지 광석을 캐야한다. 석방은 없다. 그러니 아가리 닥치고 찌그러져 있어. 알았냐?"
"……!"
이회옥은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것이 못내 억울하였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현재로선 힘으로든 무엇으로든 도저히 난관을 헤쳐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크흐흐! 아무튼 네놈들을 환영하는 바이다. 따라오도록!"
"조, 존명!"
이번에도 비접나한만이 대답을 하였다. 냉혈살마와 이회옥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비칠비칠 옥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시꺼먼 철판으로 만든 문같이 생긴 곳에 당도하자 그곳에 있던 옥졸들 가운데 하나가 입을 열었다.
"어서 와라! 이놈들이 새로 온 놈들이냐?"
"크크! 그래, 살인마와 색마, 그리고 말 도둑이지."
"뭐? 말 도둑? 에이, 뭐가 잘못 되었겠지. 말 도둑이 여길 왜 오냐? 그런데 정말이냐? 설마 날 놀리려는 것은 아니겠지?"
지옥갱은 냉혈살마와 같은 중죄인들만 가두는 곳이다. 따라서 지금껏 말 도둑은 단 한번도 수감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옥졸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한 것이다.
"맞아! 이놈이 바로 말 도둑이지. 자, 여기 서류를 봐."
"뭐야? 정말이었어? 말 도둑이라니… 말도 안 돼! 지옥갱에 어찌 말 도둑을… 어찌되었건 어린놈이 재수 더럽게 없군."
"……!"
철판으로 만든 문은 지옥갱의 입구인 듯하였다. 손잡이인 듯한 곳에는 굵은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품에서 열쇄를 꺼내들던 옥졸은 이회옥을 바라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십 년이 넘도록 이곳 지옥갱에 있었지만 말 도둑이 들기는 오늘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크크크! 진짜 말 도둑이라고? 크크! 자, 이것을 받아라."
"……!"
입구에 있던 옥졸이 자물통을 여는 동안 곁에 있던 옥졸이 건넨 곡괭이를 받아든 이회옥은 현실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고 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악몽을 꾸고 있는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묵직한 곡괭이 자루를 잡는 순간 이것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흠칫거렸다.
철커덕! 철컥! 덜컹!
"……!"
갱도 입구가 열리는 순간 안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퀘퀘한 냄새를 맡은 셋은 일제히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본격적인 지옥갱의 생활이 시작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급경사를 이루면서 밑으로 뚫려 있는 갱도는 글자 그대로 지옥의 입구인 듯 보였다.
"크흐흐! 마지막으로 하늘이나 한번씩보고 내려가라."
"……!"
옥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던 셋은 일제히 허공을 바라보았다. 높고 푸른 하늘에는 구름 몇 조각이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오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제기랄…! 날씨 한번 더럽게 좋군."
어느 새 냉혈살마의 눈에는 한 방울 이슬이 맺혀 있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면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하늘이다. 우중충하거나 잔뜩 찌푸려져 있다면 투덜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깨끗하니까 괜스레 심술이 솟은 것이다.
"크흐흐! 하늘 감상이 끝났으면 이제 들어가라. 밑으로 쭉 내려가면 누군가가 마중을 나올 것이다. 크크! 즐거운 지옥갱 생활이 되길 바란다."
"……!"
덜컹! 덜커덩!
츠라라라라라랏! 철컥! 철컥!
갱도 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입구가 닫히면서 요란한 소리가 연속하여 터져 나왔다. 그러자 비접나한이 번개처럼 돌아서면서 입구를 밀어 제쳤다.
열린다면 죽던 살던 밖으로 나갈 기세였다.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지옥갱 안에 갇힌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하여 앞뒤 가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안 돼! 이이이잇! 끄으으응! 젠장! 꼼짝도 않네."
혼신의 힘을 기울였지만 입구는 미동(微動)도 않았다. 엄청난 무게를 지닌 문이 이미 완벽하게 닫혔기 때문이다. 같은 순간 냉혈살마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입구를 막은 철판의 두께는 얼추 일 촌은 되었다. 그 정도면 웬만한 내공으로는 어찌해볼 생각조차 품을 수 없는 두께이다.
그것 하나만 보아도 이곳에 오는 동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어쩌면 이곳에서 뼈를 묻을지도 모른다는 상념이 스치고 지난 탓에 안색이 어두워진 것이다.
"저, 이 밑으로 안 내려가면 안 되요?"
이회옥 역시 은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겁먹은 표정이었다. 하여 그의 음성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알리는 말씀]
풍자무협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도 풍자는 없다는 어떤 독자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여 앞으로 연재될 부분 중 일부를 미리 발췌하여 보았습니다.
풍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뒷부분이 이러하니 지금은 재미없더라도 꾹 참고 읽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이것을 보시려면 메인화면 좌측 아래쪽에 있는 "<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항목을 클릭하십시오.
문화면 연재란에 있는 것을 누르셔도 됩니다.
연재글 목록이 주르륵 나오면 제 연재실에 도착하신 것입니다.
거기서 오른 쪽을 보시면 게시판이 있습니다.
거기서 맨 위 항목을 클릭하십시오.
앞으로 연재 될 내용 가운데 일부를 미리 보실 수 있습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제 글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과 문파명 등은 실제로 존재하였거나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나 단체, 국가 등과 전혀 무관합니다.
참, 앞에서부터 천천히 읽고 계시는 중이시지요?
이제부터 등장인물들이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앞 부분을 안 보시면 뭐가 뭔지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천천히 앞 부분부터 읽어 주십시오.
제갈천 배상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