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53

생체실험 (3)

등록 2003.02.19 14:32수정 2003.02.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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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하하하! 방금 뭐라 하였느냐? 다시 한번 말해 봐라!"
"존명! 소성주님, 경하드립니다. 성주께서 드디어 소성주님을 후계자로 공식 천명하셨다고 하옵니다."

"하하하! 정말?"
"그러하옵니다, 다시 한번 경하드립니다."
"하하하! 크하하하…!"


철기린 구신혁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중에 십팔호천대의 대주 무영(無影)이 무언가 지껄이는 소리를 듣기는 들었다. 하지만 딴 데 정신을 팔고 있었던지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었다.

며칠 전 자신이 낙화(落花)시킨 여인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하였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무영의 보고가 귀를 씻고 들어야할 만큼 중요한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하여 반문했다가 자신이 제대로 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연신 앙천광소(仰天狂笑)를 터뜨렸다. 하긴, 장차 천하를 다스릴 대권을 물려받게 되었다는데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그동안 부친의 명에 따라 천하를 유랑하면서 편치 않은 잠자리 때문에 고생한 것이 얼마던가! 게다가 물을 갈아 마셔서 속이 편치 않았던 적도 상당히 많았다.

이런 것들은 철기린이 무림천자성 총단에만 있었다면 전혀 경험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고난의 연속만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어디를 가던 금준미주(金樽美酒)와 옥반가효(玉盤佳肴), 그리고 절세미녀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녀들 대부분은 무림의 여인들이었다. 간혹 불문에 몸담은 비구니나 여도사일 때도 있었다. 그런 그녀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청백지신이었다는 것이다.

불문(佛門)의 청정도량인 소림사는 물론 무당파에서도 주향(酒香)을 풍겼고, 숨넘어갈 듯한 여인의 신음과 교성이 울려 퍼지게 하기도 하였다. 소림과 무당이 개파한 이래 처음으로 외인에게 속가제자들 가운데 자색(姿色)이 뛰어난 여제자를 바친 것이다.


아미파에 들렸을 때에는 대웅전(大雄殿) 한복판에 원앙금침(鴛鴦衾枕)을 펼쳐놓고 아미 장문인의 애제자를 환속(還俗)시키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것은 비단 구파일방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남궁세가나 진주언가, 제갈세가나 사천당가를 들렀을 때에는 가주의 여식이나 손녀들과 동침했다.

공식적으로 철기린 구신혁은 아직 홀몸이었다. 하지만 정식으로 혼례를 올리게 되면 첩실의 수효만 해도 적어도 일백여 명은 족히 될 것이다.

지난 일년 간 무림 각파를 돌면서 거둔 여인들의 수효가 적어도 백여 명은 족히 되기 때문이다.

구파일방의 장문인이나 명문세가의 가주들이 여식이나 손녀 혹은 애제자를 그에게 준 것은 그렇게라도 인연의 끈을 이어 두어야 장차 철기린이 천하를 다스릴 때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을 한 때문이었다.

철기린은 이러한 의도를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유난히 색을 밝히던 그는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겉으로는 그들이 베푸는 호의를 짐짓 부담스러워하거나, 거절하는 척하였다.

이에 몸이 달은 무림 각파의 수장들은 제발 자신의 여식을 거둬 달라는 애원 아닌 애원을 하는 진풍경을 벌이기도 하였다.

결국 여인들은 그의 품에서 파과의 고통을 느끼며 길고 긴 비명을 지르게 되었다. 그 소리를 들은 각파의 수장들은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쉬고는 물러들 갔다.

하지만 철기린은 결코 어리숙한 인물이 아니었다. 무림천자성의 후계구도가 아직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은 이상 적을 만들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겉으로는 아주 예의범절이 바른 청년처럼 굴었다. 그가 장차 무림천자성의 후계자가 될 확률이 가장 많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에 후계자인양 거들먹거려도 누구하나 탓할 사람이 없건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어디를 가든 겸손한 척하였고, 철저하게 예의를 갖췄다.

무림천자성의 소성주는 정파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이나 무당파의 장문인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지고한 신분이다. 그렇기에 무슨 짓을 하던 감히 토를 달 수 없건만 철저하게 예를 갖춤으로서 장차 무림의 정의를 수호하는 무림천자성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는 인상을 심어 준 것이다.

그렇기에 그와 직접 대면하였던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이나 명문세가의 가주들은 그에 대한 호감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정도의 성품이라면 여식이나 제자를 불행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까지 하였다.

무림 각파가 철기린과 인연 쌓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 무림천자성의 그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역시 아직 후계구도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발설했다가 자칫 다른 사람이 후계를 잇게되면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기 때문이었다.

철기린 구신혁의 제법 호탕한 앙천광소가 잦아들 무렵 육십 전후의 노인 하나가 전각 안으로 들어서며 허리를 숙였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소성주님! 속하, 사론(史論)이 유대문(儒 門)을 대표하여 소성주님께 경하의 말씀을 올립니다."
"하하! 어서 오십시오. 방금 전에야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경하드리옵니다. 이처럼 좋은 소식을 처음 들으신 곳이 이곳 유대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하하! 이를 말씀이십니까?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오늘 같이 기쁜 날 어찌 술 한잔이 없어서 되겠습니까? 속하가 유대문을 대표하여 소성주님을 위한 자그마한 연회를 베풀고 싶은데 허락하여 주십시오."
"연회요? 하하! 성의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소생이 무림각파를 순회하는 것은 본성과 무림의 각 문파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자는 것이지 술대접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철기린은 정중한 거절을 표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어디를 보아도 흠잡을 곳 하나 없는 그야말로 정인군자 그 자체였다.

게다가 생긴 것은 또 얼마나 잘 생겼는가! 그에게 무림천자성의 소성주라는 직책이 없다 하더라도 여인이라면 누구나 안기고 싶을 만큼 준수하였다. 그렇기에 철기린이라는 외호로 불리지 않던가!

유대문의 총단으로 향하는 길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그리고 막다른 길의 끝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팔래문(叭門) 때문이다.

그들과는 앙숙관계이기에 다른 길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둘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없기에 용무가 없다면 웬만한 사람들은 인근 백 리 안에는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는다.

자칫 상대의 간세(奸細 :첩자)로 오인 받아 공격당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유대문과 팔래문 사람들이 왕래하는 것을 빼고 나면 이곳은 무척이나 한적한 곳이다.

가장 가까운 시진에서 무려 백 리나 떨어져 있는데도 중간에 인가(人家)라고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유대문과 팔래문 사람들은 마주치기만 하면 병장기를 뽑아들고 상대를 죽이지 못해 안달을 한다. 그렇기에 가깝게 있다가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있던 사람들도 모두 떠나 한적한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두 문파가 이처럼 으르렁대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곳은 노군령(老君)은 섬서성(陝西省)의 성숙해(星宿海)라 불릴 만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경치뿐만 아니라 노군령은 예로부터 유난히도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 그리고 영험한 약효가 있는 영초(靈草)들이 많은 곳이었다.

오래 전 이곳에 자리잡은 팔래문은 별다른 잡음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대문 사람들이 노군령으로 난입하였다. 그리고는 그곳에 유대문 총단을 지었다.

자신이 살던 터에 아무런 양해도 없이 오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팔래문에서는 당연히 나가라 하였고, 유대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살던 곳이므로 절대 나갈 수 없다고 버텼다.

오랜 전, 그러니까 대략 천 년도 더 지난 과거에 유대문 사람들의 선조가 노군령에 머문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때 그들은 무림인들에 의하여 멸문지화를 당했다.

자신들만이 유일하게 천지신명의 기운을 타고났다며 오만방자한 행동을 하기 일쑤여서 타인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 데다가, 많은 사람들을 도탄에 빠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무림의 금기를 깼기 때문이다.

간신히 살아 남은 자들은 신분을 감추고 여기저기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천 년이 넘도록 노군령 근처에는 발길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느닷없이 나타나 자신들의 선조가 머물던 곳이므로 있어도 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니 팔래문으로서는 괘씸하기도 하면서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유대문이 자리잡으려는 곳이 팔래문의 흥망과 직결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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