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래문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깊은 산중에 자리잡고 있기에 위해 약초를 캐서 내다 파는 것으로 문파를 유지해 왔다. 그리고 산짐승을 잡아 가죽을 팔아 문파를 유지했다.
그런데 매년 막대한 양의 영초(靈草)를 수확하는 곳에 전각을 지으려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유난히도 많은 산짐승이 발길을 하는 곳이었다.
아마도 상처 입거나 어디가 아픈 짐승들이 영험한 약초를 먹기 위하여 오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유대문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막아섰지만 결국 눈물을 머금고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랍게도 유대문의 뒤에는 무림천자성의 너무도 막강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팔래문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배경이었던 것이다.
유대문의 조상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배척 당한 것에는 자신들만이 최고라는 오만방자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그들의 피도 눈물도 없는 처신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은자가 급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은자를 빌려주고 이자를 챙기는 일을 했다. 이런 때에는 의례 차용증을 작성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해도 너무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의 약점을 악용(惡用)하여 불과 한 달만에 원금과 맞먹는 이자를 내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빌릴 수밖에 없었다. 인근에 그만한 재물을 빌려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유대문 선조들의 재산은 나날이 늘어갔다. 이러한 행각은 섬서성 인근에서만 벌어졌기에 중원의 다른 곳에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만천하를 떠들썩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동진(東晋) 초엽, 지금은 서안이라 불리는 장안(長安)에는 의리 좋기로 이름난 한량이 있었다. 안동오(安東悟)가 그였다.
어느 날, 그에게 친구 가운데 하나인 배사문(裵嗣文)이 은자를 빌리러 왔다. 친구의 부탁을 단 한번도 거절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안동오는 은자를 빌려주고 싶었지만 수중에 한 푼도 없었다. 하여 유명한 고리대금업자인 사일록(史一碌)을 찾아갔다.
이에 사일록은 은자 삼백 냥을 선뜻 빌려 주면서 차용증을 써달라 하였다. 그런데 그 차용증의 내용이 이상하였다. 만일 기일 안에 은자를 못 갚으면 안동오의 살 한 근을 받겠다는 것이다.
평소 안면이 있던 터이기에 이를 농담이라 생각한 안동오는 실소를 머금고 수결(手決)을 했다. 덕분에 은자를 빌린 배사문은 멋지게 차려입고는 장안 제일부자의 일점혈육인 초규진(草圭珍)에게 구혼하러 갈 수 있었다.
한편 사일록의 장중주인 사영혜(史英慧)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그 역시 안동오의 친구 가운데 하나였다. 학문 깊고, 성품 한일한데가, 준수하기까지 한 서생이었다.
하지만 사일록은 둘의 사이를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가진 것도 없고,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던 둘은 안동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에 안동오는 사일록을 연회에 초대하였다. 그 사이에 둘은 금은보화를 챙겨서 멀리 도망갈 수 있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 온 사일록은 여식이 도망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자가 안동오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를 갈았다. 그러던 중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안동오는 전 재산을 염전에 투자한 바 있었다. 그런데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만들어 놓았던 소금이 모두 사라져 알거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사일록은 기뻐하였다. 눈에 가시 같던 안동오에게서 살 한 근을 떼어 내면 죽게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초규진과 혼례를 올리게 된 배사문은 안동오가 사일록에게 살 한 덩이를 떼어주게 생겼다는 전갈을 받자 즉각 은자를 챙겨 노군령을 찾았다. 하지만 사일록은 차용증에 적힌 대로 안동오의 살을 베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관부에서 이 일을 심리하게 되면서 만천하에 유대문이 저지른 온갖 만행이 낱낱이 밝혀졌다.
불과 은자 몇 냥을 빌려주면서 기일 안에 이자를 못 내거나, 원금을 못 갚을 경우에 가차없이 노예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그것으로도 모자라다면서 그의 부인이나 여식까지 끌고 갔다.
이후 사내는 죽지 않을 정도로 힘든 일을 하다 지쳐서 쓰러져야 하였고, 여인들은 유대문 사내들에게 온갖 능욕을 다 당해야 하였다. 즐기다 즐기다 싫증이 나면 기루에 팔아 넘겼다.
만일 은자를 빌려간 자의 여식이나 부인이 탐날 경우에는 일부러 은자가 필요하도록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친절을 베푸는 척 은자를 빌려주고는 만기일이 되면 일부러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되면 채무자는 빚을 갚으려해도 갚을 방도가 없게 된다. 그리고는 다음 날 나타나서 만기일이 지났는데 빚을 못 갚았다면서 채무자를 끌고 가고, 그의 부인이나 여식 또한 끌고 갔다.
그녀들 역시 다른 여인들과 마찬가지도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뒤에 몸을 파는 홍루(紅樓)에 팔려나가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섬서성 안에서만 유대문에 의하여 풍비박산 난 자들의 수효만 해도 일천이 훨씬 넘었다. 그들 대부분은 은자 몇 냥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의 만행만으로도 천인공노할 노릇인데 또 하나의 만행이 드러나게 되었다. 공동묘지를 파헤쳐 시독(屍毒)을 채취하는 현장을 발각 당한 것이다.
유대문은 긁어모은 많은 은자를 지키기 위하여 호위무사들을 고용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지급하는 급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자 은밀히 무공비급을 사들였다.
그 가운데는 시독을 흡수한 후 장력에 실어 발출하는 장법이 기록된 비급이 있었다. 그것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죽은 지 반년이 채 안 되는 시신이 필요했다. 하여 은밀히 공동묘지를 파헤치고 있었는데 그 현장을 발각당한 것이다.
이에 무림인들은 유대문을 무림공적으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대대적인 공격이 있었다. 결국 유대문은 강호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목숨을 건진 몇몇은 신분을 감춘 채 강호를 유랑하였다.
신분이 드러나면 참수형에 처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유대문의 후손들은 또 다시 재물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물론 고리대금업을 통한 축재(蓄財)였다. 이래서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사일록의 전철은 밟지는 않았다. 그랬다가 또 멸문지화를 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무림천자성이 생겨났는데 이때 많은 공을 세웠다.
병장기가 필요한 무림인들에게 은자를 빌려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유대문의 모든 은자는 무림천자성으로 흘러들었지만 그것들은 곧바로 유대문으로 되돌아왔다. 탁월한 축재능력으로 그것들을 몇 배 불려주겠다고 제안하였던 결과였다.
결국 유대문은 보유하고 있던 은자보다 더 많은 은자를 지니게 되었다. 물론 무림인들에게 빌려주었던 은자에 대한 이자는 이자대로 받게 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림의 소문과는 달리 세상의 모든 은자가 유대문으로 쏠리게 될 판국이었다. 덕분에 무림천자성에서 유대문의 존재는 점점 더 부각되어 갔다.
그 와중에 간특한 사론은 요직에 있는 인물들에게 손을 썼다. 적지 않은 뇌물로 장로와 호법 등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 뇌물의 액수는 세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였다. 은자 다섯 냥이면 네 식구가 한 달을 지낼 수 있다. 따라서 오만 냥이면 팔백 년을 넘게 지낼 수 있는 거금이다.
그런데 유대문에서 장로나 호법들에게 넘긴 은자는 자그만치 오백만 냥씩이었다. 그러니 도도하던 장로들과 호법들이 홀딱 넘어 온 것이다. 이후 그들은 유대문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다.
그렇기에 이곳에 유대문이 총단을 짓고 개파대전까지 근사하게 치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로와 호법들의 절대적인 충성을 받는 성주에게 있었다.
무림천자성의 성주 철룡화존 구부시는 은자로 유혹할 수 없는 인물이다. 세상의 은자가 명목상으로는 그의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명예나 권력으로도 그를 유혹할 수 없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와 그의 아들인 철기린은 팔래문과 반목하고 있는 유대문을 결코 좋은 눈으로 보고있지 않았다.
무림인은 물론 양민들까지 무림의 정의를 수호하는 무림천자성과 유대문이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팔래문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힌 적이 없는 문파라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또한 유대문이 팔래문의 영역을 무단으로 침범하였다는 것도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팔래문의 저항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유대문에게 직접적인 욕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림천자성과의 관계 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급적이면 그들과의 충돌을 줄이라고 여러 번 의사를 밝혔건만 유대문이 말을 듣지 않고 수시로 팔래문과 충돌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수 있었던 직접적인 이유는 지금껏 단 한 자루도 외부로 유출된 적이 없는 무적검을 유대문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두 문파가 서로 비슷한 수준의 무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유대문이 지닌 무적검 때문에 팔래문의 만한검이 번번이 박살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유대문이 자꾸만 문제를 발생시켜 강호가 시끄럽게 되자 철룡화존은 수하들로 하여금 은밀히 조사케 한 것이 있었다.
모든 자금줄을 쥐고 있는 유대문을 없앨 수는 없으니 아예 팔래문을 멸문시키는 것이 어떤가를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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