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55

생체실험 (5)

등록 2003.02.21 14:57수정 2003.02.2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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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래문은 마도 계열의 문파였다. 만일 그들의 멸문이 무림천자성과 유대문의 합작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백만 마도가 일제히 봉기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림천자성으로서도 곤란한 일이었다. 막대한 인명피해를 각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세력까지 결집되면 자칫 멸문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대문으로 하여금 잠잠히 있으라고 여러 번 경고를 보냈다.


물론 유대문은 갖가지 핑계를 대며 계속하여 팔래문을 핍박하고 있었다. 그들을 멸문시키고 노군령 전체를 차지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의도였다.

어제 밤, 이곳에 도착하였을 때 철기린이 타고 온 마차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길을 닦아 놓기는 하였지만 유난히도 먼지가 많이 나는 길이기에 어떤 마차이든 늘 이런 모습이었다.

얼마 전 며칠 동안이나 폭우가 쏟아져 인적이 완전히 끊겼을 때 유대문에서는 많은 마차들이 밖으로 향했다. 안에는 육중한 철궤들이 들어 있었기에 마차가 지난 곳에는 자국이 남았다.

떡을 만들다보면 고물이 묻기 마련이다. 워낙 막대한 은자를 주무르다보니 떡고물 역시 막대하게 생겨났다. 그런데 무림천자성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

만일 사실이 알려지면 고스란히 무림천자성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욕심이 났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차지하려 머리를 굴렸다.

유대문에는 수시로 무림천자성의 인물들이 드나든다. 은자 관리가 제대로 되는지 확인하러 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눈에 뜨여서도 안 되었다. 하여 억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마차에 실어서 모종의 장소로 보냈다.


여러 대의 마차가 움직이면 사람들의 눈에 뜨이기 쉽기에 가급적이면 마차의 수를 줄여야 하였다. 그렇기에 가급적이면 많이 실어야 하였다. 덕분에 닦아 놓은 길 여기저기가 움푹 파였다.

그러므로 수없이 덜컹거리면서 왔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아무리 장사라도 피곤해지는 법이다. 하여 철기린이 도착하자마자 따듯한 물에 수욕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는 물러났다. 준비가 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철기린이 도착할 시각은 오늘이었다. 그런데 하루 일찍 당도한 것이다.

사론에게는 올해 열아홉이 된 빙기선녀(氷肌仙女)라 불리는 사지약(史芝若)이라는 장중주(掌中珠)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워낙 영특하고 빼어난 미모를 지녔기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금지옥엽(金枝玉葉)이었다.

그런 그녀였지만 사론은 그녀를 철기린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다. 유대문 최고 미녀인 그녀 정도가 되어야 철기린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만일 계획대로 성사되어 사지약이 철기린의 지어미가 된다면 유대문의 앞날은 그야말로 훤히 열리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눈에 가시 같은 팔래문을 완전 박멸하고 이곳 노군령을 독차지 할 생각이었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사론만이 알고 있는 비밀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노군령에 있는 수없이 많은 호소(湖沼) 중 하나의 바닥에 엄청난 양의 금강석(金剛石)이 쌓여 있다는 것이다. 그 정도면 무림천자성의 전 재산과 맞먹을 정도였다.

그것을 건져내려면 적지 않은 도구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기에 금방 소문이 번질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가도 되는데 굳이 노군령을 고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곳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 인근에 유대문 문주만을 위한 연공관을 짓고 그곳을 금지(禁地)로 선포한 것도 그래서였다.

아무튼 자신이 정략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짐작 못하는 빙기선녀는 장차 지아비가 될 철기린을 만나기 전에 불공을 드리겠다고 절에 갔다. 그녀는 그가 청혼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는 칠 일 간의 치성을 끝으로 어제 귀가하여 오늘 도착할 철기린을 위한 준비를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도 도착하지 않았기에 사론의 마음은 뜨거운 가마솥에 빠진 개미같이 바싹 바싹 타들어 갔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에 걸리는 일어 다소 초조한 기분이었다. 지금껏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준 무영 때문이었다.

유대문의 수뇌부들은 매년 원단이 되면 적지 않은 뇌물을 싸들고 무림천자성을 찾았다. 철룡화존 및 성주 일가에게 하례를 올리고 수뇌부들에게는 막대한 뇌물을 바침으로서 변함 없는 신뢰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재작년에도 철기린의 처소를 찾았다. 하지만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폐관 수련을 하느라 연공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유대문은 철기린의 눈치를 살필 때였다. 팔래문과의 대접전으로 강호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만일 팔래문이 먼저 공격하여 이에 응한 것이라면 큰 파문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것에 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저 문제를 일으킨 곳은 유대문이었다.

한밤중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선제 공격을 가한 것이다. 하여 대대적인 성과를 얻기는 하였다. 팔래문 총단이 완전한 쑥대밭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강호가 술렁이고 있었다.

유대문의 공격은 강호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문파와 문파간의 싸움이라면 의당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 관례이다. 더구나 유대문은 마도나 사파무림에 속한 문파가 아니었다.

정파무림에 속한다 자처하던 그들이 야밤에 기습 공격을 감행한 것은 아무리 뒤집어 생각해도 결코 온당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하여 무림에서는 강호정의를 새롭게 정립(鼎立)하는 차원에서라도 유대문을 응징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그것은 마도문파만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 정파무림에서도 늘 문제를 일으키는 유대문에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소리가 있었다.

사실 유대문은 정사마(正邪魔)를 가리지 않고 은근한 질시의 눈초리를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파무림 안에서의 반발도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우쭐해 하는 행동 때문이었다.

무림천자성의 재물을 대신 주무른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무림의 다른 문파 알기를 개똥만도 못하게 여긴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유대문의 이처럼 방약무인하고 오만한 처신으로 인하여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적을 만든 것이다. 이에 철룡화존과 철기린이 불쾌한 기분이었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일 것이다.

무림천자성은 아무런 상관도 없건만 모든 불만의 목소리가 무림천자성으로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분기탱천한 철룡화존은 공개적으로 유대문을 제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갔지만 이에 반대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수뇌부라 할 수 있는 호법과 장로들이었다. 만일 유대문이 박살날 경우 매년 받아왔던 뇌물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을까 싶어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 외에도 또 하나의 강력한 반대자가 있었다. 바로 철기린이었다.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에 무림천자성이 직접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하여 자신이 유대문주 사론에게 비공식적으로 주의를 주는 것으로 매듭짓자는 것이었다.

하여 철기린 명의의 배첩이 유대문으로 보내졌었다. 물론 그 내용은 다시 한번 물의를 일으킬 경우에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경고의 문구였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철기린은 평소 다정다감한 성품이지만 한번 마음을 찍히면 좀처럼 신뢰를 회복시키지 않는 인물이라 하였다. 그렇기에 배첩을 받은 사론은 두려움에 떨었다.

철기린의 미움을 받으면 유대문의 존립에 막대한 영향이 미칠 것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그를 만나 사죄를 함으로서 모든 일을 무마하려 하였는데 없다고 하자 낭패한 기색을 떠올렸다.

당시 사론을 영접한 사람은 다름 아닌 무영이었다. 십팔호천대의 두 대주 가운데 하나인 그는 낭패한 표정을 짓는 사론의 곁에 있던 아름다운 소녀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하여 유난히도 친절하게 굴었다.

노회(老獪)한 여우인 사론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뻣뻣하던 무영의 태도가 돌변하자 이를 즉각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빙기선녀를 줄 터이니 철기린의 마음을 회유시켜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장차 무림천자성의 성주가 될 철기린의 측근 가운데에서 최 측근인 그를 사위로 만들어 둔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첫째 눈앞에 닥친 철기린의 분노를 훨씬 쉽게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설마 최 측근이 곁에서 거드는데 계속하여 화를 낼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었다.

둘째, 장로와 호법들은 언젠가는 늙어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뒤를 이은 후기지수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누가 차지할 확률이 크겠는가!

무영정도라면 철기린이 보좌에 앉은 이후 제일호법이나, 수석장로가 될 확률이 컸다. 그런 사람이 유대문의 뒤를 봐준다면 그야말로 전도가 양양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앞뒤 가릴 것 없이 빙기선녀를 주겠다는 약조를 한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껏 적지 않은 첩보를 보내 줘 막대한 이익을 도모하면서도 무림천자성의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기선녀를 철기린과 맺어지게 하려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무영은 철기린의 졸개이다. 그리고 철기린은 장차 천하의 주인이 될 사람이다.

그렇다면 주인과 인연을 맺는 것이 좋겠는가? 아니면, 그 졸개와 인연을 맺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전자를 택할 것이다. 그렇기에 사론 역시 철기린을 택한 것이다.

'네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흥! 만일 뭐라고 한다면 네놈의 목을 따도록 할 것이야.'

사론은 철기린의 곁에 있는 무영을 힐끔 바라보면서 냉소를 머금었다. 지금까지는 그에게 굽신거렸지만 앞으로는 안 그래도 될 것이라는 회심의 미소 역시 머금고 있었다.

같은 순간, 무영 역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작년 신년하례식 때 보고 지금껏 보지 못했던 빙기선녀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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