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25

등록 2003.02.28 18:13수정 2003.02.2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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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부가 씨근덕거리며 무골에게 따졌다.

"네 녀석이 그곳 지리를 알기나 하겠냐? 게다가 공자님이나 저 서생을 보좌하기 위해서는 힘께나 쓰는 내가 가야지!"


협부와 무골은 옥신각신 다투다가 아예 씨름으로 결정을 보기로 결정을 봤다. 모두들 누가 주몽을 따라나서냐 보다는 오래간만에 구경거리가 났다는 것에 신이 나서 모여들었다.

이 시기의 씨름은 오늘날처럼 서로 샅바를 잡고 겨루는 것이 아니라 서로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맞붙어 먼저 땅에 쓰러뜨리는 쪽이 이기는 식이었다. 협부와 무골은 기합을 넣으며 서로 손을 맞잡고 힘을 겨루었다. 무골이 조금씩 밀리는가 싶더니 순간 손에 힘을 쑥 풀어버렸다. 협부는 자신의 힘에 의해 앞으로 밀렸고 무골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손을 깍지 껴서 무골의 허리를 안고 들어올리더니 힘차게 돌려서 땅에 패대기를 쳤다. 협부의 패배였다.

"야! 이런!"

협부가 억울하다는 듯 흙을 주워 땅바닥에 쫙 뿌렸다.

다음날 모든 준비를 마친 주몽과 묵거, 무골은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새벽 일찍 길을 나섰다. 어찌 보면 참으로 무모한 짓 같았지만 여기에는 주몽과 재사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공자께서 직접 되든 안 되든 동부여로 가 저들의 식솔을 구해오십시오.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시작부터 모든 것은 어그러질 뿐입니다. 묵거가 동행할 것이니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동안은 이곳의 일은 오이공과 제가 협력해서 나갈 것입니다."

"과연 잘 될지 모르겠소. 난 최선을 다할 것이오."


"시도는 하되 절대 무리는 하지 마십시오. 공자께서 동부여에 억류되어 버리면 모든 것이 허사가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이 일은 주몽공자께서 앞으로 한 나라의 지도자로 나서느냐 아니야는 계기가 될 것이옵니다."

재사와의 대화를 상기시키며 주몽은 말을 달려 동부여로 달렸다. 재사는 일종의 '보여주기'만으로도 만족할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으로서 주몽은 그런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예주를 데려올 수 있다는 이기적인 기대감도 담고 있었다. 물론 재사가 따로 주의를 주지는 않았지만 동부여에 다다라서도 예주를 데려오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것보다 다른 이들의 식솔을 데려오는 것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했다. 동부여로 가는 길은 쫓겨갔던 예전과는 비할 바 없이 평탄하기 그지없었다.

졸본천으로 가기 전까지는 워낙 바빴다 보니 그리 의식하지 않은 듯 했지만 묵거는 자신의 수염을 다듬는데 꽤 열심이었다. 턱수염은 거의 밀어버리고 콧수염을 가늘게 꼬아 세운 그의 수염은 주몽의 눈에는 풍성한 수염에 비해서 상당히 멋있게 보여 일부러 손질하는 법을 따라서 배우기까지 했다. 묵거에 비하면 수염이 길지 않은 주몽인지라 그리 모양새가 나지 않자 그와는 달리 턱 수염까지 꼬아서 가꾸었다. 이를 보고 묵거가 껄껄 웃었다.

"훗날 한 나라의 왕이 되시면 이조차 모두가 따를 것이오."

"그건 왜 그렇습니까?"

"왕만이 갖출 수 있는 복색과 법도가 있기에 다른 이들이 이를 따를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가능한 것을 비슷하게 꾸며 왕과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지요."

"글쎄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오,"

묵거가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이는 앞으로 주의하여 볼 일입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란 말이 있습니다."

"여우가 호랑이의 권세를 빈다는 말이 아니오."

"여기에는 다른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는 전국시대 초(楚)나라 선왕 때의 일에서 나온 말이다. 위(魏)나라에서 사신으로 왔다가 그의 신하가 된 강을에게 물었다. 선왕은 '위나라를 비롯한 북방의 나라들이 우리 재상인 소해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고 이에 강을은 소해율을 여우에, 선왕을 호랑이에 비유하며 이 고사를 얘기했다. 그러나 사실 강을이 소해율을 시기했기에 꾸민 얘기에 불과했다.

"바로 강을은 선왕의 의도를 알고 그에 맞추어 간교한 말로 능력 있는 소해율을 헐뜯었던 것입니다. 옆에서 교묘히 비위를 맞추는 이를 공자께서는 주의하셔야 합니다."

옆에서는 무골이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다는 듯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뗏목을 엮어 개사수를 건너 동부여 근방에 이른 이들은 다음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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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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