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37

등록 2003.03.14 17:52수정 2003.03.14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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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제의를 받아들이겠다는 송양의 승낙을 받은 묵거 일행은 서둘러 고구려로 돌아가 전후사정을 얘기했다.

"그 방향이면 오녀산성이 훤히 보일텐데 우리는 저들에게 보여줄 왕궁이 없지 않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묵거가 입을 떼기도 전에 옆에서 듣고 있던 월군녀가 나섰다.

"그야 간단하지요. 이쪽으로 오겠다니 송양이 제 죽을 날을 앞당긴 셈입니다. 성대하게 맞아들이는 척 하면서 복병을 숨겨놓고 없애버리면 비류국은 그냥 고구려로 귀속되는 겁니다."

월군녀는 여인답지 않게 그 포부가 컸다. 아무것도 없는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왕이 된 것은 부여에서 온 주몽을 심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토착민들의 동요를 자신이 막았기 때문이었다고 월군녀는 여기고 있었고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월군녀는 자신의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주몽이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묵거가 강경한 어조로 이를 반대했다.

"결코 써서는 안될 계책입니다! 고구려는 갓 나라를 세운 터라 주위에 간교한 계략으로 사람을 해쳤다는 소문이 터지면 앞으로 많은 나라들이 견제할 것입니다. 더구나 비류국은 호구수만 해도 우리의 두 배며 물산 또한 풍부해 저항한다면 쉽게 병탄할 수 없을 겁니다. 행여 무력으로 짓밟는다고 해도 그 곳의 백성들은 폐하께 진심으로 따르지 않게 됩니다.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도 저들을 다스릴 수 있으니 폐하께서는 통촉하시옵소서."

월군녀는 사사건건 자신의 말을 반대하는 묵거가 미워 언성을 높였다.


"그대가 무슨 재주로 저들에게 욕을 보이지 않게 궁술대회를 열 수 있단 말인가? 한 달도 채 안 남은 기일 동안 왕궁을 짓기라도 할 것인가?"

묵거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곳 오녀산성에 지금부터 왕궁을 지을 것입니다."

부분노가 소매에서 둘둘만 천을 꺼내어 놓았다. 거기에는 비류국에서 본 왕궁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와 같은 모양으로 규모는 더 웅장하게 지을 것입니다."

묵거의 말에 월군녀는 깔깔 웃다가 묵거를 매섭게 다그쳤다.

"네가 주군을 희롱하는 거냐? 이런 왕궁을 어떻게 그 짧은 기일에 세운단 말이냐! 그리고 저들이 군사를 동원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묵거는 여유 있게 웃으며 왕궁문제 만큼은 문제없을 것이라 대답했다. 주몽은 왕궁 공사를 묵거에게 맡겨 월군녀의 심사를 더욱 틀어지게 만들었다.

다음날부터 묵거의 이상한 왕궁 짓기가 시작되었다. 톱질이나 대패질은커녕 굵은 잡목으로 얼기설기 엮은 구조물을 크게 세우더니 여러 치장을 하기 시작했다. 월군녀가 이 모습을 보고서는 주몽에게 달려갔다.

"저것을 보시옵소서. 묵거란 자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옵니까?"

한번 일을 맡기면 밑의 사람에게 간여하지 않은 주몽이었지만 이 것만은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묵거를 불렀다.

"경이 지금 하고 있는 공사는 어찌 된 것이오?"

"저건 비류국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보여주기 위함이라? 가까이서 보면 다 알 터인데."

묵거는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저들은 가까이 가지 못할 것입니다. 송양이 어찌 우리 땅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저 비류수가에서 우리의 왕궁을 보며 탄성만 지를 것입니다."

주몽은 의아해 하며 묵거에게 그래도 비류국에서 사람을 시켜 들어갈 수 있지 않느냐며 재차 물어보았다.

"하늘에 제의를 드리는 중이라고 하며 길에 병사들을 세워놓으면 그만입니다. 오녀산성까지 가는 길은 함부로 숨어들 수도 없지 않습니까."

이런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 어느덧 비류국과 약속한 궁술대회 기한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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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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