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36

등록 2003.03.13 17:55수정 2003.03.1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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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양의 옆에서 신하가 대독한 국서의 내용은 전반부의 긴 인사를 빼면 다음과 같았다.

'고구려의 왕이 비류국의 왕에게 알리노라 그대와 두터운 친분을 쌓기 위해 모월 모일 궁술 대회를 말머리를 나란히 한 채 비류수가에서 열고 싶다.'


송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으며 묵거에게 깔보듯 말했다.

"내가 듣기론 너희 고구려에는 제대로 된 왕궁조차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무슨 왕을 칭하는 건 무엇이며 비류국과 대등한 관계를 원하는 건 또 무엇이냐!"

묵거가 정색을 하고선 대답했다.

"무슨 얘기십니까? 우리 고구려에는 예부터 내려오던 왕궁을 쓰고 있습니다. 비류국에서 보낸 사신들이 뭔가 잘못 알고 전한 것이 아니옵니까?"

송양은 사신으로 온 자가 자신의 왕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 여기고선 그 의기만은 높게 사고 있었다. 묵거의 옆에 있는 부분노와 협부만 해도 보통인물은 아닌 듯 했다.


'저런 자들을 수하에 두고 있다면 만만한 인물은 아니겠군!'

송양은 손짓을 하며 이만 물러가 보라고 말한 후 신하들과 향후 일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어찌하는 것이 좋겠소?"

해위가 앞으로 나서 말했다.

"저들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모르겠사옵니다만 폐하께서 친히 납시어 그들과 상대한다면 하찮은 것들과 상대한다고 여겨 세상이 우리 비류국을 우습게 볼 것입니다. 저들을 그냥 내치시옵소서."

부위염의 의견은 달랐다.

"비류수를 옆에 끼고 마주보고 있는 나라끼리 오해를 씻고 우호를 돈독히 하는 게 나쁠 것은 없습니다. 명분보다는 실리가 중요합니다."

결국 비류국이 고구려에게 어떤 답을 주느냐의 문제는 차일피일 미뤄지게 되었고 묵거와 부분노, 협부는 계획했던 일을 진행시키기에 넉넉한 시일을 벌고 있었다. 그들은 묵고 있는 곳에서 날마다 잔치를 벌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계속 그래왔듯이 고구려의 국력을 과장시켜 말했다.

"곧 비류국의 왕과 고구려의 왕이 만나 궁술대회를 연다오. 양국의 모든 백성이 참관하는 기막힌 잔치가 열릴 것이오."

아직 결정조차 되지 않은 사실을 두고 묵거는 소문을 크게 퍼트렸고 그 동안 부분노는 협부와 더불어 비류국의 이곳 저곳을 탐방하며 국력을 가늠해 보고 있었다. 부분노가 살펴본 바로는 여러 국가와 문물 교류를 해왔던 비류국인지라 상당히 안정된 체제가 확립되어 있었고 문화수준도 높았지만 한가지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자부심'이었다. 한(漢)나라에 비하면 자신들은 형편없는 국가고 말갈족에 비하면 무력의 수준이 형편없는 곳에 살고 있다는 패배감이 안정된 감각으로 국가를 이끄는 송양의 통치술에는 상관없이 비류국의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새 국가 고구려가 강한 이미지로 비류국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의식이라는 게 확립되어 있지 않은 당시 시점에서 보면 민심을 흩트릴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송양도 묵거의 이런 움직임과 백성들의 분위기를 뒤늦게 감지하고선 고구려 사신들의 목적을 알아차렸다.

"괘씸한 놈들이로고!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저들의 백성들에게 우리 비류국의 강성함을 보여주면 될 것이다. 고구려의 제의를 받아들인다고 전하고 기한은 한달 후로, 장소는 비류수가로 하겠다."

송양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서 왕궁조차 없는 고구려의 빈곤한 삶을 눈으로 보여주면 모든 게 진정될 것이라고 여겼다. 부위염이 걱정스런 투로 송양에게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청했다.

"저들이 하는 양을 봐서는 다른 속임수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부디 다시 생각해 보시옵소서."

송양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부위염의 말을 가로막았다.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속임수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난 고구려의 제의를 받아들여 민심을 수습하고 저들의 진면목을 만천하에 보여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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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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