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77

남곡과 북곡 (2)

등록 2003.03.17 13:08수정 2003.03.17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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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로 장비 익덕이다.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

너무도 흉흉한 기세에 겁이 난 문빙은 얼떨결에 말을 세웠다. 덕분에 조자룡 일행은 무사히 도주할 수 있었다.


한편 연이어 위(魏)의 장수들이 당도하였으나 감히 덤벼들 수 없었다. 다리 위에 서 있는 장비와 건너편 숲 속에서 일어나는 먼지를 보고 제갈공명의 계략인 줄 알고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하나 나서는 자가 없었다.

사전에 장비가 수하들로 하여금 말꼬리에 나뭇가지를 묶게 하고 달리게 하였다. 그렇게 하면 먼지가 일어 마치 많은 병사들이 매복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잠시 후 조조가 당도하자 장비가 다시 소리쳤다.

"크하하하! 나는 장비 익덕이다. 나와 겨뤄보고 싶은 자가 있으면 이름을 대고 앞으로 나와라! 즉각 목을 따주마!"

장비의 우레와 같은 목소리에 조조의 장수들은 저도 모르게 일제히 물러섰다. 그것은 조조라 하여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늘 도끼 문양이 그려진 양산을 썼는데 그것을 숨긴 것이다.

전에 관우로부터 동생인 장비는 백만대군에게 포위 당해도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듯 적장의 목을 칠 능력을 지닌 용맹한 장수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겁을 먹었던 것이다.


잠시 후, 또 다시 덤벼보라는 장비의 호통이 터지자 조조의 곁에 있던 하후걸은 너무도 놀라 말에서 떨어졌다. 이 순간 조조는 저도 모르게 말머리를 돌렸다. 이에 병사들이 일제히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장판교 전투이다.

장비는 꾀를 내어 없는 지형을 만들었던 것이다. 제갈공명이라는 걸출한 병법가가 있었기에 생각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병법에 이르기를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패(百戰不敗)라 하였다. 아부가문의 제자들은 미리굴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할 것이다. 그들의 근거지가 그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은 아니다.

따라서 지형을 이용한다면 설사 아부가문의 무명소졸이라 할지라도 무림천자성의 자랑인 정의수호대원들을 능히 격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부는 무림천자성의 개자식들은 미리굴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공포에 질리게 될 것이다. 자, 이제 안으로 들어가 놈들을 박살 낼 만반의 준비를 갖추자!"
"만세! 만세! 아부가문 만세! 문주 만세! 와와와!"

오사마의 내공 실린 사자후에 아부가문의 일만여 제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무림천자성의 부당함에 치를 떨던 자들이기에 그들의 눈에는 결연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정파의 탈을 쓰고 온갖 악행을 일삼는 무림천자성의 개들이라면 보이는 족족 모두 죽이고야 말리라는 결연함이었다. 이것은 청해성에 한바탕 피 바람이 불 전주곡이었다.

* * *

"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한 것이오?"
"물어보면 무엇하오? 보나마나 놈들이 그랬을 것이오!"

"이런 빌어먹을 놈들을…?"
"어휴…! 이것들을 정말…!"

몇몇 장한들이 비분강개한 모습으로 목청을 돋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분노의 빛이 가득하였다. 이곳은 강호의 몇몇 문파를 제외하고는 모르는 문파가 월등히 많은 그런 작은 방파인 선무곡(仙霧谷)이라는 곳이다.

곡주를 포함하여 총 수효는 오백여 명 정도 되는데 곡도들의 무공 수위는 강호의 삼류무사와 버금갈 정도로 형편없다.

사실 선무곡의 역사는 무척이나 오래 되었다고 한다. 처음 개파대전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주변의 문파들 모두가 한 수 접어 줄 정도로 막강한 문파였다. 하여 한때는 화존궁과 일월마교의 많은 영토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다른 문파들은 나날이 무공이 발전되었지만 유독 선무곡만은 제자리걸음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여 어떻게 보면 퇴보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선무곡 사람들은 무공을 익히기보다는 붕당을 만들어 서로 대립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중 대화재가 발생되었다.

당시 장문인을 비롯한 수뇌부 일동은 조사전 안에서 심각한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이때 순식간에 발생된 화재는 조사전 전체로 번지는데 불과 반각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선무곡은 사시사철 운무가 자욱한 곳이다. 따라서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 썩지 말라고 모든 목재에 콩기름을 먹여두었다. 그렇기에 손을 쓸 틈도 없이 불이 번진 것이다.

게다가 불을 끌 물을 구하려면 먼 곳에 위치한 우물까지 가야했기에 손쓰기가 더욱 힘들었던 것이다.

갑작스럽게 엄청난 화마가 번지자 밖에 있던 제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서 나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수뇌부들은 조사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별것도 아닌 일로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나뉘어 열띤 붕당(朋黨) 싸움을 하느라 빠져나올 시간을 놓쳤기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안에 있던 수뇌부 전원이 사망하였고, 동시에 모든 무공도 잃었다.

화마가 선무곡의 모든 무공비급을 모아 놓았던 장경고(藏經庫)까지 삼켰고, 무공을 전수해 줄 능력을 지닌 자들까지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남은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문파는 봉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무곡은 그러지 않았다. 제자들이 사문을 떠나지 않고 계속하여 계승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인삼 때문이었다.

인삼 중 최상품은 해동(海東) 땅에서 나는 고려인삼이다. 중원에서도 인삼을 채취할 수는 있으나 고려인삼의 약효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렇기에 고려인삼은 중원인삼에 비하여 거의 다섯 배나 되는 가격에 거래된다. 그런데 선무곡에서 고려인삼과 버금가는 약효를 지닌 인삼이 채취되었다. 따라서 선무곡 사람들은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다.

게다가 선무곡 사람들은 모두 한 핏줄이었다. 그렇기에 무공이 없어졌어도 여전히 문파를 이루고 살고 있는 것이다.

선무곡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무림의 문파 때문이다. 간담교토(肝膽狡 ) 고이주(高伊周)가 이끄는 왜문(倭門)이 바로 그것이다.

오래 전 선무곡 사람들은 바닷가에서 난파한 배를 발견하였다. 거기엔 오랜 풍랑에 지칠 대로 지친 왜문의 조상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무지몽매하기까지 하였다.

하여 선무곡에서는 양식을 나눠주었으며, 집까지 지어 주었다. 또한 문물을 전수했고, 무공까지 가르쳐 주었다. 인근에 산짐승들이 많았기에 호신하라 가르쳐준 것이다.

왜인들은 고맙다면서 매년 자신들이 지은 농산물 등을 바쳐왔다. 그러면서도 밤을 틈타 선무곡의 인삼을 훔쳐가곤 하였다. 그리고는 모르는 척 시침을 떼었다. 한 마디로 겉 다르고 속이 달랐던 것이다.

겉으로는 감사한 척 하면서도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화려한 문물을 지닌 선무곡의 모든 것을 차지할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선무곡의 대화재가 있은 이후 왜문은 태도를 바꾸었다. 그토록 많은 은혜를 입었다면 장례를 치를 때 조문이라도 왔어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소식을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자고로 머리 까만 짐승을 구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옛말이 그르지 않다는 것이 극명하게 증명되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한 동안은 소가 닭 보듯 하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왜문의 태도는 고압적으로 바뀌었다.

이때는 은밀히 다른 문파의 무공을 훔친 뒤 이를 연성하던 때였다. 그러다가 선무곡이 무공의 대부분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대대적인 침공을 하였다.

그리고는 수시로 드나들면서 인삼을 마구잡이로 뽑아갔다. 이를 막으려 하면 서슴지 않고 피를 보았다. 이에 선무곡 제자들은 힘을 합쳐 조직적으로 대항하였다.

너무도 극렬한 저항이었기에 당시엔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새로운 무공은 완전하게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오랜 세월동안 밤이면 몰래 들어와 인삼을 뽑아가곤 하였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인삼밭을 독차지 할 수 있을까를 고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힘을 키운 왜문은 또 다시 난입하였다.

이에 대항하던 많은 선무곡 제자들은 이를 막기 위하여 애를 썼지만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잔인한 왜문의 제자들은 선무곡 제자들을 무장해제 시켜갔다.

이에 대항하였지만 목숨만 잃었을 뿐이다. 과거의 왜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배웠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맹했던 것이다.

반면 선무곡 제자들은 유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긴 무공 익히기보다는 붕당(朋黨)을 만들어 놓고 서로 싸우기 바빴으니 무공을 익힐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왜문의 무리들이 선무곡 곡주 부인을 죽인 뒤 시간(屍姦)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는 선무곡과 왜문이 합병되었다고 만천하에 공포해버렸다.

암암리에 막강한 힘을 키운 왜문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일월마교와 화존궁까지 공격하였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무림천자성에게까지 싸움을 걸기도 하였다.

처음엔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느냐는 듯 팔짱을 낀 채 느긋해 하던 화존궁과 일월마교는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문의 공세가 너무도 막강하였기 때문이다. 하여 연신 후퇴하기에 급급했다.

그것은 무림천자성도 마찬가지였다. 왜문을 우습게 알고 반격을 시작한 무림천자성은 방심하던 사이에 제법 성세가 컸던 낙양 무천장이 박살나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왜문의 느닷없는 공세에 낙양 무천장은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완전히 멸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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