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남곡과 북곡
"모두 들어라! 양의 탈을 쓴 늑대만도 못한 무림천자성의 개자식들이 우리를 노리고 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겁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미리굴(迷理窟)로 들어가 결사항전을 준비할 것이다. 겁이 나는 자는 지금 떠나도 좋다. 말리지 않겠다. 아니라면 힘을 모아 놈들을 박살내자!"
"와와와! 만세! 만세! 아부가문 만세! 문주 만세! 와와!"
"무림천자성의 개자식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
"옳소! 그놈들 모두 죽어 마땅한 자들이오."
"만세! 아부가문 만세! 문주 만세! 만세! 와와와와!"
어림짐작으로 보아도 족히 일만은 되어 봄직한 군중들이 일제히 쌍수를 들어 환호하였다. 그들의 얼굴은 자신들의 옳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누대에 올라서 양팔을 치켜들고 있는 인물은 무림천자성의 일이라면 치를 떠는 것으로 유명한 아부가문(衙斧架門)의 문주 금금존자(錦衾尊子) 오사마(吳獅瑪)였다.
그의 얼굴에는 결연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무림천자성은 물론 중원정파에서 파견한 토벌대가 진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아부가문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청해성(靑海省)의 한 협곡이었다. 대륙 한복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 해(海)자가 들어 있는 이유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들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청해성에는 많은 산들도 있는데 파안객랍산(巴顔喀拉山)이 특히 유명하였다. 입구만 수백여 개에 달하는 미리굴이 있기 때문이다.
미리굴은 한번 발을 잘못 들여놓으면 빠져나올 수 없다. 어디가 어딘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미리굴을 찾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사실 아부가문은 결코 큰 문파라 할 수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자들이라곤 불과 오백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세(勢)가 불었다.
일년쯤 전에 무림천자성 총단에 있던 쌍둥이 구 층 누각인 세무각(世貿閣)이 대 폭발을 일으켰다는 것을 모르는 무림인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때 죽은 인원만 삼백이 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워낙 엄청난 폭발이었기 때문이다.
사건 직후 무림천자성에서는 이것이 아부가문의 소행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하지만 즉각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다. 심증은 있으되 물증이 부족하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대외적인 명분 쌓기에 들어간 무림천자성은 암암리에 첩보를 수집하였다. 물론 그동안 원한에 사무쳐 칼을 갈았을 것이다.
천하 무림의 패권을 쥐고있는 무림천자성은 자신들을 상대로 도발하는 것을 좌시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대규모 응징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치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여 혹시 자신들에게 잘못된 불똥이 날아들까 싶었던 마도와 사도문파들은 잔뜩 움츠렸다.
덕분에 지난 일 년간 강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철룡화존은 구 층 누각을 폭파한 범인의 배후에 아부가문의 오사마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이미 일년 전부터 예상했던 결과지만 즉각 여기저기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부분 정파무림인들의 목소리였지만 일부는 마도나 사도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자칫 아부가문과 한통속으로 지목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자칫 멸문지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취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단독으로 상대하기엔 무림천자성이 워낙 강맹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한편 세무각이 폭파된 이후 무림천자성에 반감을 품었던 자들은 은밀히 아부가문에 투신하기를 희망하였다. 덕분에 갑작스럽게 제자들의 수효가 늘어나자 아부가문으로서는 좋기는 하지만 내심 고심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사마가 제아무리 많은 부를 축적하고는 있다 하지만 일만여 명이 넘는 제자들과 그 식솔들까지 먹여 살리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무림천자성에 반감을 품고 있는 다른 문파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구룡마문(九龍魔門) 문주인 신궁(神宮) 가다피(可多 )와 월빙보(月氷堡) 보주 흑염수사(黑髥秀士) 후세인(侯世印) 등 많은 마도문파들이 아부가문의 용기를 높이산다면서 적지 않은 재물과 양곡을 보내주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철저한 비밀이었다. 혹시라도 이러한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진다면 무림천자성의 잔인한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능히 짐작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무림천자성의 요구에 정파무림에서는 제자들을 파견하거나 군자금을 냈다. 같은 마도이지만 길을 안내하거나 제자들을 파견한 문파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강호 유일의 초강파인 무림천자성과 반목할 의사가 없다고 천명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마도무림이 술렁이고 있었다.
현재 무림천자성 소속 정의수호대원들과 많은 무림인들은 중원을 가로질러 청해성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물론 아부가문을 지상에서 말살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정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자칫 아무런 연관도 없는 무고한 양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안객랍산은 높이가 일천 오백여 장에 달하는 거산(巨山)이다.
산세가 험하기로는 청해성 제일이다. 여기에 미리굴까지 있다. 산세와 동굴을 이용하여 저항한다면 백만대군을 보낸다 하더라도 완전한 소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미리굴이 얼마나 길고 깊은지를 아는 사람은 없다. 혹자는 백만대군을 밀어 넣어도 반도 못 채울 것이라 할 정도였다.
또 다른 자는 미리굴의 끝이 수천 리나 떨어진 중원 한복판까지 이어졌다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는 없으니 정벌에 나선 정의수호대원들의 얼굴에는 비장함과 아울러 초조함이 공존하였다. 비장함은 비명횡사한 동료들을 위한 복수심 때문이었고, 초조함은 소문으로만 듣던 험한 산세와 미리굴 때문이었다.
병법에서 말하길 지형을 이용하면 적은 군사로도 능히 대군을 물리칠 수 있다 하였다. 많은 예가 있을 수 있으나 삼국시대 때 장비(張飛)가 조조(曹操)의 대군을 막았던 장판교(長坂橋)전투는 지형을 이용한 최고의 위병술(僞兵術)이라 할 수 있다.
유비가 한수(漢水) 북쪽 기슭에 있는 번성을 수비하고 있을 때 형주(荊州)에서는 목(牧)의 자리에 있던 유표가 죽고 그 뒤를 유종이 이은 상태였다.
유종은 조조의 공격에 넋이 빠져 제대로 반격조차 못해보고 항복해 버렸다. 유비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조조군이 남양군의 완(宛)까지 쳐들어왔을 때였다.
유비 일행은 백만대군인 조조군과 상대하기엔 역부족임을 깨닫고 남쪽으로 도피행을 시작하였다. 한수를 건너 양양에 다다랐을 즈음 유종의 부하들을 비롯하여 형주 백성들이 유비 일행에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하여 양양에 도착했을 때에는 피난민의 수효가 무려 십만에 달했고, 가재도구를 실은 마차도 수천 대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하루에 고작 십여 리 밖에 전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유비는 막신(幕臣)인 관우(關羽)에게 수백 척의 배를 모으게 하여 피난민들을 태우고 먼저 강릉으로 향하게 하였다. 이때 유비의 부하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대장군께서 먼저 가셔서 강릉을 지켜야 함이 마땅합니다. 이 많은 난민들을 데리고 싸우기엔 전투인원이 너무 부족하므로 조조군이 당도하면 막을 도리가 없습니다."
이에 유비는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모든 일의 근본은 백성이다. 나를 따르는 자들을 어찌 버리고 간단 말인가! 더 이상 이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한편 조조는 군사적 요충지인 강릉 지역에 풍부한 군비가 비축되어 있어서 유비가 그곳으로 도주하면 웬만한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한시라도 빨리 뒤쫓아가기 위하여 짐이 되는 병참대(뒤에서 인마(人馬)나 군수품의 보충, 운반 따위를 맡은 부대)를 떼어놓고 전투요원만을 이끌고 양양으로 향했다.
양양에 도착한 조조는 유비가 이미 통과했다는 것을 알고는 서둘러 오천여 기병(騎兵)을 이끌고 맹렬히 추격하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무려 삼백 리 이상을 계속 달려가 결국 장판파에 이르러 유비 일행을 따라잡는데 성공하였다.
이때 유비군의 후위부대를 맡았던 장수가 바로 장비였다. 당시 그에게는 불과 이십여 명의 수하가 있을 뿐이었다.
조조의 대군이 오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장비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장판교를 막고 서 있었다. 냇물을 방패삼아 이용한 것이다.
한편 뒤쳐져 있던 유비의 부인인 감부인과 유선을 구출한 조자룡은 혼신을 다하여 말을 달렸다. 뒤에 문빙을 비롯한 조조의 기병들이 맹렬한 추격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운 일행이 통과하자 장비는 추격하던 문빙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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