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류국을 고구려왕에게 바치겠네."
부위염과 해위는 동시에 펄쩍 뛰었다.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옵니까!"
"백성들을 보게 그들의 몸은 비류국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고구려의 왕 주몽에게 있네. 힘으로든, 지략으로든, 민심을 얻는 것으로든 우린 고구려를 이길 수 없다. 이대로 억지로 눌러 앉아 있다가 뜻하지 않는 치욕을 당하느니 나라를 들어 바친다면 명분이라도 서질 않겠나."
해위가 엎드려 울면서 고했다.
"무슨 소리시옵니까. 이번 수해는 일시적인 것이며 어리석은 백성들의 민심이란 마치 달이 모습을 바꿔가듯 금방 변하는 법입니다."
송양은 일어나서 한참동안 천장을 쳐다보았다.
"부위염, 경의 생각은 어떻소? 솔직히 얘기하시오."
부위염은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다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습니다."
마침내 송양은 신하들과 함께 왕성을 나가 주몽을 만날 것을 청하고선 나라를 들어 바쳤다. 송양은 주몽 앞에 엎드려 공손하게 한가지 청을 했다.
"바라옵건대 신은 조용히 물러가 궁벽한 곳에서 농사나 짓고 살았으면 여한이 없겠습니다."
주몽은 송양의 잡아 일으키며 오히려 간곡히 말했다.
"바라건대 송양후(侯)께서는 계속 그곳을 다스려 줬으면 하는 바램이오. 비류국은 옛 조선의 땅이었으니 그곳을 다물(多勿)이라 명하고 다물후로 봉하겠소."
송양은 감읍하여 주몽에게 두번 세번 감사함을 표했다.
꺾여버린 야망
고구려가 비류국을 통합했다는 소식에 절로 그 세력 안으로 들어오기를 희망하는 부류가 늘어갔다. 특히 일찍이 주몽에게 패한 바 있는 말갈족장 통이안이 굴복해온 것은 적지 않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통이안은 바로 왕비인 월군녀의 아버지인 연타발을 죽인 원수였기 때문이었다.
"당장 이자의 목을 베어 아버님의 영전에 바쳐야 합니다!"
주몽 앞에 엎드린 통이안을 보고선 월군녀가 울며 간곡히 청했다. 이번에도 묵거가 월군녀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왕비마마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절로 굴복해 들어온 자의 목을 베는 것은 우리 고구려의 위신을 스스로 깎는 일이옵니다. 큰 뜻을 생각하시옵소서."
월군녀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칼을 집어들고선 직접 통이안을 찌르려 했다. 아무도 이를 말리지 못하고 크게 놀라 지켜만 보고 있는 사이 주몽이 달려 내려와 월군녀의 칼을 빼앗았다.
"이 무슨 짓이란 말이오! 부디 진정하시오."
월군녀는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주몽은 놀란 통이안을 좋은 말로 위로해 보낸 다음 월군녀를 위로하기 위해 연타발의 사당을 크게 지어 제사를 지냈다. 그럼에도 월군녀의 심기는 불편하기만 했다.
'묵거 이자가 왕의 곁에서 사사건건 내 말을 가로막으니 억장이 무너지는구나. 저자를 반드시 떼어놓으리라.'
월군녀뿐만 아니라 소노부의 원로들도 이 일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긴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묵거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신흥국가 고구려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져 부여의 금와왕과 대소왕자, 한나라 요동태수 채진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들은 고구려의 등장으로 인한 주변세력 변화에 일말의 긴장과 두려움을 느꼈지만 설마 하는 심정으로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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