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44

등록 2003.03.21 18:04수정 2003.03.2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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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비가 이렇게 온단 말인가!"

비가 내린지 이틀만에 비류수의 하류에 자리잡은 비류국은 거의 물에 잠기다 시피하고 있었다. 백성들은 물꼬를 트는 일을 중단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넘치는 물로 제방이 무너질 지경에 이르러 백성들이 왕성으로 대피했고 급기야 무너진 제방으로 인해 모든 가옥이 물에 잠겼다. 어느덧 묵거의 고정 첩자가 저지른 짓인지 누군가의 넋두리에서 비롯되었지는 몰라도 푸념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주군이 천손(天孫)인 고구려의 왕 주몽에게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전쟁을 준비하니 하늘이 벌을 내리시는 것 같다."

송양의 귀에까지 이런 소문이 미쳤지만 송양은 화를 내기에 앞서 민심을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급히 제단을 쌓은 뒤 송양은 그 위로 올라가 하염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맞으며 용서를 빌고 또 빌었다.

"하늘이시여! 이 미천하고 미련한 비류국의 왕 송양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죄 없는 백성들을 굽어 살피시오서!"

그럼에도 빗줄기는 가끔씩 가늘어질 뿐 쉽게 그치질 않았다. 6일째 되는 날에는 왕성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고 송양의 침전에까지 물이 차 올랐다. 그리고선 기도를 들어주었음인지, 때가 되었음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밝은 햇살을 내보이며 비는 그쳤다.

가뭄 끝은 있어도 큰물 끝은 없다고 했던가. 모든 것이 깨끗하게 쓸려나간 집터와 논밭을 보며 비류국의 백성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게 중에는 급류에 휩쓸려간 가족들을 애타게 부르며 통곡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송양은 급히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물에 잠기는 바람에 태반이 썩어있었다. 송양은 신하들과 더불어 밤잠을 설쳐가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민심을 달래었으나 당장 굶어죽을 지도 모르는 그들의 눈에 왕이 나타났다고 해서 별반 나아지는 건 없었다.


"아뢰옵니다! 고구려에서 병사들이 오고 있습니다!"

전령이 전해온 급한 소식에 송양은 아연질색해 할말을 잊고 말았다. 군대동원은커녕 왕성마저 무너진 이때 비류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고구려왕의 발 밑에 엎드려 비는 것뿐이었다.


"아뢰옵니다! 고구려군이 왕성 아래 이르렀습니다!"

송양은 어쩔 줄 몰라하는 신하들을 이끌고 나섰다. 송양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짐을 실은 수레들을 이끌고 온 부분노와 협부였다.

"전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우리 폐하께서 이번 비로 인해 비류국의 피해가 크다는 말씀을 듣고 약소하오나 구휼미와 옷감 등을 마련하라 일러 여기 싣고 왔사오이다."

송양은 감복해 눈물을 흘리며 부분노의 손을 잡았다.

"고마운 일이네. 고마운 일이야......"

고구려에서 온 구휼물자를 나눠 받은 백성들은 너도나도 고구려왕의 덕을 칭송하기 바빴다. 사실 부분노가 이렇게 비류국까지 구휼물자를 싣고 온 것도 묵거가 주몽에게 이른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것을 주고 큰 것을 얻으시옵소서. 지금이 큰 기회가 될 것입니다."

월군녀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이때를 틈타 병사 백여명만 보내면 될 일을 가지고 국고에 있는 것을 퍼다 줘서 뭣하자는 것이냐? 네가 정녕 이 나라의 신하냐 아니면 비류국의 첩자란 말이냐!"

심하다 싶은 월군녀의 말에도 묵거는 수염을 비비꼬았다가 놓을 뿐 별반 동요됨이 없었다. 이번에는 재사마저 나서 묵거를 지지하고 나섰다.

"어서 결단을 내리시옵소서. 덕으로 천하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주몽은 늘 그랬듯이 또 다시 묵거의 뜻을 따라 월군녀의 화를 돋우었다. 고구려의 왕을 칭송하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송양은 부위염과 해위를 불렀다.

"고구려왕의 큰그릇을 보고 내 한가지 결심한 바 있네."

"무엇이옵니까?"

송양은 결의에 가득 찬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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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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