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정과 호옥접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것은 얼마 전에 반광노조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둘은 천뢰도로 갈 선원을 구하려 포구에서 동분서주할 때였다.
이때 만났던 선원들은 모두 한결같았다. 억만금을 준다 하더라도 절대 천뢰도로 행하는 배에는 승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배가 있다 하더라도 조타술과 항해술을 모르는 이상 그것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일엽편주를 타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천뢰도는커녕 상해 앞 바다로 못 벗어나고 빠져죽기 십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선원을 구해야 하는데 구할 수 없어 실망하던 터였다.
반광노조는 다 썩어 가는 자신의 배 근처를 지나던 둘에게 불호령을 내렸다. 둘이 자신의 배를 훔쳐가려 했다는 것이다.
그냥 지나가던 중인데 불호령을 내리자 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대꾸 없이 갈 길을 갔다.
그러자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면서 길길이 날뛰며 달려들었다. 아무리 경우가 없다하더라도 노인을 팰 수는 없는 법이다. 하여 둘은 어이없다는 표정만 지을 수 있을 뿐이었다.
강호에서는 어린아이와 노인, 그리고 계집들과는 절대 다투지 말라는 말이 있다. 반드시 귀찮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지 절대 두려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나직이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젠장! 일도 안 되는데 별 미친 늙은이를 다 보았네."
"뭐? 네 이놈? 방금 뭐라 하였더냐? 미친 늙은이?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네, 이노옴! 당장 그 자리에 멈추지 못할까? 네놈을 잡아 다리몽둥이를 댕강 분질러 버리고야 말겠다."
그렇지 않아도 선원을 구할 수 없어 애가 타던 장일정은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너무하다 싶은 기분이었다.
하여 다소 성난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였다.
"싸가지? 다리몽둥이? 우리가 뭘 잘못 했다고? 에이, 정말…! 미친 늙은이만 아니었으면… 에이, 관두자. 관둬! 에이! 퉤에…!"
비호의 등에 올라타며 침을 뱉은 장일정은 더 이상 볼일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박차를 가하였다. 그러자 비호는 날 듯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제아무리 근력 좋은 반광노조라고는 하지만 천리준구인 대완구를 따라갈 수는 없는 법이다. 잠시 후 그는 멀어져 가는 장일정을 보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언제든 눈에 뜨이기만 하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버린다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 장일정과 호옥접은 큰마음을 먹고 이곳에 왔다. 천뢰도를 가려면 반광노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조언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상해는 물론 중원천지에서 천뢰도에 배를 댈 수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그가 유일하다 하였다.
그만이 천뢰도 주변의 와류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신의 경지에 다다른 조타술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천뢰도를 가지 않으려 한다면 모를까 가야한다면 반드시 그가 모는 배에 승선하여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하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 만난 사람은 반광노조와 친구라는 노인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반광노조의 기억력은 형편없었다. 그러니 며칠 전의 일은 모르는 척하면 그냥 넘어가게 될 것이라 하였다.
아주 오래 전 반광노조의 아들인 형윤회(螢允會)는 부친을 따라 바다에 나갔다가 조난을 당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던 때였다.
이날 그는 격랑에 휩쓸렸고 실종되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반광노조는 미친 듯이 노를 저으며 폭풍우 속을 헤집고 다녔다.
보름만에 퉁퉁 불어버린 자식의 시신은 안은 반광노조는 대성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반쯤 미친 듯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희대의 건망증 또한 생겨났다고 한다.
손에 들고 있는 노를 찾겠다면서 사흘동안이나 돌아다녔다고도 한다. 마지막 남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고는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주청을 나가려다 제지당한 것도 수백 번이었다. 그때마다 은자를 내라는 점소이를 쥐어박으며 하는 말은 한결 같았다.
"임마! 노부가 언제 술을 마셨다고 그래? 임마, 난 술 구경해 본지가 언제인지도 몰라. 짜식이 감히 누구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그래? 너, 한번 맞아 보고 싶어?"
어떤 날에는 완전히 대취한 상태에서 수십 년 전에 죽어버린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그를 찾아다닌다고 한다.
"윤회야! 이 빌어먹을 놈아! 어이, 취한다. 야, 임마! 아비 좀 부축해라. 어라? 이 자식이 대체 어딜 간 게지? 윤회야, 윤회야! 이 빌어먹을 놈아. 어서 빨리 안 와? 혹시…! 이놈이 귀찮다고 내뺀 건 아니야? 이놈을 그냥 확…! 눈에 뜨이기만 해봐라. 다리몽둥이를 확 뿐질러 놔야지."
이러는 가운데 잊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낡디 낡은 낚시대와 썩어 가는 배뿐이었다. 자신 이외에는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감히 가까이 다가설 수 없도록 늘 그것들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렇기에 장일정과 호옥접이 자신의 배 가까이를 지나가자 소리치며 튀어나온 것이다.
"말해라! 어떤 놈이 이 배에 임자가 없다고 하였느냐?"
"캑캑! 이, 이것 좀 봐주세요. 캑캑! 어, 어서요."
"흥! 어림도 없는 수작. 어느 놈이 이 배에 주인이 없다는 헛소문을 퍼트렸는지를 대기 전에는 절대 놔줄 수 없다."
대롱대롱 매달린 장일정은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일부러 허둥대는 표정을 지었다. 이 모든 것은 반광노조의 친구라는 사람이 일러준 것이다. 이렇게 하여 화를 돋구면 앞뒤 가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던 것이다.
"어서 말하지 못할까? 대체 어떤 놈이 이 배에 임자가 없다고 하였느냐? 내 그놈을 잡아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리고야 말겠다."
"캑캑! 영감님, 이걸 놔 주셔야 말을 하지요. 캑캑!"
"그래요. 어서 가가를 놓아주세요.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왜 붙잡고 야단이에요? 어서 놓지 못해요?"
허리에 손을 얹은 호옥접은 대들 듯이 반광노조에게 다가섰다.
"이런 싸가지 없는 것들이… 어디에서 감히 노부에게…? 계집이라고 봐줄 줄 알았다면 오산이지. 에잇!"
"아악! 놔, 놔주세요. 캑캑! 어서 놓으란 말이에요. 캑캑!"
"흥! 잘 걸렸다. 네놈들이 감히 내 배를 훔쳐가려고 짠 모양인데… 어라! 이제 보니 네놈들은 며칠 전에 그…! 오냐, 잘 걸렸다. 나이도 어린것들이 감히 노부에게 욕을 했겠다? 오늘 네놈들의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려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해 주지."
먼저 붙잡혀 있던 장일정은 갑작스럽게 숨이 턱 막혀왔다. 목덜미를 쥐고 있는 손아귀에 엄청난 힘이 가해진 듯 목이 졸렸기 때문이었다. 과연 소문대로 백 세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엄청난 근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장일정과 호옥접은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하였다.
"아아악! 사,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캑캑! 사, 사람 살려요!"
"컥컥! 사람 살려! 살려 주세요. 컥컥! 사람 살려요!"
숨쉬는 것조차 힘든 듯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른 둘이 소리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이곳에 오기전 장일정은 상해 무천장에 들러 도움을 요청하였다. 황도 무천장주가 써준 서찰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영화객잔의 장방이 동행하였기에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상해 무천장주가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반광노조로 하여금 천뢰도로 향하게 할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은자도 소용없고, 사내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계집 또한 소용이 없는 사람이라 하였다.
그리고 누가 가자고 해서 어딜 가는 사람 또한 아니었다. 소를 끌고 물가로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물가까지 끌고 가는 것 자체도 어려웠다.
상해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대한 시진이다. 따라서 포구는 늘 북적였다. 그런 곳에서 아무런 죄도 없는 반광노조를 무작정 잡아 올 수는 없다.
무림천자성이 만천하에 깔아 놓은 세포조직이라 할 수 있는 무천장은 정의를 수호하고 무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잡아다 가고 싶지 않다는데 억지로 가게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신분을 감춘 채 야간에 납치하여 협박하는 방법까지 생각해 보았었다. 하지만 그것도 포기해야 하였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혹시라도 누군가에 발각되면 안 될 것이기에 포기한 것이다.
제아무리 황도 무천장주의 서찰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무림천자성의 기본 방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 안 되었다. 그랬다가 무림천자성의 명성에 먹칠이라도 하는 날이면 무천장 장주 직을 내놓아야 하였다. 그렇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여 여러 방법을 모색하던 중 한가지 꾀를 냈다.
반광노조가 스스로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만일 그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장일정과 호옥접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명백한 죄가 된다. 그렇게 되면 강호 정의를 실현하는 차원에서 정의수호대원이 이를 제지하거나 응징할 수 있다.
이후에 처벌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장일정을 천뢰도에 태워다 주는 조건으로 사면 받을 것인가를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경우 백이면 백 모두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다. 하여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수립한 후 포구로 나갔던 것이다.
반광노조의 허락 없이 그의 배에 올라타면 미친 듯이 날뛸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장일정과 호옥접이 반광노조와 실강이를 벌이게 될 것이다.
이러면 보나마나 많은 구경꾼들이 꼬일 것이다.
이때 순찰하다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위장한 정의수호대원들이 반광노조를 생포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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