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46

등록 2003.03.24 17:40수정 2003.03.24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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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漢)나라의 요동태수는 낙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 인만큼 다른 곳보다는 상당한 군사적 자치권을 부여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요동태수인 채진이 자체적으로 군대를 동원한 적은 없었고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인접한 부여와는 우호적인 관계였고 주위의 소국(小國)들은 알아서 요동태수에게 머리를 조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고구려란 신흥국가의 등장은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병사를 동원해 무력시위를 할 수도 없는 것이 한나라의 주변부가 어수선하다는 것이었다. 흉노족의 위협은 실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 한나라는 각종 공물과 미녀를 바쳐가며 그들을 달랠 정도였다. 이런 판국에 태수인 자신이 함부로 요동을 비운다는 것은 당장 낙양으로 소환되어 치도곤을 당할 일이었다. 일단 채진은 고구려에 대한 보고를 올렸지만 낙양에서는 별다른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태수님 평곽현령 진속이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들라 이르라."

이와 같은 때에 진속이 자신의 임지를 비우고 온 것에 채진은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혼을 내주리라.'

진속은 공손히 인사한 후 채진에게 자신이 찾아온 일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태수님! 고구려를 치러 가겠사오니 병사를 내 주십시오!"

채진은 뜻밖의 말에 당혹해했다.


"고구려는 먼 곳에 있는 나라요. 더구나 나 혼자 독단적으로 병사를 움직이기보다는 유주자사나 현도태수와 함께 병사들을 조직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조정의 허락이 필요하오."

진속은 채진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먼 곳의 장수가 어찌 조정의 허락을 기다린단 말입니까? 예전에 비류수가에 있던 비류국은 알아서 이곳에 공물을 바치며 우리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란 나라는 이를 이으면서 공물은커녕 인사조차 오질 않으니 그 오만함이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빨리 수를 쓰지 않으면 저들이 굳건히 자리잡아 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진속은 일개 현령이었지만 야심만만한 인물이었고 신중하다 못해 겁이 많아 보이는 채진을 속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채진은 거듭 거부하며 오히려 임무를 게을리 하면서 엉뚱한 곳에 신경을 쓴다며 진속을 꾸짖었다. 진속은 크게 웃으며 채진 앞에서 떠났다.

'저런 소인이 요동태수라니! 참 한심하군!'

진속은 평곽현으로 돌아와 자신이 직접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점고 해보기 시작했다. 약 2천명 가량을 동원할 수 있었고 고구려를 국력을 폄하하고 있던 진속으로서는 충분한 병력으로 보였다. 하지만 군위 장막의 지적에 진속은 출전을 다시 한번 검토하게 되었다.

"지금 편성을 보면 기병이 거의 없이 보병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게다가 군량마저 넉넉하지 않으니 출전을 하기에는 무립니다."

군량이야 자신의 인맥으로 인근 현에서 꾸어다가 조달하면 되지만 기병은 어쩔 수가 없이 태수의 지원을 받아야했다. 쓸만한 기병전력은 흉노족과 대치하기 위해 징발되어간 탓이었다. 며칠을 전전긍긍하던 진속은 다시 장막을 불러 서찰 한 통과 함께 각종 금은보화를 맡기며 일렀다.

"너는 부여로 가서 이러저러하게 사정을 얘기한 후 기병을 빌려 오라."

진속이 맡긴 서찰에는 위조된 천자의 밀봉인이 찍혀 있었다.

"현령님! 이런 행위를 하다가 들키는 날에는 국법에 따라 사형을 당합니다!"

진속은 배짱 좋게 웃으며 별 탈은 없을 거라며 장막을 구슬렸다. 진속은 자신의 야망을 이룰 때가 왔다고 느끼고 있는 터였기에 사소한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고구려를 병탄하고 그곳에 웅거해 내 뜻을 이루리라!'

한나라는 전성기인 무제(武帝)이후 내부적 모순이 심화되어 가고 있었고 이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었다. 진속은 그런 부류의 한 사람으로서 한나라의 정치상황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진속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고구려는 새로운 통치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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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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