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49

등록 2003.03.27 17:50수정 2003.03.27 18:49
0
원고료로 응원
대소는 흑수말갈이 합류해서 공격해 들어간다고 해도 고구려가 반드시 흔들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주몽을 견제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오녀산성에서 관제를 정비한 주몽은 재사, 오이와 함께 기초공사를 끝냈다는 왕궁터로 향하고 있었다. 주몽의 이번 행차는 공식적인 것이 아닌 만큼 비교적 조용히 진행되었다. 골령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오녀산성에 못지 않게 방비에 좋았지만 그보다는 고구려의 주변부와 통행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어 새로운 수도로 정해지게 되었다. 골령의 왕성, 왕궁 건축은 본격적으로 농한기가 시작되는 판이라 더 이상 진행되지는 않고 있었다.


"골령땅은 처음이니 만큼 천천히 둘러보고 싶네."

주몽은 골령의 남쪽을 순시하면서 그곳의 땅 빛이 붉은 색을 띄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 땅의 색깔이 어찌 이런데다가 거칠기까지 한가? 이래선 농사를 짓기에 좋지 않군."

오이가 말에서 내려 흙을 살펴보더니 주몽에게 일렀다.

"꼭 그렇게 생각하실 것은 없사옵니다. 상세히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아마도 이 땅은 풍부한 철이 있을 듯 합니다."


"철이라!"

고대사회에 있어 철의 의미는 매우 컸다. 청동을 이용하던 시기에도 농기구는 돌로 제작되었을 정도로 단단한 재료를 찾지 못하던 인류가 제련기술이 발전되어가면서 철을 이용할 수 있게 되자 생산력이 향상되었고 무기 제조에 있어서도 좀 더 효과적인 살상효과를 낼 수 있었다. 효과적인 철의 생산은 바로 국력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이것 보시옵소서! 이 바위는 분명 철로 된 것이옵니다!"

재사가 가리킨 바위덩어리에는 잘 살펴보면 이끼도 있지만 분명 녹이 끼어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즉, 이 일대는 일종의 노천광인 셈이었다. 새로운 수도 일대에 이런 철 광맥이 존재한다는 것은 엄청난 보물을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거야말로 하늘의 선물이 아닌가!"

좋은 일이 있을수록 어떠한 의식으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묵거가 주몽에게 충고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주몽은 우선 사람들과 모아 성대하게 제사를 지내 하늘에 감사함을 표한 다음 사람들을 시켜 철광석들을 수레로 운반해 오녀산성으로 가져가게끔 했다. 얼마만큼 질 좋은 철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제련소에서 철광석을 녹이며 광석의 질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게 된 주몽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단, 이를 뒷받침할 기술자가 부족하다는 것은 시간을 두고 풀 숙제였다. 특히 묵거는 여러 무기를 제조하는 것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창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모(矛)와 함께 찌르고 벨 수 있는 극(戟), 기병이 쓰기 좋은 삭(攍)을 나누어야 한다. 화살촉도 마찬가지니라. 찌르는 살촉, 베는 평촉, 소리내는 효시를 나누어야 한다."

묵거는 이런 무기들 외에도 미늘갑옷과 마갑으로 둘러싼 중장기병을 개발하는데도 열을 올렸다. 중장기병은 하나가 열을 대적할 수 있는 당시로는 무적에 가까운 병종으로서 그에 합당한 장비를 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전술의 채용까지 생각한다면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그냥 경기병으로 싸워도 충분하오. 뭘 그리 고민하시오."

협부가 하루종일 제련소에서 씨름하는 것으로 모자라 각종 문서에 묻혀 사는 묵거를 보다못해 한마디를 해주었다.

"그렇지 않소. 중장기병은 그 자체로도 위협적이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싸울 의지를 확인시켜주는 도구이기도 하오. 전투가 벌어지면 백성들에게 중심부의 중장기병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중심에서야 하오. 그 중심이 철갑으로 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적에게 위압감을 줄뿐만 아니라 안정된 통치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외다."

협부는 묵거가 세상을 어렵게 사는 것만 같아 아리송하기만 했다. 묵거는 한 달여가 지난 다음에야 겨우 한 벌의 미늘갑옷과 마갑을 제작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5. 5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