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51

등록 2003.03.30 16:00수정 2003.03.30 15:59
0
원고료로 응원
"그를 이용하자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 자는 주군을 두려워할 뿐만 아니라 일전의 일로 인해 주군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뜻에 잘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통이안은 채진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오."
"그렇습니다만, 싸우지 않으면 질 수도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묵거는 자신이 계획하고 있는 바를 주몽에게 설명해주었다. 주몽은 묵거의 설명에 만족해 고개를 끄덕이며 당장 일을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그날 이후, 요동의 한족(漢族)마을들이 정체불명의 말 탄 도적 떼에게 약탈당하기 시작했다. 요동태수 채진이 병사들을 모아 방어에 나섰지만 이들은 마치 비웃듯이 방비가 허술한 곳만 찾아다니며 약탈을 개시하곤 했다. 채진은 각지에 영을 내렸다.

"도적들의 수가 많지 않으니 병사들을 이곳 저곳에 분산해서 지켜야한다."

물론 도적들의 정체는 통이안이 거느린 말갈 기병들이었다. 주몽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군대를 편성하여 우선 현도군으로 진군해 갔다. 군의 편성을 보면 재사, 오이, 부분노, 부위염, 마리, 협부, 무골과 궁노수, 도부수로 편성된 보병 일천 오백명, 기병 오백명 총 이외 다물후 송양이 이끄는 병사 삼백명, 도합 이천 삼백여명의 병사가 동원되었다. 고구려가 건국된 이래로 최대 규모의 병력 동원인 셈이었다.


묵거와 해위는 남아서 오녀산성을 지키며 왕비 월군녀와 함께 국정을 돌보도록 하였고 소노부의 욕살 소조가 거느린 이백명의 병사가 치안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원래 묵거도 이번 출정에 참가해 주몽을 보좌하기로 하였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남아 있게 된 것이었다.

그리 많지 않은 병력으로 한나라의 변경을 치는 것은 어찌 보면 그리 신중한 처사가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당시 고구려로서는 영토를 넓히는 것과 함께 호구수를 늘여 국력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과거 조선(고조선)의 땅에 있던 백성들을 흡수한다는 것은 명분도 뚜렷하며 한나라의 통치 아래 있던 옛 조선의 백성들이 기왕이면 좀더 강하면서도 동질성을 느끼는 지배자의 아래 있고 싶어하는 기대심리까지 충족시킬 수 있었다.

당시에는 피지배층까지 민족, 국가 의식이 명확하게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살기 좋고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지배체제만 있다면 백성들이 옮겨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 한족(漢族)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는 명분조성을 고구려가 명확히 한다면 백성들이 좀더 견고한 충성심을 갖게 되리라는 계산까지 깔려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전쟁이라고는 모르고 지냈던 현도군인데다가 요동태수 채진마저 통이안의 말갈족들에게 신경 쓰느라 방어는 느슨해질 대로 느슨해져 있었다. 현도군을 지키던 장수는 성문을 열어놓고 혼자 도망가느라 바빴고 백성들은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새로운 지배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주몽을 반겼다. 이것은 이미 주몽이 전쟁을 치르지 않고 평화롭게 비류국을 합병했다는 소문이 퍼진 까닭도 있었다.

"여기까진 순조로웠지만 임둔군에서는 약간의 저항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재사가 행여 주몽이 손쉬운 승리에 들떠서 실수라도 할까봐 주의를 환기시켰다. 주몽은 그 정도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수들에게 지시했다.

"절대로 이곳에서 민폐를 끼치지 말라. 백성들의 쌀 한 톨이라도 탐내는 자가 있으면 엄벌에 처할 것이다."

고구려가 현도군을 정벌했다는 소식은 급히 요동태수 채진에게 전달되었다.

"큰일이로구나!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전전긍긍하는 채진에게 종사 왕의가 조언했다.

"지금 병력을 동원해서 이들을 치러 간다고 해도 늦었으니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요수의 동쪽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옵고..."

"그렇게 되면 천자께서 날 가만히 놔둘 것 같은가? 파직은 물론이거니와 낙양으로 압송되어 중벌을 받을 걸세."

"좀더 얘기를 들어보십시오. 두 번째 방법은 적들이 진군할 곳은 바로 임둔군이나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에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장수들만이라도 임둔군에 파견해 그곳의 병사들로 버텨 주는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