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고주몽 53

등록 2003.04.01 18:03수정 2003.04.01 18:34
0
원고료로 응원
평곽현령 진속은 계속해서 요동태수 채진의 태도를 주시하고 있었다. 도적 떼의 잇따른 습격으로 평곽현에도 병력 차출이 명령이 내려졌지만 진속은 이를 모른 채 하고 있었다. 병력을 움직이려면 이럴 때가 기회였지만 채진이 연거푸 사람을 보내어 독촉하는 턱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탈이라면 탈이었다. 진속으로서는 속병이 날 지경이었다.

"현령님! 좋은 소식입니다!"


아침부터 군위 장막이 뛰어오며 진속을 찾았다.

"고구려가 군대를 움직여 현도군을 점령하고 임둔군을 노린다고 합니다."

"뭐라? 그건 별로 좋은 소식이 아닌 듯 한데."

"듣자하니 고구려의 왕이 직접 병사들을 거느리고 출진했다고 합니다."

진속도 귀가 번쩍 트이는 소리였다. 아무리 말갈 기병의 지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병사 삼천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끌었다면 주력부대는 거의 빠져나갔다는 말이었다. 이 때를 노려 왕성을 점령해 버린다면 자신이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채진이 자꾸 사람을 보내와 병사를 내놓으라 독촉하니 문제일세. 오늘만 하더라도 새벽부터 채진이 보낸 사람이 와서 죽치고 앉아 있으니 말일세."

"그야 간단하지요. 솔직히 고구려를 치러 간다고 말하십시오."


"뭐라? 그래서 어쩌겠다는 얘긴가?"

"채진으로서는 오히려 반가운 일이지요. 요동의 병사들을 모으는 일만 해도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현령께서 직접 고구려로 짓쳐 들어가겠다면 고구려 군이 물러갈 것이 아니옵니까.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채진이 내린 명령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채진이 허락할지는 의문이네."

"그럼 이런 기회를 그냥 흘려 보내실 생각입니까? 속히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진속은 잠시동안 고민하다가 장막에게 명했다.

"속히 병사들을 준비시켜라. 고구려로 쳐들어가겠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터라 진속은 신속히 병사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채진이 보낸 사람은 장막의 말을 듣고서는 놀라 서둘러 채진에게로 갔다.

"아뢰옵니다. 평곽현에 다녀왔습니다."

"그래, 진속이란 자는 뭘 하고 있더냐? 혹시 술만 퍼먹고 계집질하느라 내 말을 한쪽귀로 흘리고 있지나 않은 게냐?"

"그게 아니옵니다. 현령 진속이 병사들을 움직여 고구려로 진군한다고 합니다."

"뭐라!"

채진은 곰곰이 뜻하지 않은 사태에 대해 되씹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기가 알고 있는 진속은 이런 능동적이고 과감한 전술을 구사할 사람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점은 없더냐?"

"병사들 사이에 동부여쪽에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말갈족기병이 섞여 있었습니다."

채진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때 부여에서 보낸 서찰 한 통이 채진의 눈에 띄었다. 오래 전부터 와 있던 서찰이었지만 다른 일에 쫓겨 그저 흘려만 보던 것이 채진의 귀에 동부여란 말이 들리게 되자 혹시나 하는 생각에 펴보게 되었다.

'요동태수는 보아라 당신의 부하로 보이는 자가 천자의 서찰을 위조해 우리 왕을 배알하고 평곽현에 군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런 일은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나 그간 양국의 관계가 돈독했고 차후 이런 일로 우리 대 부여왕의 심기를 거슬리는 일이 있다면 아니 되기에 알리는 바이다.'

채진은 서찰을 내동댕이치며 크게 화를 냈다.

"진속, 이 자가 모반의 뜻이 있었구나! 어찌 이런 대역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천자의 서찰을 위조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법은 한나라의 고조 유방이 함양에 입성했을 때 소하가 제정한 구장율에 기록될 정도로 나라의 기강을 세우기 위해 철저히 금기시 되어왔던 짓이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진다면 채진마저도 무사하지 못할지 몰랐다.

"어서 종사 왕의를 불러라. 그와 상의해 봐야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