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93

분타 지위 협정서 (3)

등록 2003.04.02 13:55수정 2003.04.02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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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 소, 소성주님께서 부르셨다고?"

이회옥의 예상대로 장한은 당주급이었다. 무림천자성의 모든 병장기를 전담하는 철검당주 방옥두였던 것이다.


철기린의 부름을 받았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의 표정은 금방 달라졌다. 소성주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은 출세는 맡아놓은 당상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부럽다는 표정을 지은 것이다.

"핫핫! 그렇다네. 어이쿠,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네. 미안하이. 소성주님께서 기다리시겠네. 갔다가 나와서 다시 봄세."
"그, 그러게."

철검당주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당주이지만 벌써부터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참! 여보게. 좋은 술을 구해 놓았네. 나오거든 들르게."
"핫핫! 그러겠네. 우리가 남인가? 나오는대로 철검당으로 가겠네. 핫핫! 좋은 술이 있다니 좋은 안주도 준비해 놓으시게."

"핫핫! 여부가 있겠는가! 염려 놓으시게."
"핫핫! 기대가 크네. 그나저나 제수씨들은 잘 계신가?"


"예끼, 이 사람아. 제수씨들이라니? 형수님들이시지."
"핫핫! 핫핫핫! 어쨌거나 나오는대로 철검당에 들리겠네."

뇌흔이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성큼성큼 앞서 나가자 이회옥은 행여 놓칠 새라 잰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멈추시오!"
"핫핫! 철마당주 뇌흔이네. 소성주님께 가는 길이네."

내원에서 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수문위사는 이회옥과 비룡을 보고는 즉각 창을 거두었다.

"예, 소성주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들어가십시오."
"고맙네. 수고하게."

뇌흔은 거침없이 내원을 지나쳐 드디어 별원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이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팔대당주는 물론 호법들조차 가보지 못한 곳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핫핫! 네게 큰상을 내릴 계획이다. 원하는 것이 있거든 말을 해봐라. 본좌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 주겠다."
"예에…?"

"핫핫! 지금 당장 말하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생각해보고 말해도 좋다. 자, 어서 가자. 소성주님께서 기다리시겠다."

철마당주 뇌흔은 자신이 이 같은 영광을 누리는 것이 순전히 이회옥의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뭔가 베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 것이다.

잠시 후 이회옥은 비룡의 등위에 올라탄 철기린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 또 한번 감격하고 있었다.

"핫핫! 이회옥이라고 하였지?"
"예! 하명하십시오."
"핫핫! 너는 비룡이 저 담장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철기린인 가리킨 곳은 별원과 내원을 구분 짓는 담장으로 일 장 정도 되는 높이였다. 웬만한 말이라면 설사 사람을 태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넘을 엄두조차 내지 못할 높이였다.

이것을 본 철마당주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당구삼년폐풍월(堂狗三年吠風月)이라는 말이 있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다. 뇌흔은 철마당주가 된지 올해로 십 년이 훨씬 넘었다. 따라서 말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훨씬 많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칠 척 장신인 철기린은 몸무게만 해도 족히 백삼십 근은 나간다. 거기에 이십 근은 나갈 전복(戰服)을 걸치고 있다. 따라서 도합 일백오십 근이 실려있다는 것인데, 이런 상태로 일 장이 넘는 담장을 넘는 말을 본적이 없었다.

게다가 담장의 폭도 문제였다. 보통의 담장은 두꺼워 보았자 한 자 정도이다. 하지만 별원의 담장은 그 두께만 해도 석 자는 족히 된다. 따라서 그만큼 체공시간이 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고개를 좌우로 저은 것이다. 하지만 이회옥의 고개는 서슴없이 끄덕이고 있었다.

"예! 충분히 넘을 수 있을 겁니다."
"그으래…?"

사실 철기린은 안 된다는 대답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담장을 넘을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은 정말 비룡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름도 비룡이니 저깟 담장쯤은 훌쩍 넘는 그런 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전설에는 옥황상제(玉皇上帝)가 타는 말을 일컬어 천마(天馬) 혹은 비마(飛馬)라고 한다. 그런 말이었으면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회옥이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이회옥의 자신에 찬 눈빛을 마주한 그는 서슴없이 박차를 가하였다.

"이럇! 비룡아, 가자꾸나. 한번 넘어 보자. 핫핫핫!"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두두둑! 두두두두두두두!
"어어어! 소, 소성주님. 그러시다가 크, 큰일납니다."

뇌흔의 얼굴은 삽시간에 사색이 되었다.

철기린이 이회옥의 말을 믿고 말을 탄 채 담장을 넘으려다 잘못되는 날이면 철마당주라는 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형당으로 끌려가 완전 개박살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철기린은 전속력으로 비룡을 몰고 있었다.

"핫핫! 가자, 한번 넘자. 아니 훨훨 날자꾸나. 핫핫핫!"
"어어어! 어어어어!"

뇌흔의 입에서 계속하여 비명도 아니고, 그렇다고 감탄사도 아닌 음성이 쏟아져 나오는 사이에도 이회옥은 눈빛만 빛내고 있었다. 비룡이라면 충분히 담장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아, 지금이닷! 날앗!"
두두두두두둑! 히히히히힝!
"어어어! 어어어어!"

뇌흔의 비명이 점점 커질 무렵 담장 가까이 당도한 철기린은 박차를 가하면서 고삐를 바짝 죄었다. 그와 동시에 비룡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가히 한 마리 천마가 구름을 박차고 창공으로 튀어 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휴우…!"

비룡의 능력을 믿었지만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던 이회옥이 긴 한숨을 내쉴 즈음 곁에 있던 뇌흔이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면서 동시에 다리의 힘도 같이 풀려버린 결과였다.

"에라, 이 녀석아! 너 때문에 십 년은 감수했다."
"하하! 보셨죠? 하하! 역시 비룡은 대단해요."

"에구, 이 녀석아! 너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니까."
"아얏! 아야얏! 잘 넘어갔는데 왜 때려요?"

"뭐라고? 네가 지금 감히 당주인 본좌에게…? 핫핫! 아니다. 아니야. 맞다. 네 말이 맞아! 잘 넘어갔다. 핫핫! 잘 넘어갔다고. 철마당주가 된 이후 오늘처럼 기쁜 날은 없었다. 핫핫! 핫핫핫!"

뇌흔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계속하여 웃으면서 이회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도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철기린은 분명 비룡에 만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철마당은 소성주의 신임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장차 자신의 앞날에 서광이 비출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뇌흔이 이회옥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한 지 거의 반 시진이 지난 후 한 소리 기합성과 더불어 비룡이 또 다시 담장을 넘어왔다. 과연 한혈마였다. 반 시진이나 전속으로 질주하였을 터인데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재빨리 달려가 철기린으로부터 고삐를 넘겨받은 이회옥은 준비해왔던 천으로 비룡의 몸 전체를 덮었다. 지금은 땀을 흘려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으나 조금만 있으면 얼어붙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핫핫핫! 이놈 참, 마음에 든다. 아주 마음에 들었어! 핫핫핫! 철마당주!"
"말씀만 하십시오!"

"수고했다. 수고했어. 핫핫! 조만간 철마당에 큰상이 내려질 것이다. 기대해도 좋다."
"헷!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너, 이회옥이라고 했지?"
"예!"

이회옥을 호명하였던 철기린은 시선을 뇌흔에게로 돌렸다.

"으음! 철마당주!"
"하명만 하십시오."

"앞으로 이 아이는 비룡만을 전담토록 하라. 알겠지?"
"존명! 명대로 하겠습니다."
"핫핫! 좋다. 좋아, 이만 가봐도 좋다."

가볍게 비룡의 어깨를 다독인 철기린이 기린각 쪽으로 향하자 뇌흔의 입은 즉각 함지박이 들어갈 만큼 크게 벌어졌다. 철기린은 통이 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큰상을 내린다 하였으니 횡재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었다.

"핫핫! 제일호법께서 너에게 비룡을 맡기라고 했을 때 사실 조금 탐탁지 않았는데. 네가 내가 이렇게 큰 복덩이일 줄이야… 핫핫! 가자, 오늘은 너도 한잔 할 자격이 있다. 핫핫핫!"
"……!"

이회옥은 칭찬이 싫지 않았기에 멋적은 웃음만 짓고 있었다.

"하하! 어서 오게. 눈이 빠지라고 기다리고 있었네."
"핫핫! 웬일인가? 자네가 날 다 기다리고…?"

"하하! 웬일은 무슨… 우리가 남인가?"
"뭐라고…? 핫핫! 핫핫핫!"
"하하! 두말 않겠네. 앞으로 잘 좀 부탁하네."

철검당주의 말에 뇌흔의 기분은 더 이상 좋아질 수 없었다. 같은 당주급이면서 벌써부터 한 단계 격상된 기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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