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시위 하는데 이유가 필요한가요?"

새벽을 여는 사람들(4) 반전시위 현장에서 만난 최현주씨

등록 2003.04.02 09:54수정 2003.04.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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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석

"반전 시위를 하는데 '왜' 라는 질문이 필요한가요?"

뜨끔했다. 전국 민주노총 소속 갑을프라스틱지회 수석부지회장 최현주(28)씨는 노조 활동으로 인해 개인의 상황이 어려움에도 불구 반전 시위를 하는데 무슨 이유나 사정이 필요해야 하는 것인지 오히려 의아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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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같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보지 않으련?"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사범대를 진학했다. 십대 시절 열망의 대상이었던 '노래패' 활동에 학교 수업보다 더 열심히 참여했다. 그녀가 꿈꾸었던 세상이 아니었다. 교과서 안과 밖의 사회는 좀처럼 괴리감이 좁혀지지 않았고 그녀는 계속 노래를 불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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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직접 '현장'으로 들어갔다. 공장 기계 앞에 앉아 있는 그녀는 그저 또 하나의 부품에 불과했다. 휴일 없이 열 한 시간 혹은 열 세 시간을 근무했다. 현장을 몰랐던 그녀는 스스로의 안일함에 몹시 부끄러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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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진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현장'을 만들고 싶었다. 노동자가 주인이 될 수 있는 살맛 나고 신명나는 '현장'을 만들고 싶어 노조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을 같이한 많은 이들이 떠나 이젠 간부들만 남았다. 본의 아니게 많은 상처를 주고 받았다. 그래도 결국 웃을 수 있는 건 여전히 '사람'이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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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년 가운데 364일간 노동을 해야 했다. 성실하고 정직했으나 살림은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그녀는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딸임을 자랑스러워 한다. 그녀가 꿈꾸는 건 단 하나. 아버지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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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주인은 농민이 되어야 하고 공장의 주인은 노동자가 되어야 하며 세상의 주인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더 먼저 일어나 웃을 수 있는 김수영 시인의 '풀'을 닮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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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 쯤 해보는 고민일 터. 과연 정말 각자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 직접 몸으로 생각하며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녀는 분명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계획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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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참 바뻐요." 많은 이들이 짜증을 내며 분주히 지나간다. 선전 시위를 종종 하는 그녀는 선전지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만 봐도 이젠 어느 지역 시민인지를 금세 알아 맞춘다. 가끔 혹자는 그녀를 길바닥에 세워놓고 무안을 주기도 하지만, 소리 없는 눈웃음으로 힘을 보태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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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이거 3분이면 되거든요, 가면서 읽어보세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오히려 희망과 평화를 선사하는 그녀에게 감사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음에 연신 뿌듯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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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주인이 되고 노동이 아름다운 내일을 꿈꿔요."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행복한 내일을 선사하는지 아는 걸까. 그녀를 무심히 지나쳐 가는 분주한 사람들의 뒷모습에도 따스한 눈길을 놓치지 않는다. 세상을 같이 만들어 가자며 환하게 웃는 그녀에게 이미 신명나는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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