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카드, 검찰이 술렁이고 있다"
"그러면 오히려 더 좋은 것 아닌가?"

[정치 톺아보기 ⑮] '고집불통' 노무현의 인사 스타일

등록 2003.04.08 18:23수정 2003.04.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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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1: '좋은 사람'은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앉힌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지난 2월 중순께 정찬용 인사보좌관 내정자를 불러 "인사보좌관실에 기용할 좋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정찬용 보좌관은 "아직 구체적으로 정한 사람은 없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노 당선자는 잘되었다는 듯 반색을 하며 얼른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좋은 사람이 있는데..."

그러나 정 보좌관은 정중하게 추천을 사양했다.

"제가 알아서 적임자를 찾아보겠습니다"

며칠 뒤에 정 보좌관을 만난 노 당선자는 다시 '좋은 사람' 이야기를 꺼냈다. 정 보좌관은 이번엔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전기정 상명대 교수를 추천했다. 전기정 교수는 노무현 당선자에게 이른바 다면평가제도를 소개한 인물로 당시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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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6일 청와대 인사보좌관으로 내정돼 인수위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정찬용 전 광주YMCA 사무총장.

그러나 정 보좌관도 '한 고집'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방에서 시민운동만 해온 '촌놈'이어서 관료사회를 모릅니다. 그래서 인사비서관은 (관료사회를 잘 아는) 관료를 데려다 쓰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도 '촌놈'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노 당선자는 2월20일 새정부 청와대 인사비서관에 권선택 행정자치부 자치행정국장 등 비서관 3명을 추가로 내정했다. 김만수 인수위 부대변인은 이날 내정자들을 발표하면서 인선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권선택 인사비서관 내정자는 인사업무에 정통한 직업관료 출신으로 지방과 중앙 행정경험을 두루 갖고 있으며 인사보좌관실 업무 성격상 행자부에 대한 지배력과 영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공직 내부에서 인정받는 인사를 선출한다는 원칙에 부합하는 인물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 당선자가 고집을 꺾은 것은 아니었다. 인수위는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민의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인 2월23일 '정책프로세스개선비서관'이라는 낯선 직함의 비서관 1명을 마지막으로 내정 발표했다. 노 당선자가 정 보좌관에게 추천한 '좋은 사람', 바로 그 전기정 교수였다. 정책프로세스개선비서관은 청와대 시스템 혁신을 위해 노 당선자의 지시로 신설된 비서실장 직속 비서관이었다. 일종의 위인설관(爲人設官)이었다.

그 다음날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마지막 국무회의를 열어 대통령비서실에 정책실을 신설하는 내용의 '대통령비서실 직제'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비서실장을 포함한 보좌관 및 수석비서관 등 차관급 이상 정무직은 9명에서 13명, 1∼9급 일반직은 219명에서 307명, 기능직은 177명에서 178명으로 늘어나 비서실 정원은 405명에서 93명 늘어난 498명이 되었다.

'일하는 청와대'를 만들자는 노 당선자의 의중에 따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프로세스개선비서관이란 생소한 '위인설관'도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서울 출신으로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런던경제대에서 의사결정학 박사를 딴 전기정씨는 노 당선자와 일로 맺어졌을 뿐 아무런 사적 인연은 없다. '좋은 사람'은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기어이 데려다 써야 직성이 풀리는 노무현식 인사의 단면이다.

삽화 2: 한번 믿고 맡긴 사람은 어지간한 실수도 봐준다

지난 3월 중순 일부 언론에서 송경희 대변인의 '워치콘 발언'을 문제삼자 일부에서는 송 대변인에 대한 경질을 점쳤다. 그러나 한번 믿고 맡긴 사람은 쉽게 바꾸지 않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아는 사람들은 경질보다는 '경고' 쪽에 무게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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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5일 첫 브리핑을 하는 송경희 대변인

문희상 비서실장은 청와대 기자실에서 열린 취임 한 달 기자간담회에서 옆에 앉은 송 대변인을 '그분'으로 지칭하며 "그분이 잘 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대통령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상당한 수준의 경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실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지난 정부의 박지원 대변인처럼 전체를 다 아는 사람이 브리핑하던 때와 세상이 달라졌다. 지금은 대변인이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릴리스(전달) 기능만 한다. 덮어놓고 대변인을 교체하면 제도를 그렇게 만든 우리가 욕을 먹어야지, 결혼 한 달도 안됐는데 아이를 낳으라고 하면…."

청와대는 이 사안을 일부에서 제기한 대변인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홍보·브리핑 시스템 운용의 문제로 간주한 것으로 비쳤다. 정부 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에 대해 "청와대 정책프로세스개선비서관 주도 하에 진행중인 청와대 홍보시스템 안착 여부에 대한 검증 및 제도개선을 한 뒤에 그때 가서 (교체 여부를) 판단하자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청와대 조직 혁신과 관련해 "3개월 혹은 6개월마다 보직을 점검하고 소폭이라도 재조정을 실시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조직은 탄생과 동시에 개혁의 대상'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노무현식 조직관리에서 청와대도 예외는 아닌 셈이다.

즉 정책프로세스개선비서관(PPR:Policy Process Reengineering)실이 진행중인 새로운 홍보·브리핑시스템을 포함한 새롭게 개편된 청와대 체계가 제대로 작용하는지, 문제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컨설팅'을 마친 뒤에 사람 혹은 시스템을 바꿔도 늦지 않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취임 한 달만에 대변인을 경질하면 홍보수석실 조직과 뉴스브리핑 시스템 자체가 흔들린다는 판단도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런 결정에는 노무현 인사 스타일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이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서 취임 한 달만에 대변인을 교체하는 것은 '잘못한 인사'를 그대로 시인하는 꼴인데, 노무현의 스타일로 보건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었다.

삽화 3: 노 대통령은 '검사들의 반란'을 예상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조각(組閣) 하마평이 나돌 때 '강금실 법무장관 카드'는 다른 어떤 카드보다도 일찌감치 불거졌다. 대통령이 되면 강금실 변호사를 중용하겠다던 노무현 당선자의 공언도 있었지만 노무현의 인사 스타일을 아는 사람들도 적임자라고 거들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아무리 검찰 조직을 무시해도 그렇지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겠냐'고 느긋해하던 검찰 수뇌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검찰 수뇌부의 한 고위 인사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한 참모에게 "혹시 당선자께서 개인적으로 잘 아는 검사장급 이상 간부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대통령직인수위 구성 전에, 아무래도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당선자와 안면이 있는 검찰 간부를 인수위에 파견하거나 업무보고를 하도록 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노무현 캠프에서 돌아온 답변은 "(잘 아는 간부가) 아무도 없다"는 거였다. 요즘 말로 '코드가 통하는' 검찰 간부가 아무도 없단 얘기였다.

검찰은 노무현 당선자와 줄이 닿는, 그야 말로 '관계요로'에 '강금실 카드'의 불가함을 설파하는 로비 총력전을 펼쳤다. 민주당의 법조계 출신 의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또 법조계 출신 의원들이 보기에도 '강금실 카드'는 검찰 조직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무리수'였던 모양이다. 조각을 앞두고 '강금실 카드'가 굳어지는 듯하자 검찰의 반발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하루는 송영길·이종걸·조배숙 등 법조계 출신 의원들과 임종석 의원 등 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명륜동 자택으로 노무현 당선자를 찾아갔다. 재조 및 재야 법조계와 시중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강금실 변호사와는 경기여고 동기이자 검사 출신인 조배숙 의원이 '총대'를 멨다.

"지금 검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검찰 간부들이 집단사표를 내는 반발 사태가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자 노 당선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그러면 오히려 더 좋은 것 아닙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강금실 카드'를 썼을 경우 뻔히 예상되는 '검란'(檢亂)과 그에 따른 '전국 검사들과의 토론회' 같은 '진압방식'까지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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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9일 전국 검사들과의 토론회를 가진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장관

사실 이른바 신주류 의원 중에도 '강금실 카드'를 내놓고 찬성한 사람은 둘뿐이었다. 그중 법조계 출신 C의원은 처음부터 '강금실 카드'를 지지했다. '민변' 출신의 C의원은 노무현씨가 대통령 출마선언을 했을 때 가장 먼저 그를 공개 지지한 바 있다. 또 다른 법조계 출신 S의원은 처음부터 '강금실 카드'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사석에서 S의원에게 물어봤다, 왜 찬성했냐고. 그의 대답은 이랬다.

"어차피 반대해도 안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말리면 말릴수록 더 고집을 피울텐데…. 그러나 노무현은 자신이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6개월만 두고 봅시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집스런 용인술(用人術)의 이면에는 사적(私的) 인연이나 연줄보다는 업무로 맺은 인연과 시스템 관계를 중시하는 사고가 깔려 있다. 청와대에 정책프로세스개선비서관(PPR)직을 신설해 처음으로 청와대 인사 및 조직을 진단하고, 정당 사상 처음으로 외국계 회사에 의뢰해 민주당에 대한 조직진단 및 제도개혁 컨설팅을 받은 것은 '인사의 시스템화'와 '정치의 과학화'를 지향하는 노무현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방법론인 것이다.

'좋은 목적'이 '나쁜 수단'을 합리화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노무현의 꿈을 알기에 필자도 6개월은 두고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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