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옥은 고구려가 멸망한 뒤 육십사 년이 흐른 어느 날 영주(營州)에서 고구려 유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는 패망한 고구려의 유민들이 당나라 사람들로부터 갖은 모욕을 다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야 하였다.
억울했지만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울분을 느낀 그는 옛 고구려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웅대한 뜻을 키워나갔다.
그의 나이 이십삼 세 때, 안록산(安祿山)이 난을 일으켜 하북지역을 장악하게 되었다. 따라서 요동(遼東)지역에 있던 평로절도부(平盧節度府)와 장안(長安 :서안)에 있는 당나라 조정과는 양쪽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당시 반군 토벌에 동원되었던 회흘족(回紇族 :위구르) 장수 하나가 자신의 전공(戰功)과 완력(腕力)을 앞세워 포악하게 날뛰는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제압하지 못하였기에 절도사들까지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때 이회옥이 나섰고 격투 끝에 그를 제압하면서 명성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당시 요동의 군대는 상당수가 고구려 유민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회옥을 추종하게 되었다.
이회옥은 당시 영주를 근거지로 하고 있던 평로군의 비장(裨將)으로 후희일(侯希逸)과 함께 복무하고 있었다. 내종사촌지간인 그는 고모의 아들로 이회옥보다 손위였다.
후희일은 난이 한창일 때 안동도호(安東都護) 왕현지(王玄志)와 공모하여 안록산의 명에 따라 평로절도사로 부임한 서귀도(徐歸道)를 죽이고 그를 평로군사로 옹립하였다.
그런데 왕현지가 병사(病死)하자 당나라 조정에서는 그 아들에게 절도사 직(職)을 세습시키려 하였다.
이에 부당함을 느낀 이회옥은 그를 죽이고 후희일을 평로군사(平盧軍使)로 추대했다.
후희일은 이전부터 반군 합류를 종용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안록산의 사신(使臣)들을 참수해버리는 등 철저히 반 안록산 노선을 견지해 왔다.
그러던 중 평로군이 안록산의 군대로부터 쫓기고, 북방으로부터는 해족(奚族)의 침공까지 받아 고립무원(孤立無援) 상태가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부장(副將) 이회옥은 근왕군(勤王軍) 이만을 데리고 발해만의 묘도열도(廟島列島)를 건너 등주(登州)로 상륙하였다.
평로군은 청주(靑州)에서 관군과 합류했는데, 당 조정은 이를 가상히 여겨 후희일에게 치주(淄州), 청주(靑州) 등 육 개 주를 관장케 하고 평로치청절도사(平盧淄靑節度使)의 관작을 내렸다.
이때부터 평로의 군호가 치청(淄靑)으로 바뀌게 된 셈이다.
이후 후희일은 정사에 태만하고, 거대한 불사(佛寺) 건축을 일으키는 등 계속하여 무리수를 두어 재정이 몹시 곤란해졌다.
이럴 즈음 치청군 내부에서 이회옥의 인기가 높아지자 이를 시기한 후희일은 그를 해임해 버렸다. 이에 불만을 품은 군사들은 거꾸로 그를 쫓아내고 이회옥을 추대했다.
이제 적지 않은 세력을 이끌게 되자 당 조정은 이회옥에게 자신을 바로 세웠다는 뜻에서 정기(正己)라는 이름을 내렸다.
이회옥(李懷玉)에서 이정기(李正己)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평로치청절도관찰사(平盧淄靑節度觀察使) 겸 해운압발해신라양번사(海運押渤海新羅兩蕃使)라는 관직을 주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 싶었는지 당 조정은 이정기에게 요양군왕(饒陽郡王)에 봉하는 등 무마책을 썼다.
당시 동쪽에는 발해(渤海)가 고구려의 국통을 계승하여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이정기는 요동에 나라를 세우지는 않았다.
대신 민족의 원수인 당나라를 정벌하여 중원 한복판에 또 다른 고구려를 세우려고 마음먹었다.
그의 나이 삼십이 되자 고구려인으로 구성된 정예 이만 병력을 이끌고 과감하게 산동성으로 향하였다.
당시 그곳에는 고구려 패망 당시 당나라에 끌려갔던 상당수의 유민들이 노예처럼 살고 있었다.
영영 망해버린 줄로만 알았던 고구려의 대군이 왔다는 소식을 접한 산동의 고구려 유민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때 이만의 병력을 아주 작은 세력이었다.
당나라는 일개 주(州)만 해도 몇만이나 되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원 한복판으로 쳐들어갔으니 자칫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이란타석(以卵打石)의 결과밖에 못 빚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수많은 고구려 유민들이 있었고, 그들에겐 아직도 웅휘로운 고구려의 정신이 계승되고 있었다.
이정기의 군대는 십만이나 되는 당군(唐軍)을 격파하고 그야말로 파죽지세(破竹之勢)의 기세로 밀고 들어가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십 개 주를 장악해버렸다.
이때 그의 군사는 십만 대군에 이르렀다.
당시 당 조정과 대립한 최대 번진(藩鎭)으로 꼽힌 하북삼진(河北三鎭)은 위박(魏博), 성덕(成德), 노룡(盧龍)이었다.
그들의 군사력이 각각 일만에서 구만 정도였고, 세력권은 칠 주에서 구 주 정도였다. 따라서 이를 감안하면 이정기의 군사력과 통치범위는 단연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때를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는 "이웃 번진들이 모두 두려워할 강번(强藩)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정기는 어느 정도 세력기반이 다져지자 관리임명권, 조세수취권 등 행정과 경제, 군사, 외교권 등을 독점하면서 반당(反唐) 노선을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이웃 번진들과 혼인관계를 통해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노련함을 보였다.
그의 나이 사십오 세 때에는 이영요(李靈曜)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당의 최대 요충지라 할 수 있는 서주(徐州) 등 오 개 주(州)를 추가 점령, 명실공히 최대 강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어 내륙 공략에 더욱 치중하기 위해 청주에 있던 치소(治所)를 운주로 옮겼다. 그러면서 청주는 아들 이납(李納)에게 맡겼다.
서주는 초한(楚漢) 전쟁시기 초패왕 항우의 도성인 팽성(彭城)이며, 예로부터 중원의 남북과 동서를 잇는 육운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강회조운(江淮漕運)의 요충지로 꼽혔던 곳이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자 장안은 대공황에 빠져들었다. 목 아래 칼을 디민 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덕종(德宗)은 하북삼진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변주에 축성(築城)하고, 이정기 제압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이정기도 이에 맞서 이듬해 변주와 가까운 조주(曹州) 제음(濟陰)에서 병사를 징발하여 훈련케 하고, 사촌형인 이유(李洧)에게 서주자사(徐州刺史)를 맡긴 뒤 증원군대를 파견하였다.
이 와중에 이정기 군대는 당군을 연파하면서 서주와 가까운 용교(埇橋)와 와구(渦口)마저 점령해 버렸다. 드디어 당나라 최대 수송로인 영제거(永濟渠)를 점령한 것이다.
이것은 수의 두 번째 황제인 수양제(隨煬帝)가 육 년 동안에 걸쳐 공사한 것으로 중원을 남북으로 잇기 위하여 건설한 대운하이다. (이외에도 수나라에서 건설하거나 개수한 대운하로 산양독(山陽瀆), 통제거(通濟渠), 강남하(江南河) 등이 있었다.)
수나라는 이렇듯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펼치는 한편 세 차례에 걸쳐 고구려 공격을 위한 무리한 징발 때문에 통일 후 겨우 삼십 년만에 멸망한 것이다.
아무튼 영제거는 강남의 풍부한 물자를 낙양(洛陽)과 장안으로 수송하는 가장 중대한 운송로였다. 그런데 이것을 점령해 버리자 당나라 조정은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자의 공급이 끊겨 굶어죽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장안 등지는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때를 노린 이정기는 이십만 대군으로 하여금 장안으로 총진격토록 하였다.
변주에 있던 당나라 군사 이십만은 홍수에 휩싸인 토용(土俑 :흙으로 빚은 인형)처럼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들에게는 전장에서 단련된 고구려 유민출신 병사들을 막을 무예도, 용맹도, 힘도, 작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후의 보루라 여기던 변주의 군사들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자 더 이상 이정기의 막강한 군대를 막을 힘이 없던 당나라 조정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였다. 이제 당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키면서 다시 강성해질 것이 두려워 무려 이십만이나 중원으로 끌고 왔다.
그들을 한 군데 모아 놓으면 무슨 문제를 일으킬지 몰라 여러 갈래로 나눈 뒤 철저히 오지(奧地)로 분산시켰다.
이렇게 하면 다시 결속하여 세력을 일으킬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건만 고구려 유민 출신에게 멸망당하게 생긴 것이다.
이정기의 용맹한 군사들이 낙양으로 곧장 진격하려던 순간 군막으로 하나의 비보(悲報)가 전해졌다.
치청왕국의 왕인 이정기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것이다. 이때는 그의 나이 오십이었을 때이고 팔 월이었다.
고구려군은 눈물을 삼키며 퇴각하였다. 당나라로서는 멸망 직전에 기사회생한 셈이었다.
"자네 가문에서 매년 팔월에 제사를 지낸 것은 조상들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분을 기리기 위한 제사였을 것이네."
"그런데 그분은 왜 돌아가신 건가요?"
숨도 쉬지 못한 채 길고 긴 이야기를 듣던 이회옥의 물음에 노인은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허허! 그건 나중에 이야기해 줌세. 자, 출출하니 우리 뭣 좀 먹으러 갈까?"
"예? 아, 예!"
이회옥은 노인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전혀 모르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노인의 뒤를 멍한 표정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이 순간 그의 뇌리로 수없이 많은 상념이 스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조상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곤 부친의 함자가 정기(正己)라는 것뿐이었다.
그런에 이제는 왜 매년 팔 월에만 제사를 지내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이정기라는 이름과 이회옥이라는 두 가지 이름만 사용하는지도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보나마나 이정기는 누군가의 암계에 의한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노인의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년 중 단 한번의 제사와 두 가지 이름을 그의 원대한 꿈을 이루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는 뜻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노인의 뒤를 따르는 이회옥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랫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허허! 다 왔네. 자, 안으로 들어가세."
"어라? 여긴…? 다향루?"
"허허! 다향루를 아는가?"
"예? 아, 예! 어제 와 봤습니다."
"호오! 그래? 여기 차 맛이 일품이지. 자, 그건 그렇고 일단 안으로 드세. 손녀 아이가 음식을 준비해 놓았을 것이네."
"예!"
노인은 마치 제집 드나들 듯 뒤쪽 후원으로 접어들었다. 그런 그의 뒤를 따르는 이회옥은 여전히 상기된 표정이었다.
천애고아가 되었는 줄 알았더니 한때 만천하를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호령하던 위대한 『전사(戰士)의 후예(後裔)』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너무도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막 후원의 문지방을 넘어설 때였다. 은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영롱한 음성이 들려왔다.
"호호! 할아버지,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할아버지를 기다리느라 진아의 목이 빠질 뻔했잖아요. 호호! 언제오시나 했는데… 어머! 당신이 어떻게 여길…? 흥! 어제 분명히 말했잖아요. 무림천자성 사람들은 손님으로 받지 않아요. 당장 나가 주세요."
"어! 낭자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부엌에 있었는지 젖은 손을 행주에 닦으면서 반색을 하던 여인은 바로 홍여진이었다.
이곳 선무곡 제일미녀인 그녀는 한 송이 붉은 꽃처럼 아름답다는 뜻에서 일타홍(一朶紅)이라는 외호로 불렸다.
그녀를 찍은 많은 정의수호대원들이 있었지만 지금껏 아무도 그녀를 넘볼 수 없었다. 그녀의 조부는 하나뿐인 자식을 출가시킨 직후 다향루를 물려주고는 출가한 이후 돌아온 적이 없었다.
모친은 그녀를 출산하던 중 출혈과다로 세상을 등졌다. 따라서 그녀를 위협하기 위한 혈육이라곤 부친밖에 없었는데, 불행히도 그를 상대로 손을 쓸 수는 없었다.
첫째는 다향루의 재산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다향루는 선무곡에서뿐만 아니라 전 중원에 알려진 명소이다. 그래서 중원제일다루(中原第一茶樓)로 불린다.
따라서 늘 손님들로 북적인다. 자연 많은 재물이 있을 것이다. 그걸 모두 소진시키려면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두 번째는 일타홍의 부친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선무곡 곡주를 보필하는 호법 가운데 하나로 곡주의 명에 따라 무림천자성과 함께 모종의 일을 추진하던 중이었다.
그 일은 무림천자성의 부성주인 인의수사 채니(蔡 )가 직접 지시한 일이다. 따라서 분타주를 비롯한 그 어느 누구도 그 일의 총책임자인 그에게 손을 썼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셋째 그는 공무(公務)로 자주 선무분타를 드나들었기에 정의수호대원들 모두가 그와 안면이 있었다. 그런데 워낙 인품이 고결한 데가 학문까지 깊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거만하고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방조선 등 삼의(三醫)들조차 그의 앞에서는 고개를 조아릴 정도였다. 이런 연유로 손을 쓸 수 없었기에 지금껏 무림천자성의 해코지에 당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일타홍 홍여진은 그리던 님을 만나기라도 하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다가 막 문지방을 넘고 있는 이회옥을 보자마자 냉기가 풀풀 날리는 싸늘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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