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111

천하제일지 화담 홍지함 (1)

등록 2003.04.20 12:03수정 2003.04.2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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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천하제일지 화담 홍지함

"흐흑! 흐흐흐흑! 어떻게 해? 흐흑! 흐흐흐흑!"


천강선녀 호옥접의 흐느낌은 길고 길었다. 그런 그녀의 주변에는 온통 풀잎 투성이였고, 그녀의 의복 역시 풀잎이 잔뜩 물들어 있었다. 너무도 슬퍼 자신도 모르게 쥐어뜯은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찾은 천뢰도에 도착하자마자 정인인 소화타 장일정이 괴물에게 잡혀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삼각 파도와 와류가 넘실대는 바다를 헤치고 나가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 잠시 후부터는 천지가 개벽할 듯한 뇌성벽력이 난무할 것이라는 것도 잊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 흘리고 있었다.

"흐흑! 상공, 소녀는 이제 어찌 살라고…? 흐흑! 상공, 상공! 아아앙! 상공, 나 이제 어떻게 해요? 아아아앙!"

어디에 그렇게 많은 눈물을 감추고 있었는지 호옥접의 봉목(鳳目)에서는 굵은 이슬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반광노조와 장일정을 삼킨 괴물이 사라진 수면은 잔잔하기만 하였다. 오는 동안 이야기 듣기를 만년뇌혈곤은 먹이를 먹으면 그것이 다 소화될 때까지 올라오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 말이 사실인 듯하였다.

"흐흑! 흐흐흐흑! 상공! 상공! 흐흑! 야, 이놈의 괴물아! 차라리 나도 먹어버려라! 흐흑! 흐흐흐흑!"


지금껏 두려움 때문에 수면 가까이 다가가지 않던 호옥접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다 그 자리에 엎어졌다. 울아 울다 너무 지쳐 더 이상 갈 수도 없었지만 자꾸 눈물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너무도 급작스럽고 큰 슬픔에 겨워 한없이 눈물 흘리던 호옥접은 결국 아득한 혼절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고 말았는지 움직임이 멈췄다. 이때 무엇인가가 수면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푸하아…! 후으으읍! 푸하아!…"
"푸하아! 후으으으읍! 푸하아! 후으으으읍!…"

둥근 모양인데 하나는 하얗고 하나는 검은 그것은 분명 사람의 머리였다.

"하하하! 하하하하! 노인장, 우린 이제 살았습니다. 하하! 숨쉬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일 줄이야. 하하하!"
"허허허! 허허! 허허허허! 그래, 자네의 말대로 살았네 그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머리의 주인은 분명 만년뇌혈곤이라는 괴물에게 잡혀 먹혔던 장일정과 반광노조였다.

둘은 물가에 잔뜩 우거져 있는 수초를 움켜쥔 채 계속해서 웃음을 터뜨렸다. 이때였다.

꽝릉! 꽈르르르릉! 꽈꽈꽈꽈꽈꽈꽝!
"아앗! 큰일이네. 어서 여기에서 나가야 하네. 더 이상 지체하다간 벼락에 맞아 죽네."
"허억! 아, 알았습니다."

장일정과 반광노조는 뇌성벽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혼비백산하며 뭍으로 올랐다. 그들이 상륙한 곳에서 두 발짝 정도 떨어진 곳에는 혼절한 호옥접이 엎어져 있었다.

"어서 저 아이를 안아들게. 여기 있다간 죽네."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죠?"

"저기 저쪽에 동굴이 있네. 그곳으로…"
"알았습니다."

번쩍! 번쩍!
꽈릉! 꽈꽈꽈꽈꽈꽈꽈꽝!
"아앗! 엎으려."
"허억!"

장일정이 호옥접의 신형을 안아들려던 바로 그 순간 사방이 환하게 밝아지는가 싶더니 이내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뇌정 건너편에 있던 바위에 뇌전이 그대로 내리 꽂힌 것이다.

잠시 후 바위 아래쪽에서 희끄므레한 연기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아마도 바위 아래에 있던 독사들이 감전되면서 타버린 모양이었다.

건너편에 작렬하였기에 망정이지 만일 이쪽에 낙뢰(落雷)되었다면 반광노조와 호옥접, 그리고 장일정은 시커멓게 타죽은 시신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이네. 어서 달리게!"
"아, 알았습니다."

엎어진 채 호옥접의 교구 아래에 손을 넣고 있던 장일정은 어디에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동굴을 향해 전력질주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또 다시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이번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시커먼 바위가 몸살을 앓았다.

번쩍!
꽈릉! 꽈꽈꽈꽝!

정신 없이 달리는 장일정은 한 손 가득히 무엇인가 물컹한 것이 쥐어져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 정신 없이 달리는 반광노조는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품에 안기라도 하였는지 앞섶을 여민 채 달리고 있었다. 이 순간이었다.

번쩍!
꽈르릉! 꽈꽈꽈꽈꽈꽈꽈꽝!

고막이 찢어질 듯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하였다. 이와 동시에 셋은 그대로 엎어졌다.

천뢰도에 당도하기 전 반광노조는 불상사를 당하지 않기 위한 여러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준 바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독사들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생사잠만 있으면 언제든 해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벼락이었다. 이것에 한번이라도 맞으면 설사 천하제일고수라 할지라도 그대로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벼락이라는 놈은 쇠붙이를 좋아하고, 뾰족하게 솟은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따라서 벼락이 치기 시작하면 가급적 자세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누누이 일러주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있던 장일정은 조금 전의 낙뢰와 동시에 그대로 엎어졌다. 반광노조가 일러준 주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옳았다.

번쩍!
꽈꽝! 꽈꽈꽈꽈꽝!

이러다 눈이 머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온 세상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이어서 고막이 찢어지고 정신이 멍멍해질 정도로 엄청난 벽력성이 터져 나왔다. 불과 십여 보 떨어진 곳에 있던 사람 키 만한 바위에 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과연 뇌전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수천년 풍상을 버텨온 바위였건만 단 한번의 낙뢰를 이기지 못하고 쩍 갈라져 버린 것이다.

만일 촌각이라도 늦게 엎드렸다면 일행에게 떨어졌을 것이다. 반광조조의 손에 조룡간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엎어지면서 뒤집어진 호옥접은 여전히 혼절한 상태였다. 엉겹결에 그녀의 가슴 부위에 고개를 묻고 있던 장일정은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동굴을 향해 달렸다.

지금은 이런 저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기에 뭉클한 그 무엇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동굴에 당도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하마터면… 노인장! 괜찮으십니까?"
"염려 말게! 노부는 괜찮으이."

"휴우…!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합니다."
"허허! 그러기에 이곳을 천뢰도라고 부르지."

말을 하는 동안에도 천지사방이 온통 환해졌다 어두워졌다가 반복되었다. 그와 동시에 귀청을 찢을 것만 같은 벽력성이 연신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순간 동혈 안쪽은 일대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장일정과 호옥접, 그리고 반광노조가 앉아 있는 입구를 제외한 모든 곳의 독사들이 일제히 안으로 기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장일정의 품에 있던 생사잠 때문이었다. 그것의 끝에 만사지왕(萬蛇之王)인 일각사왕(一角蛇王)의 뿔이 담겨있기에 천적(天敵)이 온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만일 그것이 없었다면 장일정과 반광노조는 꼼짝없이 만년뇌혈곤의 뱃속에서 녹아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호옥접 역시 목숨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물가에 가까이 가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목숨을 잃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녀는 반광노조나 장일정이 없는 이상 천뢰도를 떠날 방도가 없다.

둘째, 이곳은 사시사철 거의 매일 뇌성벽력이 휘몰아치는 곳이기에 나무가 거의 없는 곳이다. 물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과실이 열리는 나무도 없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수없이 많은 독사들인데 그것을 잡아먹기 전에 먼저 물려 죽게될 것이다. 그렇기에 목숨을 잃는다는 것이다.

장일정과 반광노조가 천우신조로 살아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생사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광노조는 물 위로 치솟은 만년뇌혈곤의 흡입력에 의하여 놈의 목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상태로 위까지 들어갔으면 아마도 화골산(化骨散)에 시신이 녹듯 녹아버렸을 것이다.

정신 없이 빨려 들어가던 그의 신형은 괴물의 목구멍 바로 뒤에서 멈췄다. 이때가 바로 장일정이 조룡간을 움켜쥔 채 두 발을 바위틈에 밀어 넣고 버티던 때였다.

이 순간 반광노조는 본능적으로 조룡간에 달려있던 낚시바늘을 놈의 속살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는 고래 힘줄을 엮어 만든 낚싯줄을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

다음 순간, 팽팽했던 낚싯줄이 느슨해짐과 동시에 장일정의 신형이 빨려 들어왔다. 호옥접이 조룡간 아래에 달려있던 줄을 바위에 감고 막 매듭지으려다 놓친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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